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3

2017.01.25

김민경의 미식세계

정유년, 닭에 대한 고찰

아낌없이 주는 너, ‘맛의 제국’을 이루다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17-01-23 18:3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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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유년 닭띠 해의 음력 첫날인 설이 찾아왔다. 닭은 아주 오래전 날기를 포기하고 번식을 택했다. 사람이 잡아먹으려고 못 날게 한 게 아니라, 스스로 땅에 정착했다. 닭의 결정적 선택 덕에 사람은 그 고기와 알이 선사하는 단백질의 풍요를 누리고 있다. 물론 닭고기가 귀한 시절도 있었다. 1970년대만 해도 접대요리에만 쓰이던 최고급 식재료였다. 달걀은 집안의 몇 대 독자로 태어나야 겨우 맛볼 수 있는 꿈의 반찬이었다. 전문적인 양계농장이 생기고 품종 계량 및 사육법 발달로 닭과 달걀이 사람을 고르는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우리는 입맛대로 골라 먹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닭고기의 장점은 무궁무진하다. 쇠고기나 돼지고기보다 가격이 저렴한 반면, 품질은 대체로 균일하다. 고기에서 단백질 함량은 높고 지방은 적다. 털과 부리를 제외하면 버리는 부위가 거의 없으며, 손질이 어렵지 않고 요리법도 다양하다. 쇠고기와 돼지고기처럼 종교적인 이유로 섭취를 금하거나 지리적 이유로 사육이 어려운 경우가 거의 없어 세계 어디를 가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고기다.



    닭고기 공화국, 전국적인 ‘치킨 인프라’

    닭 한 마리에는 다양한 세계가 존재한다. 소수 부류만 좋아하는 닭 모가지는 껍질이 두꺼워 맛이 ‘꼬숩고’, 촘촘한 뼈 사이에는 의외로 살이 많다. 넓적다리는 지방과 살코기가 균형을 이뤄 촉촉하고 쫄깃하다. 종아리에 해당하는 북채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넘어갈 정도로 탄력 있고 고소한 살들이 겹겹이 결을 이룬다. 어깨 부위인 닭봉은 작은 닭다리처럼 생겨 한입에 넣어 살과 연골을 쏙쏙 빼 먹기 좋다. 날개는 야들야들하고 고소한 살을 발라 먹는 재미가 남다르다. 보기에도 듬직한 가슴살은 지방이 적어 살찔 염려가 적고 결대로 찢어 먹는 맛이 담백하다. 안심은 다리 살과 가슴살의 장점만 섞어놓은 듯 구수하고 부드럽다. 닭발은 오글오글 모여 있는 살을 발라서 모으면 고들고들한 식감과 고소함이 최고다.

    살을 발라낸 닭뼈는 훌륭한 육수 재료다. 소나 돼지의 뼈에 비해 기름이 적게 우러나 시원하고 깊은 맛이 나며, 닭 외 다른 요리에도 두루 활용할 수 있다. 내장으로는 간, 염통(심장), 모래주머니(똥집, 근위)를 주로 먹는다. 손가락 한 마디만큼 크기가 작지만 식감, 맛, 풍미는 제각각이다. 위나 창자 등 기타 내장으로 맛을 살리는 요리가 있으며, 연골이나 볏으로 하는 음식도 있다. 한국 닭내장탕, 일본 연골 꼬치구이, 이탈리아 닭 볏 리소토가 쉬운 예다.





    닭고기는 한 마리를 통째로 먹는 경우가 많다. 백숙, 삼계탕, 통닭구이나 튀김은 닭 형태를 그대로 살려 조리하고 닭볶음탕, 찜닭, 양념치킨은 닭을 부위별로 토막 내 조리한다. 부위별로 살만 발라 여러 요리에 사용하기도 한다. 담백한 살코기는 양념해 굽거나 살을 찢어 샐러드, 샌드위치에 넣기도 한다. 기름기가 있는 부위는 스튜, 카레, 볶음, 조림을 만들거나 다져서 완자나 만두를 빚는다. 껍질은 튀기거나 데쳐 먹는다. 닭발에서 발라낸 살과 모래주머니는 날것 그대로 먹기도 한다. 닭고기 국물에 곡식이나 국수를 넣어 익혀 먹고, 채소를 데쳐 먹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기름에 튀기는 방법은 부위를 막론하고 닭고기 맛을 균일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요리법이다.

