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16

2005.12.27

브라질 막을 자 누구냐

유럽 강호들 “2연패 저지 총력” 대결 준비 … 막강 전력 잉글랜드 도전자 0순위 손꼽혀

  • 최원창/ 축구전문기자 gerrard@jesnews.co.kr

    입력2005-12-21 16: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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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독일월드컵 본선 조 추첨이 열린 ‘독일 축구의 고향’ 라이프치히 현지에서는 ‘브라질 경계령’이 팽배했다. 유럽 축구 관계자들과 취재진은 브라질이 히딩크의 호주, 크로아티아, 일본 등과 F조에 포함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자신들의 나라와 언제쯤 만날지 손익계산을 뽑느라 분주했다.

    그도 그럴 것이 ‘카나리아 군단’ 브라질은 75년의 월드컵 역사를 통틀어 ‘개최 대륙에서 우승팀을 배출한다’는 징크스를 58년 스웨덴월드컵과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두 차례나 깨뜨린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이다. 호나우두, 호비뉴(이상 레알 마드리드), 호나우디뉴(바르셀로나) 등 ‘뉴 3R’에다 카카(AC 밀란), 아드리아누(인터 밀란) 등 초호화 공격수가 버티고 있어 타 국가들이 범접조차 하기 힘들다. 이렇다 보니 브라질은 이번 대회에서도 우승후보 0순위로 꼽히고 있다.

    ‘기술의 남미, 조직의 유럽’으로 대변되는 20세기만 하더라도 유럽과 남미는 세계 축구계를 양분해왔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각종 국제대회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독식하고 있을 만큼 남미 편중 현상이 심각하다. 브라질은 2002년 한일월드컵을 비롯해 2003년 세계청소년선수권(U-20), 2005년 컨페더레이션스컵을 거머쥐었고, 아르헨티나는 2001년과 2005년 세계청소년선수권과 2004년 아테네올림픽을 석권했다.

    그런 만큼 독일월드컵에 도전장을 내민 14개 유럽 국가들의 공통된 다짐은 ‘유럽 땅에서만큼은 브라질의 우승을 저지하자는 것’이다. 특히 20세기 브라질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개최국 독일을 비롯해 잉글랜드,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네덜란드 등 ‘빅6’는 브라질과의 자존심을 건 한판 대결을 준비하고 있다. 브라질의 거침없는 우승행진을 ‘축구 본토’ 유럽이 강력한 태클로 저지할 수 있을지, 유럽 각국들의 ‘우승으로 가는 길’을 짚어보자.

    몰락한 아트사커 프랑스도 부활 노려



    우선 ‘축구 종가’ 잉글랜드가 유력한 브라질 우승 저지국으로 꼽히고 있다. 66년 자국 대회 우승 외에는 챔피언에 오른 바 없지만 이제는 단조로웠던 예전의 ‘킥앤드러시’의 잉글랜드를 떠올려서는 안 된다. 스웨덴 출신의 스벤 예란 에릭손 감독이 4년간 지휘봉을 잡으며 잉글랜드는 다양한 개성의 선수들과 전술로 새롭게 무장했다. 마이클 오언(뉴캐슬)과 웨인 루니(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짝을 이룬 공격라인에다 스티븐 제라드(리버풀) 프랑크 람파드(첼시) 등 강력한 미드필드라인, 솔 캠벨(아스날) 퍼니낸드(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버틴 수비라인 등 좀처럼 허점을 찾아보기 힘들다.

    잉글랜드는 지난해 유로2004에서 개최국 포르투갈에 무릎을 꿇어야 했지만 전력만큼은 우승권이라는 평가를 받는 등 안정세로 돌아섰다. 에릭손 감독은 예선 막판 그동안 잉글랜드의 최대 약점이던 ‘왼쪽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4-3-3시스템을 꺼내 들었다가 잇단 졸전으로 사퇴 압력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브라질 등 유럽과는 다른 스타일의 강호들을 상대할 비책을 구상하고 있다.

    브라질의 호나우디뉴는 “본선 진출국 32개팀 모두가 뛰어나지만 그중 브라질과 함께 월드컵 결승에 진출할 나라는 잉글랜드라고 생각한다”며 잉글랜드의 강세를 예상했다.

