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16

2005.12.27

박기영 보좌관은 왜 침묵하나

황 박사의 후원자로 논문에도 공저자 이름 올라 … 정작 의혹 불거진 뒤엔 ‘묵묵’

  • 강양구/ 프레시안 기자 tyio@pressian.com

    입력2005-12-21 13: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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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우석 교수가 2005년 ‘사이언스’ 발표 논문에 공개한 11개의 줄기세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이 소식을 접한 많은 사람들은 맨 먼저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라는 본질적 의문을 제기한다. 국내외 수많은 생명과학자들이 줄기세포를 주시했고, 정부도 직·간접적 지원을 통해 관심을 표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황우석의 대도박이 가능했던 것일까.

    황 교수는 다른 어떤 과학자보다 정부로부터 큰 혜택을 입었다.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역설적으로 황 교수의 대도박을 몰고 온 주요 배경이라고 과학자들은 보고 있다. 또 황 교수는 몇몇 관료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관료들의 이런 지원은 결과적으로 황 교수의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 외풍을 차단하는 구실을 했다. 박기영 대통령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은 황 교수를 지원한 대표적인 관료다. 그와 황 교수의 특별한 관계는 해외에도 알려졌다. 세계적인 과학 잡지 ‘네이처’는 11월17일자 ‘규제 기구여 부디 일어서라’라는 사설을 통해 이례적으로 청와대의 박기영 보좌관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판했다. 이 잡지는 “대통령의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인 박기영은 황 교수가 2004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의 공저자 중 한 사람이기 때문에 (황 교수 연구를 둘러싼 윤리 문제) 조사를 주도할 인물로 적격이 못 된다”며 “특히 그가 이 연구에서 자신의 역할을 ‘생명윤리 자문역’이었다고 설명한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잡지는 더 나아가 “박기영의 (황우석 연구에서 했던) 실제 역할은 여전히 수수께끼에 싸여 있다”며 “이번 사안에 대한 조사는 다른 누가 맡더라도 그보다는 잘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논문 작성 땐 윤리 자문, 정작 윤리 분쟁 터졌을 땐 ‘잠잠’

    과학 학술 잡지가 한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을 총괄하는 핵심 관료에 대해서 실명 비판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박 보좌관이 어떤 일을 했기에 ‘네이처’까지 나서서 문제점을 지적한 것일까. 순천대 생물학과 교수였던 박 보좌관과 황 교수의 인연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과학계 및 시민단체 등은 생명윤리법 제정을 둘러싸고 첨예한 찬반 논란을 벌였다. 박 보좌관은 당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 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생명윤리법의 핵심 쟁점인 복제 연구 허용에 대해서 다른 시민, 사회단체의 반발을 무릅쓰고 과학계 편을 들었다. 당시 경실련 과학기술위원회에서 활동하던 대전 소재 연구소의 한 과학기술자는 “어느 날 갑자기 경실련 과학기술위원회 명의로 ‘복제 연구에 찬성한다’는 취지의 의견서가 나와 깜짝 놀란 적이 있는데 알고 보니 박 보좌관이 독자적으로 결정해 내놓은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전달했다. 물론 이 일을 통해서 박 보좌관과 황 교수는 가까운 사이가 됐다.

    이를 계기로 두 인사는 본격적으로 친분을 나누었고 최근 박 보좌관은 자타가 공인하는 황 교수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로 부상했다. 정부는 1998년부터 최소 380억원의 예산을 들여 황 교수에게 재정적 지원을 했다. 그중에 265억원이 박 보좌관의 재직 이후 집행이 결정됐다. 통상적인 예산 편성과 달리 갑작스럽게 편성된 이 예산은 박 보좌관이 직접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한 것이다.