    닭은 특정 지역의 아이콘 기능도 한다. 세대를 넘어 낭만의 도시로 꼽히는 강원 춘천에 가서 닭갈비를 먹지 않고 오면 마음이 허전하다. 커피의 도시인 강원 강릉은 닭강정의 명소라는 명찰을 하나 더 붙였다. 서울 동대문은 닭 한 마리와 찌그러진 냄비로 아시아관광특구로 자리 잡았다. 경기 수원에는 가마솥에서 튀기는 통닭집이 골목을 이루고 있다. 30여 년 전부터 형성된 경북 안동의 찜닭 골목은 어느새 전통 영역에 포함되고 있다. 똥집 튀김은 발원지인 대구에선 빛을 잃었지만, 전국으로 퍼져나가 애주가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전남 해남에서는 3kg에 달하는 토종닭을 부위별, 조리별로 골고루 맛볼 수 있는 코스요리가 인기를 얻고 있다.

    고향에 갈 수 없는 이북 사람은 그리운 맛을 되새기며 만두를 빚거나 초계탕을 내세운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계곡을 낀 산 어귀에는 풍류를 즐길 수 있는 백숙집들이 자리한다. 하얗게 불태운 야근을 위로하는 포장마차에서는 1년 365일 닭똥집이 기다린다. 무엇보다 대단한 것은 주문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더라도 치킨을 먹을 수 있는 엄청난 ‘치킨 인프라’다.



    조류독감? 지금이 즐길 때

    이 땅에서 ‘맛의 제국’을 이룩한, 이토록 고맙고 기특한 닭고기가 최근 위기를 맞았다. 지난해 겨울 창궐한 조류독감(AI)이 일파만파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외부인의 출입이 잦은 산란계 농장의 피해가 특히 크다. 달걀 값이 뛰었고 닭은 천대받고 있다. 하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정부 당국 발표에 따르면 AI 위험지역의 가금류 이동을 통제하고 있어 감염된 닭고기가 우리 식탁에 오를 확률은 0%에 가깝다고 한다. 게다가 호흡기를 통해 감염된다니 도축된 닭고기 때문에 병에 걸리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서도 닭고기는 70도 이상에서 30분 이상, 75도 이상에서 5분 이상 조리해 먹으면 감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런데 닭은 왜 독감에 걸렸을까. 사람 사이에도 늘 독감은 존재한다. 함께 사는 사이라도 누구는 걸리고 누구는 멀쩡하다. 사람은 유행성 질병에 걸리지 않고자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음식 섭취와 휴식을 통해 면역력을 키우며, 제 몸과 환경을 깨끗하게 가꾸려 노력한다. 그런데 사람이 만약 제 것인지 아닌지도 모를 똥을 밟고 채광과 환기가 안 되는 곳에 살면서 옆 사람과 24시간 살을 맞대고 앉지도 눕지도 못한다면 어떨까. 근친 교배가 일어나고 섬유질이나 미네랄이 부족한 화학적 가공식품만 먹고 산다면 어떨까. 병에 걸릴 틈도 없이 금세 죽을 것이다.

    미식은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유하는 것과 더불어 음식의 뿌리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음식이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돼 내 앞에 놓였는지를 알아야 한다. 식품 문제를 개선하는 데 앞장서지는 못하더라도 견제하고 우려하는 마음과 태도가 절실할 때다.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치느님’이 어느 순간 끔찍한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AI 발생이나 감기 걸린 닭이 문제의 원인이 아닌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우리에게 주는 것에 비해 대접을 제대로 못 받는 닭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닭고기 요릿집△‘평래옥’(초계탕, 닭무침) 서울 중구 마른내로 △‘영양센터’(통닭구이, 삼계탕) 서울 중구 명동2길 △‘다락 투’(닭곰탕, 닭칼국수)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쿠시무라’(연골 등 닭꼬치구이)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토담 숯불닭갈비’(닭갈비) 강원 춘천시 신북읍 신샘밭로 △‘원조장수통닭’(닭 한 마리 코스요리) 전남 해남군 해남읍 고산로 △‘수원 통닭골목’(통닭튀김) 경기 수원시 팔달구 팔달로1가 △‘안동 찜닭골목’(찜닭) 경북 안동시 번영1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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