    B조에 속한 잉글랜드가 우승으로 가기 위해서는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다시 만난 스웨덴을 제압해야 한다. 에릭손 감독의 조국이면서 68년 5월 이후 37년간 11차례 대결에서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스웨덴을 제압한다면 잉글랜드의 상승세를 막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녹슨 전차군단’이라는 오명을 듣고 있는 개최국 독일은 우승을 위해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강구할 태세다. 지난해 유로2004 조별 예선에서 탈락한 뒤 루디 푀ㄹ러 감독을 경질시키고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권좌에 올린 독일은 전설적인 스트라이커이던 하인츠 루메니게를 ‘전력강화 태스크 포스’ 위원장에 올리는 등 독일 축구계의 온 힘을 대표팀에 쏟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은 부임 후 독일 전통의 기계적인 3-5-2시스템을 버리고 과감히 포백을 도입하며 팀 체질 개선에 나섰지만 반응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쿠라니 포돌스키 클로제 등의 공격라인은 다른 강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세인 데다 여전히 둔탁하고 단조로운 팀 운영은 우승까지는 힘들 것이라는 예상이다.

    본선 조 추첨식에서 독일조직위는 54년 우승 주역인 에르켈, 74년 우승의 견인차 베켄바워, 90년 챔피언 등극의 일등공신 클린스만과 함께 미하엘 발라크(바이에른 뮌헨)를 등장시켰다. 자국에서 열렸던 74년 대회 이후 32년 만에 개최하는 이번 대회는 발라크를 전면에 앞세우겠다는 상징적인 의미다. 발라크가 독일 국민들의 염원을 이룰지는 미지수지만 축구는 혼자만이 하는 게 아니라는 의미에서 독일의 꿈은 비관적이다.

    하지만 독일은 2002년 한일월드컵 준우승까지 자신들이 출전했던 14개 대회 중 9개 대회에서 4강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전통적으로 ‘토너먼트의 강자’로 꼽히고 있는 데다, 홈 이점을 최대한 살린다면 예전의 영광을 재현할 가능성은 없지 않다. 게다가 독일이 속한 A조에는 코스타리카, 에콰도르, 폴란드 등 상대적인 약팀들이 속해 있어 조별 예선 통과는 무난하다는 평가다.

    ‘레블뢰(파란색 군단)’ 프랑스가 98년 월드컵과 유로2000을 잇따라 제패할 때만 해도 프랑스를 제압할 팀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프랑스는 2002 한일월드컵 이후 자멸하고 말았다. 유로2004에서 그리스의 역습 한 방에 지단은 은퇴 선언을 해야 했고, 레이몽 도메네크 감독이 부임한 뒤 젊은 피들을 대거 가동했지만 ‘아트사커’의 아기자기한 화려함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조 4위까지 처지자 도메네크의 선택은 다시 지단(레알 마드리드), 튀랑(유벤투스), 마켈렐르(첼시) 등 옛 스타들을 복귀시키는 방법이었다.

    이탈리아·스페인도 우승후보에 당당히 명함 내밀어

    그리고 간신히 4조 예선에서 5승5무(승점20·14득2실)로 1위에 올라 본선에 오를 수 있었다. 유로2004 현장에서 지켜본 프랑스는 흑백의 조화를 이뤘던 98년과는 자못 달랐다. 11명 중 9명이 흑인들로 구성된 프랑스는 다양한 개성을 자랑했던 위력을 상실한 것이다. 전성기 시절 자유자재로 선보였던 지단의 ‘마르세유 턴(360도 회전 드리블)’도 상대 태클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하지만 프랑스는 티에리 앙리(아스날)라는 세계 최고의 테크니션 킬러가 속해 있으며, 파비앙 바르테즈(마르세유)가 골문을 지키는 가운데 미카엘 실베스트르(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튀랑 등이 수비를 조율하고 비카시 도라쉬(파리 생제르맹)와 파트리크 비에라(유벤투스) 등의 허리, 지브릴 시세(리버풀)·다비드 트레제게(유벤투스) 등의 공격수를 앞세워 명예회복을 다짐하고 있다.

    독일월드컵을 ‘마카로니 웨스턴’으로 마감 짓겠다고 나선 ‘아주리(푸른) 군단’ 이탈리아. 이탈리아의 섬세함은 여전히 위력적이다. 비록 유로2004에서 조별 예선에 탈락했지만 기자가 본 16개국 중 가장 인상적인 팀은 역시 이탈리아였다. 네스타 칸나바로의 강력한 카테나치오(빗장수비), 참브로타의 왼쪽 공격 가담과 무서우리만큼 위협적인 가투소의 투혼은 이탈리아의 기세를 엿볼 수 있다.