    결국 무리하게 편성한 예산은 부작용을 낳았다. 265억원 중 150억원은 과학기술부가 명목상으로는 ‘최고 과학자 연구 지원 사업’ 예산으로 편성했다. 과기부는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선정 절차도 거치지 않고 올해 지급할 금액 30억원부터 황 교수에게 먼저 지원했다. 이 과정에 해프닝도 벌어졌다. 10억원이 모자라자 과기부 일반회계의 ‘국가 특별 연구원 육성 지원 사업’의 예산을 전용한 것. 알고 보니 이 사업은 박사 학위 취득 후 2년 이내의 연구자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10명의 젊은 과학자를 선정해 1억원씩 총 10억원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11월 황우석 교수의 2004년 사이언스 발표 논문에 쓰인 난자의 출처를 둘러싸고 윤리 문제가 제기되면서 둘의 관계는 본격적으로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박 보좌관은 식물학자이면서도 자신의 전공과 전혀 상관 없는 황 교수의 2004년 논문에 공동 저자로 이름이 오른 것이 언론의 눈에 띈 것. 황 교수 측은 “연구에 포함된 생명윤리 관련 내용을 지켜보고 자문했다”는 것을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리게 된 배경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박 보좌관은 그해 4월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황 교수의) 논문에 구체적으로 기여한 바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이런 인터뷰 내용이 국내에 알려지자 “황우석 교수가 수행한 여러 연구의 생명윤리 문제에 대해서 연구하고 조언했다”며 “자신이 논문의 공저자로 들어간 것은 떳떳하다”고 해명했다. 더 나아가 그는 네이처와 생명윤리학회 등에서 제기했던 ‘난자 출처가 의심스럽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사이언스에 논문이 실릴 때 윤리적 검토가 다 끝났다”며 황 교수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그의 이런 해명은 곧바로 의혹으로 이어졌다. 박 보좌관의 해명은 과연 사실일까? 박 보좌관이 황 교수와 공식적으로 함께 한 프로젝트는 정보통신부가 지원한 ‘광우병 내성 유전자 조작 소’ 연구였다. 박 보좌관은 이 프로젝트의 일부로 진행된 사회적 영향을 따지는 연구의 책임자로서 윤리 문제를 자문했다. 하지만 이 연구는 유전자 조작 식품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대한 것이어서 이를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자문이라고 우기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어쨌든 박 보좌관은 2004년 당시 여러 차례에 걸쳐 자신의 ‘학자적 양심’과 ‘공직자 윤리’를 걸고 황 교수 연구의 윤리 문제에 대한 자신의 기여를 자신했다.

    최근 황 교수의 2004년 사이언스 발표 논문에 쓰인 난자의 출처가 연구원으로부터 난자를 채취하고 매매된 난자를 사용하는 등 심각한 윤리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난자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한 연구원은 실험 과정에서 난자를 많이 손상시켰고 이에 대해서 큰 부담을 가졌다고 한다. 난자 제공에 암묵적으로 ‘강제성’이 있었을 수도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박 보좌관은 이런 심각한 윤리 문제가 제기되는 가운데서도 꾹 다문 입을 열지 않았다. 연구에 대한 윤리 문제를 자문해서 그 공로로 공동 저자가 됐다는 사람이 정작 심각한 윤리 문제가 있었음이 밝혀졌는데도 도무지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PD수첩 파문 이후에도 일방적으로 황 교수 옹호?

    한편 황우석 교수의 2005년 사이언스 발표 논문이 조작된 것은 아닌지, 또 줄기세포가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를 둘러싼 최근 논란에서도 박 보좌관은 노골적으로 황 교수를 편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1월27일 노무현 대통령은 MBC ‘PD수첩’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청와대 브리핑에 기고한 글을 통해 박 보좌관이 PD수첩의 태도에 대해 큰 우려를 표명한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PD수첩이 줄기세포 진위 논란과 관련해 상당히 신빙성 있는 의혹을 제기했음에도 박 보좌관이 노 대통령에게 일방적으로 황 교수를 옹호하는 보고를 했다는 의혹을 살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박 보좌관은 이런 PD수첩의 의혹 가운데 상당 부분이 사실로 드러난 최근까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청와대는 사실상 황 교수와 관련한 논의 구조에서 박 보좌관을 제외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우석’이란 상품의 이미지가 땅에 떨어진 지금, 그녀의 세일즈 능력이 필요가 없어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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