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6

2016.12.07

최성자의 문화유산 산책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되다

제주 해녀문화

  •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sjchoi5402@naver.com

    입력2016-12-06 11:4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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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암시민(살다 보면) 살아진다.” 제주 할망의 말이다. 온갖 풍파가 몰려와도 ‘살아 있으면 살아진다’는 건 오랜 경험으로 전해온다. 섬을 휩쓸고 간 고난 속에서 제주 할망은 야생화나 해초같이 살아왔다. 거친 바다에서 온몸으로 물질을 하며 견뎌낸 세월이었다. 이제 세상이 좋아져 젊은 해녀는 없고 할망들만 불턱에 앉아 몸을 녹인 뒤 물질을 나간다. 이런 제주 해녀에게 커다란 상장이 수여된다. 해녀문화가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된 것이다.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11월 30일 열린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 제11차 회의에서 제주 해녀문화를 등재하기로 결정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위원회 산하 평가기구는 제주 해녀문화가 갖는 문화 다양성과 끈질긴 정신을 높게 평가했다. “잠수기술과 책임감은 선배 해녀로부터 후배 해녀에게 전해지고, 선배 해녀들이 어촌계를 이끌어간다”면서 “공동작업의 수익으로 자체 사업을 하며 사회적 응집력과 문화적 지속성을 촉진한다”고 했다. 이 어려운 말을 풀어보면 ‘잠수장비 없이 바다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물질의 특성과 해녀끼리 연대하는 강한 공동체의식, 그리고 어머니에게서 딸로, 시어머니에게서 며느리로 전승되는 무형문화의 특성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바다에 의지해 살아가는 제주 사람의 삶에서 해녀는 독특한 위치를 갖는다. 200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는 “제주의 성산일출봉, 샤머니즘, 해녀, 독특한 자연 등에서 신비한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제주의 자연은 세계에서도 꼽히는 절경이고, 그 속에서 살아온 해녀는 성산일출봉과 같은 존재였다. 지금 제주에는 해녀 4415명(2014년 말 통계)이 물질을 계속하고 있다. 세계 여러 지역에서 잠수장비 없이 바닷속에서 해산물을 채취하지만 현재 직업으로 일하는 사람은 한국과 일본에만 있다. 그중 잠녀(潛女), 잠수(潛嫂)로 불리던 바다 어멍인 한국의 제주 해녀를 유네스코가 주목한 것이다.

    제주 사람은 언제부터 바닷속에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했을까. 유철인 제주대 교수는 전복과 소라를 비롯한 조개류가 많이 발굴된 상모리(上摹里) 패총의 연대를 볼 때, 기원전 3세기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잠수를 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해녀 방식의 나잠어업자는 17세기에야 비로소 기록에 나온다. 위험한 바닷속에서 일하는 해녀들은 가까운 거리에서 함께 작업하며 안녕을 비는 잠수굿도 마을공동체가 주관한다. 바다에는 어린 딸이 눈치껏 물질을 배우는 공간인 아기바당(아기바다)과 자녀들의 학교 육성회비를 마련하고자 전복과 소라를 따는 공간인 학교바당(학교바다)을 둔다. 나이 많은 할망해녀들이 일하는 얕은 할망바당(할머니바다)도 있다. 용도와 필요에 따라 작업장을 나누는 공동체 연대가 발달한 것이다.

    제주 해녀들이 1932년 일제에 맞서 항일운동을 펼친 사실은 유명하다. 그 역사 현장인 제주 구좌읍에 해녀박물관이 있다. 매년 해녀박물관과 세화항 일대에서 열리는 해녀축제는 볼만하다. 전북 전주시 국립무형유산원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기념해 12월 6일부터 내년 3월 말까지 제주해녀문화특별전을 연다. 규장각이 소장한 해녀 관련 조선시대 고문서와 32년 일본 학자가 한국 해녀와 일본 해녀 ‘아마’를 비교한 논문, 그리고 물질 작업을 잡은 사진들이 나온다. 해녀들의 안녕을 빌었던 칠머리당 영등굿의 무구류 등 제주 해녀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유물 100여 점도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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