주간동아 624

2008.02.26

모니터 위의 新예술세계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08-02-20 17: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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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니터 위의 新예술세계

    <b>인터넷 아트</b><br>레이첼 그린 지음/ 이수영 옮김/ 시공아트 펴냄/ 328쪽/ 1만6000원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서양화가 중 한 사람인 불멸의 화가 ‘반 고흐’전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나는 2월2일, 지방에서 올라온 후배와 함께 전시회를 찾았다. 토요일이어선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입장하는 데만 몇십 분이 걸렸고 전시장에서도 사람에 치여 제대로 그림을 감상하기 어려웠다.

    반 고흐는 37세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화가다. 그는 생의 마지막 10년 동안 처절한 삶을 살면서 900여 점이라는 많은 그림을 그렸지만 생전에는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네덜란드의 반고흐 미술관과 크뢸러뮐러 미술관이 엄선한 67점을 볼 수 있었다. 이번 전시를 놓친 사람들은 이제 네덜란드로 건너가야만 그의 작품들을 직접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 아트라면 그럴 필요가 없다. 인터넷 아트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작품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인터넷 아트는 문자와 이미지, 소리까지 통합하는 멀티미디어다. 창작자는 e메일, 웹사이트, 그래픽, 오디오, 비디오, 애니메이션 등의 형식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따라서 관람객은 일방적인 감상자에 머무르지 않고 창작에 참여하며 상호 의사소통할 뿐 아니라, 놀랍도록 발달한 디지털 기술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표현을 가상공간에서 현실감 있게 보여주며 새로운 현실을 창조할 수 있는 셈이다.

    인터넷 아트의 원조는 슬로베니아의 부크 코직(Vuk Cosik)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에게 온 e메일의 깨진 문자배열 중 유일하게 해독 가능한 Net.Art란 글자에서 영감을 얻어 1996년 트리스트에서 ‘net.art per se’라는 모임을 조직해 인터넷 아트의 시작을 알렸다. 그러니 인터넷 아트의 역사는 이제 10년 남짓 지났을 뿐이다. 짧은 역사에도 인터넷 아트는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인터넷 매체를 활용해 예술 생산의 범위와 가능성, 역량을 넓혀왔다.

    레이첼 그린의 ‘인터넷 아트’는 바로 그 역사를 총체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저자는 인터넷 아트가 관람자와의 상호소통을 강조한다는 점, 정보를 전달하고 네트워크를 사용한다는 점, 전통적으로 예술 오브제에 귀속돼 있는 자율적인 상태를 뛰어넘는다는 점 등으로 말미암아 개념 미술에 빚을 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책의 전반부에서 초기 인터넷 예술가들이 e메일 리스트와 같은 예술 프로젝트를 통해 서로 소통하면서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구성하는 특징들을 어떻게 탐구해왔는지를 설명한다. 여기서는 선구자적인 인터넷 아트 예술가의 작업들을 일일이 확인할 수 있다. 후반부에서는 정보 전쟁, 게임, 소프트웨어, 택티컬(tactical·스스로 만드는) 미디어 등으로 주제를 확장해가며 인터넷 아트의 전망을 살펴본다. 이를 통해 저자는 인터넷 아트가 ‘닷컴(dot com)’ 시대의 자본주의를 충실하게 보완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월권과 부정을 견제하는 능동적인 존재라고 주장한다.

    인터넷 아트는 예술의 생산과 소비, 나아가 교환 방식까지 바꿔놓음으로써 기존의 예술미학과는 전혀 다른 미학을 창출했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현대 인터넷 아트의 프리 소프트웨어와 소프트웨어 문화 장르는 웹사이트를 넘어서서 우리가 생각하고 소비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대안적인 경제 모델과 가능성을 제공했다”며 “정보 전쟁과 택티컬 미디어 캠페인은 미술과 정치, 그리고 개인과 집단행동의 경계에 자리한 새로운 기회를 열어줬다”고 강조한다.

    인터넷 아트에 난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 아트는 무한 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복제와 원본의 차이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소장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 대표적인 문제다. 휘트니 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 같은 세계적인 제도권 미술관이 전문 큐레이터까지 두고 인터넷 아트 전시회를 여는 등 인터넷 아트를 수용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경제적 모델을 만들지 못했다. 미술관들은 작품 구입과 동시에 이미지 다운로드와 출력 기능을 폐쇄하고 모니터에서 감상하는 것 이상의 개인 소유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는 언제 어디서나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 아트의 최대 장점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마치 저작권과 솔루션 문제로 여전히 성장에 한계를 노출하고 있는 전자책의 모습과 같다. 가능성은 확실하지만 암시장 수준에 머물러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이 책은 인터넷의 영향력과 인터넷 아트의 특수성 및 의미를 설명한 최초의 책이다. 그래서인지 선험적인 이론을 인용한 주(註)는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인터넷 아트의 역사를 증명하는 200여 점의 도판이 실려 있다는 점이다. 도판들을 살펴보다가 ‘필이 꽂힌’다면 부록으로 실린 인터넷 아트의 주요 프로젝트와 출처, 페스티벌과 이벤트 주소로 접속한 다음 그곳에 수록된 작품을 감상해볼 수 있다. 인터넷 아트에 관심 있는 사람은 이 책을 이정표 삼아 인터넷 아트의 전모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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