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16

2005.12.27

불면의 밤 혹 하지불안증후군?

수면 중 다리 쑤시고 저리고 불편한 감각 … 인구 10% 앓고 있지만 병명 몰라 수년간 고통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5-12-26 09: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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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면의 밤 혹 하지불안증후군?

    하지불안증후군은 앉아 있거나 누워 있을 때, 또는 잠을 잘 때처럼 주로 휴식 중에 나타나며 저녁이나 밤에 증상이 더욱 심해진다.

    새벽녘이면 다리가 저리거나 벌레가 기어다니는 듯한 느낌 때문에 잠을 깨고 저도 모르게 다리를 움직이게 됩니다. 가장 힘든 점은 아무리 피곤하고 졸려도 쉴새없이 다리를 움직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벌써 수년 동안 이런 증상을 경험했는데 지금은 거의 잠을 이룰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아내도 저 때문에 잠을 설치기 일쑤입니다. 얼마 전에야 이 병의 정체를 알고 30년 묵은 체증이 시원하게 가시는 기분이었습니다.”(30대 남성 L 씨)

    이 남성이 앓고 있는 병은 이름조차 생소한 하지불안증후군(Restless Legs Syndrome ·RLS)으로 인구의 약 10%가 앓고 있을 정도로 흔한 질환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의사를 찾아가도 자신의 증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하고 수년 동안 고통을 겪으면서 수면장애에 시달리는 환자들이 많다.

    “새벽녘 나도 모르게 다리 움직여”

    하지불안증후군의 증상은 다리에서 무언가가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듯한 느낌이나 근질근질한 느낌, 욱신거림, 저리거나 쿡쿡 쑤심, 옥죔, 전류나 물이 흐르는 듯한 느낌 등 매우 다양한데 이러한 고통스럽고 불편한 감각 때문에 자신도 어쩔 수 없이 다리를 움직이려는 강한 충동을 겪는다. 이런 증상은 대부분 다리에서 느껴지지만 간혹 몸통이나 팔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불안증후군은 앉아 있거나 누워 있을 때, 또는 잠을 잘 때처럼 주로 휴식 중에 나타나며 저녁이나 밤에 증상이 더욱 심해진다. 다리를 움직여주면 증상이 완화되지만 일시적일 뿐 지속적으로 다리를 움직여줘야 한다. 그 때문에 환자들은 숙면을 취하기 어렵고 만성적인 수면장애에 시달린다. 잠이 들더라도 자주 깨곤 하여 낮에는 심한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직장생활이나 장거리 자동차 여행, 항공기 탑승 등 오랜 시간 앉아 있어야 하는 일에도 어려움을 느낀다. 심한 경우 영화관람 중에 다리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사람도 있다.



    하지불안증후군은 환자의 수면과 삶의 질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기분에도 영향을 미쳐 대인관계를 어렵게 만든다. 한 조사에 의하면 이 병을 앓는 환자의 절반 이상이 ‘우울하거나 기분이 처지는 경향이 있다’고 답했다.

    하지불안증후군의 근본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뇌 속의 도파민 전달체계의 이상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도파민이란 신체운동을 통제하는 신경세포 간에 신호를 전달하는 화학물질이다. 또한 유전적인 요인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부모, 형제, 자녀 등 가족 중에 하지불안증후군 환자가 있으면 자신도 이 병에 걸릴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임신, 당뇨병, 신장질환, 파킨슨씨병, 철분 부족 등으로 인해 생길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 병을 진단할 때 다른 특정 이상으로 인한 이차적인 하지불안증후군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불면의 밤 혹 하지불안증후군?

    하지불안증후군의 증상은 다리에서 무언가가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듯한 느낌이나 근질근질한 느낌, 욱신거림, 저리거나 쿡쿡 쑤심, 옥죔, 전류나 물이 흐르는 듯한 느낌 등이다.

    연령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나 걸릴 수 있지만 여성 환자의 비율이 좀더 높다. 연령이 높아짐에 따라 유병률이 높아지고 증상도 심해지는 경향이 있지만 소아에게서도 발병할 수 있다. 하지만 상당수의 환자들이 유년기에 처음 증상을 경험하면서도 중년이 되어서야 진단받은 경우가 많다. 어렸을 때는 ‘성장통’으로 간주되거나 부잡스런 행동쯤으로 여겨 지나쳐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불안증후군은 제대로 진단되지 못하거나 다른 질환으로 오인되는 경우가 많은데 첫째, 다리에서 불쾌한 감각이 느껴지고 이로 인해 다리를 움직이려는 강한 충동을 느끼고 둘째, 누워 있거나 앉아 있을 때, 또는 움직이지 않을 때 증상의 악화되며 셋째, 걷거나 스트레칭 등 계속 움직이는 동안에는 증상이 완화되고 넷째, 일반적으로 저녁이나 밤에 증상이 생기거나 심해지면 하지불안증을 의심해봐야 한다. 한편 야간 다리경련, 말초신경병증, 혈관질환, 신경이완제 복용으로 인한 다리 떨림, 불안증 등 유사한 증상을 동반하는 다른 이상들과는 구분돼야 한다.

    ‘성장통’ ‘과민한 성격’으로 오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질환인 만큼 하지불안증후군 전문 치료제로 허가받은 약물은 많지 않다. 올해 미국 FDA(식품의약국)와 국내 식약청은 도파민 효능제의 하나인 ‘리큅’(성분명: 로피니롤, 제조사: 글락소 스미스클라인)을 하지불안증후군 치료제로 처음 승인했다. 원래 파킨슨씨병 치료제로 허가받아 국내에서는 2001년부터 시판되고 있는 리큅은 뇌 속의 도파민 수용체를 직접 자극하는 제2세대 도파민 효능제 중 하나다. 이외에도 증상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는 진정제, 통증완화제, 항경련제 등이 사용되고 있다.

    한편 증상이 심한 환자들에게는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것도 하지불안증후군으로 인한 생활의 피해를 줄이고 수면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우선 초콜릿이나 커피, 차, 탄산음료 등 카페인이 함유된 음식을 삼가고 흡연, 음주를 피해야 한다.

    ‘리큅’ 치료제 국내 허가

    불면의 밤 혹 하지불안증후군?

    도파민 효능제의 하나인 ‘리큅’.

    또한 피로감과 졸음을 줄이기 위해 수면건강법을 실천하는 것이 권장된다. 이를 위해 시원하고 조용하면서 편안한 수면환경을 조성하고, 매일 밤 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고 일정 시간에 기상하는 정기적인 수면일과를 지키는 것이 좋다. 적어도 취침 6시간 전에 적절한 운동을 하는 것이 권장되지만 일부 환자들은 잠자리에 들기 직전에 적당한 운동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걷기, 스트레칭, 다리 마사지, 온·냉찜질 등도 증상을 일시적으로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환자마다 자신에게 맞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므로 먼저 하지불안증후군 증상을 악화시키는 생활습관을 파악하고 증상을 완화하는 데 유용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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