    다만 노쇠화한 공격진이 걱정이다. 델 피에로와 비에리로 대표됐던 이탈리아 공격라인은 루카 토니, 알베르토 질라르디노, 안토니오 카사노 등 젊은 선수들로 교체됐다.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도박이 성공한다면 이탈리아는 의외의 우승을 일궈냈던 82스페인월드컵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이다.

    늘 우승후보로 꼽히면서도 단 한 번도 월드컵에 키스하지 못했던 네덜란드와 스페인. 그런 이유 때문에 이들 국가들의 독일월드컵 도전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특히 네덜란드는 독일 땅에서 분루를 삼킨 74년의 한을 바로 그곳에서 풀고자 한다.

    74년 서독월드컵 준결승전에서 만났던 독일(당시 서독)과 네덜란드. 요한 크루이프의 토털사커를 앞세운 네덜란드는 분명 베케바워의 역습에만 의존하는 독일을 눌러야 했다. 하지만 독일은 마치 제2차 세계대전에서 2시간 만에 암스테르담을 함락시켰듯이 네덜란드의 첫 우승의 꿈을 부정된 방법으로 앗아가고 말았다. 독일의 대중일간지 빌트(Bild)는 결승전이 벌어지기 전에 기자들을 네덜란드 숙소에 몰래 투입시켰고, ‘크루이프, 샴페인과 벌거벗은 여인들’이라는 악의적인 오보를 일삼았다. 크루이프는 마음이 심란했고 결국 결승전에서 패한 뒤 78년 월드컵에 출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말았다.

    체코·포르투갈은 공인된 다크호스

    41세의 전설적인 스트라이커 반 바스텐을 감독에 앉힌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는 준우승의 징크스를 만들어냈던 그 땅에서 첫 우승을 이뤄야 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

    반 니스텔루이(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로이 마카이(바이에른 뮌헨) 등 초특급 킬러에다 에드가 다비즈(토트넘), 필립 코쿠(에인트호벤), 반 데 바르트(함부르크), 아르옌 로벤(첼시) 등 미드필드라인, 반 데사르(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버티는 골문까지 네덜란드의 선수 구성은 튤립만큼이나 화려하다.

    다만 선수들의 개성이 특출나다 보니 강력한 팀 정신을 만들어내기 힘든 데다 고질적인 흑백 갈등, 아약스파와 에인트호벤파의 반목 등 팀 내 불화 요소는 여전히 네덜란드의 우승 가능성에 의문부호를 찍게 만든다. 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노골의 수모를 맛봤던 반 바스텐 감독이 자신의 쓰라린 경험을 어떻게 승화해낼지가 관건이다.

    마드리드의 카스티야,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 빌바오의 바스크 등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민족 갈등을 갖고 있는 ‘에스파냐’의 힘찬 비상이 이뤄질 수 있을까? 스페인은 유럽 예선에서 조 2위로 슬로바키아와 플레이오프를 치르며 힘겹게 본선에 올랐다. 하지만 스페인은 예선에서 5승5무(승점20)로 단 한 번도 지지 않았다.

    푸욜(바르셀로나), 살가도(레알 마드리드), 델오르노(첼시)의 수비와 알론소 가르시아(이상 리버풀), 호아킨(베티스), 비센테(발렌시아) 등의 미드필드라인의 무게감은 어느 팀과 비교해도 가볍지 않다. 다만 스페인 대표팀의 주장 라울 곤살레스(레알 마드리드)가 십자인대 부상이 심각해 월드컵 출전 자체가 불투명한 것이 큰 악재다. 하지만 스페인은 노장 모리엔테스(리버풀)에다 예선에서 7골을 터뜨린 토레스(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레예스(아스날), 루케(뉴캐슬) 등을 최전방에 포진시켜 챔피언 등극의 원대한 꿈에 도전한다.

    만일 ‘빅6’로도 브라질을 제압할 수 없다면? 기자는 그 대안으로 체코와 포르투갈을 꼽고 싶다. ‘두 개의 심장을 지닌 사나이’ 파벨 네드베드(유벤투스)가 버티고 있는 체코는 힘과 단단한 전술력을 두루 갖추고 있어 브라질도 쉽게 넘보지 못할 전력을 갖추고 있고,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브라질을 우승시켰던 브라질 출신의 ‘빅필’ 스콜라리 감독을 영입하며 지난해 유로2004에서 준우승을 거둔 포르투갈 역시 우승을 넘볼 다크호스로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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