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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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문 연루된 로비에 5억~6억 썼다”

S해운 세무조사 관련 의혹 고발한 전 사위 이모씨 진술 국세청·검경 간부들도 다수 거론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08-02-20 10: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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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상문 비서관의 혐의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국세청 세무조사를 무마하기 위해 국세청 고위인사들에게 압력을 행사했는지, 그 대가로 S해운 측으로부터 억대의 뇌물을 받았는지 여부다.
    • 정 비서관의 전 사위인 이모 씨의 진술서에 따르면, 청와대 한 핵심 인사는 2004년 S해운 세무조사 당시 정 비서관의 요청을 받고 S해운의 변호사 선임 과정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돼 있다.
    “정상문 연루된 로비에 5억~6억 썼다”

    정상문 대통령비서실 총무비서관.

    정상문 대통령비서실 총무비서관의 국세청 로비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한껏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검찰은 이 사건을 수사해온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부장검사 김대호)에 특수부 소속 검사 2명을 포함한 10여 명의 수사진을 추가로 투입한 뒤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이고 있다. 2004년 초 해양운송업체 S해운의 국세청 세무조사와 관련해 불거진 정·관계 로비 의혹 수사가 본궤도에 오른 것이다.

    최근까지 고발인 조사를 진행했던 수사팀은 설 연휴인 2월8일부터 국세청 직원들을 참고인 또는 피고발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를 벌였다. 이들은 모두 2004년 당시 S해운의 세무조사를 맡았던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소속 직원들이다. 검찰과 국세청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미 5~6명의 국세청 직원이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검찰은 조사 범위를 확대해나간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국세청 세무조사 받던 시기에 스카우트돼

    현재 로비 의혹의 핵심으로 지목받고 있는 정 비서관의 혐의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국세청 세무조사를 무마하기 위해 국세청 고위인사들에게 압력을 행사했는지, 그 대가로 S해운 측으로부터 억대의 뇌물을 받았는지 여부다. 고발인인 정 비서관의 전 사위 이모(36) 씨는 최근 검찰 조사에서 이미 공개된 1억원 외에도 정 비서관의 부인과 딸에게 1억원가량의 돈이 전달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로비 의혹에는 다수의 고위 인사들이 거론되고 있어 더욱 관심을 끈다. 정 비서관 외에도 국세청 전현직 고위간부들, 검·경 간부들의 이름이 실명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이씨는 지난 연말 이들 인사가 S해운 측으로부터 받은 금품의 목록과 장소 등이 담긴 로비 리스트를 검찰에 제출한 바 있다.



    이번 사건은 S해운 이사를 지낸 이씨가 지난해 11월 이 회사의 비리를 검찰에 고발하면서 불거졌다. 고발장을 낸 이씨는 S해운이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던 2004년 2~3월 이 회사에 이사로 스카우트된 인물. 이씨는 고발장과 함께 검찰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본인 결혼(2003년 9월) 무렵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L씨에게서 연락이 와 (S해운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밝혔다. 이씨가 작성한 진술서, 그리고 이씨와 ‘주간동아’의 수차례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 확인된 당시 국세청 로비에 대한 이씨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회사 지시 받은 뒤 청와대서 정 비서관 만나 사건 무마 청탁”

    “정상문 연루된 로비에 5억~6억 썼다”

    서울 종로구에 자리한 국세청 전경. 로비 의혹의 중심에 있는 국세청은 “S해운 세무조사 당시 어떤 로비도 없었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2004년 2월 S해운은 내부자의 투서가 빌미가 돼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의 특별세무조사를 받았다. 조사가 시작되자 S해운 측은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대통령비서실 총무비서관인 정 비서관의 사위인 이씨를 급히 이사로 채용한다. 이씨는 진술서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본인이 입사한 이후 S해운 김모 상무로부터, S해운이 비자금 350억원 내지 400억원을 조성했다는 전직 임원의 세금 탈루 제보로 서울지방국세청에서 세무사찰이 나와 노트북 컴퓨터를 압수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김씨는 본인에게 본인의 장인으로 청와대 총무비서관으로 봉직 중이던 정상문 비서관을 통해 조사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 이게 좀 무마될 수 있는지 그것도 확인해달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당시 이씨는 회사의 지시를 받은 즉시, 장인인 정 비서관을 청와대에서 만나 사건 무마를 청탁했다고 한다. 이씨가 작성한 진술서에 따르면, 당시 정 비서관은 청와대에 파견 나온 국세청 직원을 통해 사건의 진행 상황을 알아봤으며, 국세청 고위간부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나 세무조사 무마를 청탁했다고 한다. 이씨가 정 비서관에게 현금 1억원을 건넸다고 주장하는 시점도 이즈음이다. 이와 관련해 이씨는 “물론 (당시 건넨 돈은) 국세청 세무조사와 관련해 회사에 도움을 준 대가였다. 정 비서관은 당시 국세청 고위간부였던 A씨에게 세무조사 무마를 청탁했고, ‘걱정하지 말라’는 답을 들었다고 내게 말했다. 정 비서관은 S해운의 국세청 로비를 처음부터 끝까지 도왔고 이런저런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또 진술서에서 평소 잘 알고 지내던 국무총리실 파견 경찰관 K씨를 만나 세무조사 무마를 청탁했다고 밝히고 있다. 진술서에는 K씨가 이씨에게 “‘청와대 총무수석의 사돈 회사가 탈세 제보로 조사 중이니 잘 좀 부탁한다고, 국세청 고위간부 B씨에게 부탁했다”고 말한 것으로 돼 있다. 다음은 이씨의 설명이다.

