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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취재|이동통신 최강국 ‘영국’을 가다

규제 NO! ‘고객 최우선’이 성공 비결

업체들 완전 자율경쟁 체제 … 요금 할인· 서비스에 사활, 회사도 고객도 윈-윈

  • 런던=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규제 NO! ‘고객 최우선’이 성공 비결

규제 NO! ‘고객 최우선’이 성공 비결

영국 주요 이동통신망 사업자들의 직영 점포들.

런던 서남부 외곽의 켄징턴 하이스트리트. 고급 주택가로 유명한 노팅힐, 쇼핑 명소 나인브릿지와 가까운 번화가다. 불과 200m 남짓한 거리 중심부에는 모두 6개나 되는 휴대전화 서비스 가입처가 있다. ‘보다폰’ ‘오렌지’ ‘O2’ 등 영국 대표 이동통신망 사업자들의 직영점은 물론, 우리나라에는 없는 ‘더 링크’ 같은 판매전문 체인점, ‘카폰’ ‘웨어하우스’ 등 MVNO(가상 이동통신사업자: 기존 이동통신업체 망의 일부를 빌려 저렴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 대리점까지. 과연 국민의 90%가 휴대전화를 소유하고 있는 나라답다.

영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이동통신 최강국이다. 우선 스케일부터 다르다. 보다폰은 세계 30개국에 1억명이 넘는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오렌지는 세계 17개국에 5000만명의 가입자가 있다. 보다폰, 오렌지, O2에 이어 영국 내 4위 업체인 T모바일 역시 세계적으로는 8000만명의 고객을 갖고 있는 글로벌 기업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KT나 SK텔레콤은 ‘우물 안 개구리’에 가깝다.

보다폰, 세계 30개국 고객 1억명 확보

보다폰, O2, 오렌지, T모바일 등 영국의 주요 이동통신사들은 고객 서비스에서도 각종 ‘세계 최초’ 기록을 갖고 있다. 이들의 앞선 서비스와 마케팅 노하우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외국 사업자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돼왔다. 그리고 그 화려한 성공 뒤엔 영국 정부의 확고하고 효율적인 ‘규제 자유화·자율화’ 노력이 숨어 있다. ‘오직 고객’만을 외치며 열린 시장에서 처절한 생존 투쟁을 벌인 결과, 지금의 탁월한 국제 경쟁력을 갖게 된 것이다.

영국의 통신정책은 철저히 시장논리에 입각해 있다. 영국의 ‘통신방송융합위원회’에 해당하는 오프콤(Ofcom)은 규제정책을 담당하는 독립 위원회이지만, 오히려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과감히 폐지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동통신 요금 규제나 사업자에 대한 ‘행정지도’는 있을 수 없는 일. ‘소비자 이익 극대화’가 지상과제인 만큼, 공정 경쟁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주력한다. 사실 우리나라처럼 정부의 특정 부처(정보통신부)가 ‘산업진흥 정책’과 ‘기업규제 정책’을 동시에 수행하며 사업자들에게 직접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정보통신산업 전문 컨설팅사 ‘OVUM’의 토니 라벤더 통신담당 디렉터는 “영국 이동통신 시장에선 특정 업체에 대한 ‘배려’나 ‘차별적 패널티’가 없다”며 “각사의 운명은 철저히 고객의 선택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그는 “후발 사업자인 오렌지의 눈부신 성공이 그 산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우리나라 후발 사업자(KTF·LG텔레콤)들은 오렌지 성공 신화가 영국 정부의 효율적 ‘비대칭규제(후발 사업자 배려 정책)’의 산물임을 자주 언급해왔다. 그러나 영국 현지 관계자들의 말은 전혀 달랐다. 오렌지의 니알 오키프 브랜드&소비자 담당 부사장은 “오히려 여러 악조건이 오렌지의 경쟁력 향상에 큰 힘이 됐다”며 “그를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은 투자와 더 고객 지향적인 서비스 전략을 절박하게 펼쳐나간 때문”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영국 통신시장 전문가 중 한 사람인 김국진 미디어미래연구소장 또한 “망 설치, 광고 등에 대한 영국 이동통신 후발 사업자들의 투자는 엄청난 것이었다”고 말했다.

영국이 이동통신 서비스를 처음 시작한 것은 1985년이다. 사업자는 보다폰과 O2. 이어 93년 9월과 94년 4월, 각각 T모바일과 오렌지가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두 회사가 이른바 ‘후발 사업자’인 셈이다. 이들 중 특히 오렌지의 성장은 눈이 부실 정도였다. 98년부터 2001년까지 매해 21.2~52.4%의 놀라운 성장률을 기록한 것. T모바일의 경우 도이치텔레콤에 인수합병된 뒤에야 새 대주주의 본격적 투자로 인해 2001~2003년 매해 각 37~43%씩 성장하는 약진을 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현재 영국 이동통신 시장은 보다폰, O2, 오렌지, T모바일 등이 각기 25% 안팎의 시장점유율을 가진 매우 안정적인 구도를 이루고 있다. 이에 대해 오프콤의 사이몬 베이츠 홍보 매니저는 “효과적인 경쟁 정책이 낳은 축복”이라고 말했다.

