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4

2016.11.23

커버스토리

제조업, 대기업 중심 악순환 고리 끊기

내수 성장은 장기 불황 피하는 필수조건…산업 재편이 곧 사회개혁

  •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trustnet@naver.com

    입력2016-11-18 18: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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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경제가 빙하기로 진입하고 있다. 정부를 비롯한 일부 경제학자는 1997년 외환위기 같은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지만, 정작 국민은 지금이 그때보다 더 힘들다고 토로한다. 상대적으로 소비 여력이 있는 중산층마저 막연한 두려움에 소비를 줄이며 몸을 움츠리는 모습이다. 실제로 소비·생산·투자·수출 등 어느 하나 정상적인 것이 없을 정도로 현재 한국 경제는 자유낙하하고 있다. 문제는 수출→제조업→대기업→가계소득→가계소비의 연쇄적 후퇴가 구조적 원인에서 비롯한 것이기에 장기 불황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한국 경제는 1992년 자본시장 개방, 한중수교, 탈공업화와 함께 변곡점을 맞았다. 당시 산업체계의 전면 개편이 필요했으나 70년대 이후 세계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이를 미처 이해하지 못한 민주화운동세력은 세계화의 충격에 대한 고민 없이 ‘제2의 개항’을 추구했다. 그때 바로 내수 약화와 ‘수출에 목을 매는’ 대외 의존적 경제의 악순환 고리가 형성됐다. 기업은 수출가격의 경쟁력을 확보하고자 임금 인상을 억제하고 비정규직 고용 확대와 생산자동화, 생산기지 해외 이전 등으로 노동비용을 절감했다. 정부 역시 국내 투자 위축과 국내 산업의 공동화 같은 부작용을 극복하고자 감세와 노동시장의 유연화, 고환율정책 등을 내세우며 공격적인 자세로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정부는 제대로 구조조정을 하지 못한 채 오히려 제조업의 몸집을 키우는 데만 급급했다. 2009년까지 지속적으로 감소하던 제조업 취업자 수가 2010년부터 증가세로 전환한 이유도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제조업 몸집을 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1년 말부터 중국 경기가 뒷걸음질치면서 제조업 수요 감소와 그에 따른 투자 위축이 글로벌 경제의 저성장을 부채질했다. 이는 결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며, 한국 경제 또한 L자형 장기 침체에 접어들었다.



    구조조정 실패가 부른 좀비화

    한편 수출 의존적 성장 방식은 내수시장을 취약하게 만들어 가계부채를 양산했다. 노무현·이명박 정부에서는 가계부채가 1% 증가함에 따라 국내총생산(GDP)도 0.49~0.59%까지 높일 수 있었지만, 박근혜 정부에서는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자산가치 상승에 따른 소비 효과는 거의 사라졌고, 소득이 늘어도 빚을 갚는 데 상당 부분을 지출하면서 가계부채가 소득 증가의 걸림돌로 취급받고 있다.  



    현재 정부는 조선·해운업을 대상으로 장기 구조조정을 시행 중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 방침을 살펴보면 이번에 빼 든 칼 역시 무딜 가능성이 크다. 일본의 경험이 좋은 본보기가 될 것 같다. 1991년 2월 자산가격의 버블 붕괴가 시작되자 일본은 은행과 기업 등을 대상으로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 오히려 공적자금을 투입해 결과적으로 좀비기업을 양산했다. 그동안 일자리와 소득을 창출해온 제조업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90년대 말부터 제조업을 대체할 창조적 산업을 육성하려 했지만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그 결과 1999~2012년 전체 산업의 매출액, 고용 규모, 기업 수는 각각 7.8%, 22.9%, 6.5% 증가한 반면 창조적 산업 분야는 각각 -14.3%, -14.0%, -26.9%를 기록했다. 특히 제조업 분야의 창조적 산업은 각각 -45.6%, -50.5%, -50.3%를 보일 만큼 크게 후퇴했다. 제조업과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진 창조적 산업을 제조업 관점으로 그대로 접근한 탓이다. 99년 재정한 ‘산업활력재생특별조치법’(현 산업경쟁력강화법·일본판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원샷법))에 기초해 2000년대 기업 구조조정이 사업 통합 등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음에도 장기 불황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산업구조가 업그레이드되지 못하고, 산업체계의 다양화에도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정부가 구조조정을 과감하게 실행하지 못하는 이유도 일자리와 소득 창출 면에서 제조업이나 대기업을 대체할 만한 대안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번 정부뿐 아니라 다음 정부 역시 이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하리란 점이다. 게다가 ‘메이드 인 차이나 2025’ 프로젝트, ‘첨단기술굴기’ 프로젝트 등 산업구조 고도화를 추진하는 중국이 언제 우리나라 제조업시장을 초토화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결국 우리나라는 산업 재편의 방향을 찾지 못하는 한 제조업과 대기업의 좀비화, 즉 한국 경제의 좀비화로 몸살을 앓을 것이다. 1995년 우리나라의 3대 수출품목은 반도체·자동차·조선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는 곧 그동안 우리 정부가 산업 재편에 실패했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탈공업화의 함정에서 벗어나려면 가계부채 해결과 산업 재편이 시급하다. 먼저 가계부채를 해결하려면 ‘한국판 양적완화’ 도입이 필요하다. 세계경제가 수출 주도 성장에서 내수 주도 성장으로 변화를 요구하는 만큼 내수 성장은 장기 불황을 피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그러려면 좋은 일자리 창출과 가계부채 해결이 선행돼야 한다.



    가계부채 해결, 소비 위축 풀어야

    가계부채를 해결하는 한 가지 방법은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원리금분할상환 능력이 없어 매도를 희망하는 사람의 집을 매입해 집주인에게 다시 장기 임대를 하는 것이다. 그럼 개인은 현재 사는 집에서 쫓겨나지 않아도 되고, 부채 상환 부담에서도 해방될 수 있어 소비에 숨통이 트인다. 두 번째 방법은 한국은행이 정부가 발행한 저리채를 매입해 재정을 마련한 뒤 이를 한계가구의 신용 회복을 위한 지금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자활계획서를 제출하는 사람에게 저리의 정책금융을 지원해 이자 부담을 줄여주는 것도 방법이다. 금리 부담이 너무 큰 현 서민금융은 진정한 서민금융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새롭게 재편될 산업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한마디로 ‘제조업의 고부가치화·서비스화’라 하겠다. 대표적으로 미국 애플 앱스토어와 에어비앤비, 우버 등을 들 수 있다. 애플과 구글, 페이스북 등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래 제조업은 협력과 공유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 전환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며 민주주의를 자율민주주의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결국 우리 경제의 산업 재편은 ‘사회개혁’의 또 다른 말이라 할 수 있다. 자율민주주의는 경쟁에 기초하는 자유민주주의(제1민주주의), 통제 및 계획에 기초하는 인민민주주의(제2민주주의)와는 또 다른 제3의 민주주의다. 현재 우리 사회는 위계적 생산관계와 폐쇄적 기업조직, 공장제 통제 방식 등 전통적인 자본주의와 개방, 참여, 수직적 협력, 결과물 독점으로 연결되는 협업적 자본주의가 혼재해 있다. 자율민주주의가 정상 궤도에 진입해야 우리 경제의 새로운 장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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