    “K씨와는 2003년경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진술서 내용대로 부탁을 했고, 나중에 K씨가 B씨에게 직접 청탁했다는 말을 들었다. S해운 측은 당시 K씨에게 선처를 부탁한 일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3000만원을 전달했다.”

    이번 로비 의혹과 관련해 실명이 거론되는 정·관계 인사들은 이 밖에도 많다. 진술서와 로비 리스트에 따르면, 청와대 한 핵심 인사는 2004년 S해운 세무조사 당시 정 비서관의 요청을 받고 S해운의 변호사 선임 과정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돼 있다. 또 다른 전직 국세청 간부 C씨는 S해운 간부에게서 직접 부탁을 받고 세무조사를 축소, 은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씨에 따르면, C씨는 그 대가로 S해운 측으로부터 500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이씨는 진술서에서 국세청 직원 다수가 이 사건과 관련한 로비를 받았다는 내용도 밝히고 있다.

    이씨는 당시 S해운 측이 국세청 세무조사 로비를 위해 사용한 자금이 5억~6억원이라고 주장한다. “당시 최소 그 정도의 돈을 쓴 것은 분명하다. 그중 1억원가량은 내가 썼고, 나머지는 국세청 등에 로비 자금으로 쓰였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한편 이번 로비 사건에 관련된 것으로 지목된 인사들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그런 사실이 없다. 돈을 받거나 로비를 시도한 일도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이씨가 제출한 고발장에 피고발인으로 돼 있는 S해운 김모 상무도 ‘주간동아’와의 전화통화에서 “고발 내용은 모두 터무니없다. 진실은 검찰 조사에서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청 간부 K씨, 국세청 고위인사 등 다른 관련자들은 수차례 접촉을 시도했음에도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청와대, 국세청 등 관련 기관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특히 전현직 핵심 간부들이 당시 로비 사슬의 중심에 있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세청엔 비상이 걸렸다. 하지만 국세청 측은 모든 의혹을 부인한다. “국세청 인사들에 대한 자체 조사를 벌였지만, 단서를 찾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실명이 거론되는 전현직 인사들이 로비를 받고 사건을 무마한 단서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로비 의혹의 실체는 있는 것일까. 고삐를 바짝 조이고 있는 검찰 수사가 모든 의혹을 속 시원히 풀어줄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인터뷰 정상문 대통령비서실 총무비서관

    “1억원 가져왔지만 호통 쳐 돌려보냈다”


    ‘주간동아’는 1월31일 정상문 대통령비서실 총무비서관과 수차례에 걸쳐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국세청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듣기 위해서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S해운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전혀 사실 무근이다. 그럴 이유도 없었다. 나는 오랜 공직생활 동안 대부분 감사업무를 맡았던 사람이다. 그런 문제에 대해선 결벽증이 있다. 로비라니 말도 안 된다. 이씨는 2003년 내 딸과 결혼할 때부터 우리 가족을 속여왔다. 학력도 속였을 정도다. 이씨의 주장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

    - 1억원을 받았다는 구체적인 진술이 나왔는데….

    “2004년 3월경 이씨가 1억원을 가져온 적은 있다. 하지만 그날 바로 ‘왜 이런 돈을 내게 주느냐’고 호통을 쳐서 돌려보냈다. 당시엔 사위가 S해운에서 일한다는 사실도 몰랐다.”

    - 당시 S해운 관계자들을 만난 적은 있나.

    “나는 S해운이란 회사에 가본 적도, 그 회사 사람들을 만난 적도 없다. 당시 이씨 부친이 그 회사와 관련한 문제를 상의해와 청와대의 한 수석비서관에게 자문을 구한 적은 있다. 하지만 ‘똑똑한 변호사를 선임해 처리하라’고 조언했을 뿐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

    - 최근 이 문제로 검찰 조사를 받았나.

    “(검찰로부터) 서면조사만 받았다. 이번 사건에 내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고 해서 나 스스로 그간의 일을 글로 작성해 검찰에 보냈을 뿐이다. 나는 이 사건과 관련해 문제 될 것이 전혀 없다. 한때 가족이던 사람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져 가슴 아프다. 이씨가 S해운 측으로부터 돈을 뜯어내는 과정에서 내 문제가 사실과 다르게 불거진 것 같다. 여하튼 모든 게 내 부덕의 소치라 생각한다. 이씨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준비 중이다.”


    장인과 사위의 악연

    파경 후 순식간에 가족에서 적으로


    이번 사건은 비정한 가족사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히 관심을 끈다. 고발인 이씨가 한때 장인이었던 정 비서관의 비리 의혹을 제기했다는 사실에 보는 사람들은 혀를 찬다.

    사건의 배경에는 정 비서관의 가족과 이씨 사이의 불행한 가정사가 자리하고 있다. 2년 남짓 지속된 정 비서관의 딸과 이씨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불화도 한 원인이었지만, S해운에 대한 세무조사 문제가 2005년 초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조사를 받은 것도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이씨는 자신의 가정사에 대해 “2004년 말부터 이혼을 원했으며, 2005년엔 (정 비서관의 딸과) 살기 싫어 미국으로 도망갔다. 이혼 후 정 비서관은 나와 우리 집안의 뒷조사를 하기도 했다. S해운과 정 비서관 때문에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정 비서관의 설명은 다르다. 다음은 정 비서관의 반박 내용.

    “(딸의) 결혼 직후 이씨가 우리 가족에게 모든 것을 속였음을 알게 됐다. 심지어 학력도 속였다. 당시 딸 내외 문제로 잠을 못 이루고 고민했다. 이혼은 우리 쪽에서 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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