상위 4개 업체가 25% 정도씩 시장 나눠가져

그렇다면 정말 정부는 후발 사업자를 위해 아무것도 안 한 것일까. 우리나라 후발 사업자들은 “영국 정부가 유통망 규제라는 매우 압도적인 선발 사업자 규제 정책을 실시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영국 현지에서 이에 동의하는 이동통신 전문가는 한 명도 만날 수 없었다.

영국 정부, 정확히 말해 오프콤의 통신분야 규제 전신인 오프텔(Oftel)은 85~93년 보다폰과 O2의 소매시장 직접 진출을 막았다. 대신 별도의 판매사업자(서비스 프로바이더)를 통해서만 고객을 만날 수 있게 했다. OVUM의 토니 라이더 씨는 “이는 후발 사업자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O2가 자사의 대주주인 브리티시텔레콤 유통망을 활용해 보다폰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상황을 막기 위한 조처였다”고 설명했다.

한편 OVUM의 통신전략 분석가인 세라피노 아베이츠 씨는 “유통망 규제는 보다폰, O2 등 이동통신망 사업자와 판매사업자 간 서비스 경쟁을 유도해 소비자 권익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판매사업자가 영업을 독점하는 상황에서 이동통신망 사업자는 서비스를 향상시킬 이유를 찾지 못했다. 결국 경쟁은 일어나지 않았고, 유통망 규제 정책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실제로 T모바일이 이동통신 시장에 뛰어든 직후인 93년 말과 94년 초, 정부는 두 선발 사업자에게 개정 사업면허를 부여하면서 소매시장 직접 진출의 길을 터주었다. 후발 사업자 진출 후 오히려 선발 사업자에 대한 규제를 완화한 것이다. “소매를 대행하겠다는 판매사업자에겐 적극 협조해야 한다”는 조건은 그대로였으나, 이 역시 2002년 완전히 사라졌다.

이에 대해 오렌지의 홍보 매니저 사라 테일러 씨는 “당시의 정부 규제는 오렌지에 거의 아무런 이익도 가져다주지 않았다”며 ‘후발주자 배려론’을 일축했다.

그러나 국내 정보통신학계에선 여전히, 영국 정부의 선발 사업자에게 대한 소매시장 진출 제한이 후발 사업자에 큰 도움이 됐을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공정경쟁연구실 이상규 연구원은 “사업자나 컨설턴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다”며 “아울러 영국 정부의 규제 자유화 정책이 진정 옳은 길인지는 좀더 시간이 흐른 뒤 평가할 일이며, 국가마다 역사적 배경과 정책 기조가 다른 만큼 단순 비교는 무리”라는 의견을 덧붙였다.

우리나라 후발 사업자들은 또 “영국의 후발주자들은 휴대전화 보급률이 6.5%이던 시절 시장에 진입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보급률이 14%나 됐을 때 (후발주자의) 시장 진입이 이루어져 선발 사업자들을 따라잡기가 더 힘들었다”는 주장을 펴왔다. 그러나 이 역시 근거가 명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T모바일이 시장에 진입할 당시 영국의 휴대전화 보급률은 3%였다. 7개월 후 오렌지가 진입했을 때는 이미 6.5%. 하지만 성장 속도는 오렌지가 훨씬 더 빨랐다. 유럽에서 통신규제 환경이 우리나라와 가장 비슷하다는 프랑스만 해도, 브이그텔레콤이 시장에 진입할 당시 휴대전화 보급률은 4%로 매우 낮았으나, 출범 후 7년이 지나도록 브이그텔레콤의 시장점유율은 15%에 불과했다. 독일의 E플러스 역시 보급률 3%대에 시장에 진입했으나 출범 8년 후에도 시장점유율은 12%대에 머물렀다.

“시장 진입 순서보다 서비스 경쟁력이 우선”

오프콤의 닉 그린 전략자문위원은 “이동통신기업의 성장은 ‘누가 먼저 진입했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경쟁력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영국의 통신정책은 규제를 없애는 대신 각 사업자가 시장에서 최대한의 자율성을 발휘, 치열한 서비스 및 설비 경쟁을 통해 고객에게 검증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때 오렌지에 한참 뒤처졌던 T모바일이 새 대주주인 도이치텔레콤의 적극적 투자로 단기간에 높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 또한 그 한 예라 하겠다.

규제는 최소화하고 경쟁은 활성화하는 통신정책 덕분에 영국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고객 중심 경영에 절대적 가치를 두게 됐다. 기본료 없는 선불카드요금제, 요금충전카드 개발, 과감한 단말기 보조금 사용, 각종 기발한 할인요금제도의 도입 등은 모두 ‘고객 감동’을 향한 사업자들의 치열한 노력의 산물들이다. 동영상 중심의 3세대(3G) 서비스 개발만 해도 사업자들의 관심은 온통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이 돈을 덜 쓰면서 3G를 쉽고 효과적으로 즐길 수 있을까’에 모아져 있다.

닉 그린 자문위원은 “건강한 경쟁은 소비자에게 좋은 것이라 확신한다”며 “사업자 간 경쟁은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준다. 반면 규제기관의 지나친 간섭은 산업에 큰 부담이 되며 불필요한 비용 발생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각 기업이 스스로 소비자 보호에 나서고 자율 규제를 해나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밝혔다.





주간동아 2005.12.13 514호 (p56~58)

런던=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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