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2

2005.09.13

자전거로 찾은 속초 감동 파도 확 밀려오네

서울서 동해안까지 4박5일 평균 시속 16.7km 여행 … 여름 끝자락 강원도 아름다움 확인

  • 김성규/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kimsk@donga.com

    입력2005-09-07 17: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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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로 찾은 속초 감동 파도 확 밀려오네

    자전거 여행의 매력은 세상의 길들이 몸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데 있다.

    ‘진부령 정상입니다.’

    호우주의보가 강원도 전역에 내려졌던 8월25일, 빗속을 달린 끝에 오후 4시쯤 고개 정상임을 알리는 표지판을 만났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마침내 해발 529m의 진부령 정상이다. 진부령은 내륙에서 동해 연안의 속초로 가기 위해 넘어야 하는 고개 중 미시령, 한계령에 비해 높이가 낮다.

    진부령 정상에 도착했다는 사실은 이번 자전거 여행에서 목표점으로 정했던 속초까지의 여정이 거의 끝났음을 의미했다. 앞으로 더는 가파른 오르막이 없기 때문이다.

    자전거는 이제 다리 근육의 힘이 아닌 중력만으로도 내리막길을 빠르게 달린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모를 수증기가 자욱하게 깔린 산길을 최고 시속 58km의 빠르기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좋다. 다니는 차도 거의 없어 상쾌하다. 자전거는 자동차와 달리 엔진이 내는 시끄러운 소리가 없기 때문에 마치 낮게 떠 공중을 날고 있는 느낌이다.

    진부령 정상에서 10여km 내리막을 내쳐 달리는 동안 몸은 부모님이 사주신 첫 자전거를 타고 동네 언덕을 신나게 달려 내려가던 일곱 살 언저리 시절의 기억을 불러냈다.



    일주일 휴가기간 엄청난(?) 도전

    자전거로 찾은 속초 감동 파도 확 밀려오네

    강원 인제군을 80km 앞둔 필자.

    그 무렵 처음 접한 자전거는 환상이었다. 달리는 것보다 몇 배 빠르면서 힘도 덜 들었다. 자전거로 인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나의 활동 공간은 넓어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자전거는 삶에서 멀어졌다. 입시 공부에 몰두해야 했던 고교 시절을 지나 놀거리가 넘쳐났던 대학시절, 그리고 대학 졸업 뒤 ‘사투’를 벌여야 했던 초기 직장생활까지 넘어오자 자전거는 완전히 밀려났다. 속도가 중시되는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 한가롭게 자전거를 탈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찾지 못했다.

    자전거가 다시 내 삶에 편입된 것은 부족한 운동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헬스클럽에서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것은 지루했고, ‘전성기’ 때보다 10kg이 넘게 불어난 몸무게로 인해 무릎에도 무리였다. 자전거는 좋은 운동도구였다.

    자전거에 다시 조금씩 애정을 붙일 무렵 언론인 출신 소설가 김훈이 쓴 ‘자전거 여행’ 1편을 접했다. 발간된 지 2년이 넘은 2002년쯤이었나 보다.

    자전거로 찾은 속초 감동 파도 확 밀려오네

    춘천의 고즈넉한 풍경.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속으로 흘러 들어온다’로 시작하는 책의 서문은 매혹적이었다. 자전거로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는 작가의 모습은 부러우면서 놀라웠다. 그 무렵 때마침 ‘빠름’에 대항하는 ‘느림’의 가치를 주창하는 책들이 유행처럼 서점가를 휩쓸었다. ‘나도 자전거로?’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마침내 올여름 일주일간의 휴가기간에 자전거로 속초까지 가볼 결심을 했다. 여행에 필요한 용품은 두 달에 걸쳐 인터넷 쇼핑몰을 뒤져가며 구입했다. 누구는 자전거를 타고 속초까지 1박2일로 갔다 왔다고도 하지만 나는 중간 중간 야영을 하며 최대한 천천히 ‘세상의 길들’을 느끼며 속초에 입성할 계획이었다.

    몸을 만들기 위해 두 달 동안 거의 날마다 헬스클럽에서 고정 자전거를 20분 정도 탔고, 휴일에 시간을 내 수서에서 분당까지 이어지는 탄천변 자전거 도로에서 하루 최대 40km 정도의 라이딩을 했다.

    출발일인 22일이 막상 하루 앞으로 다가오자 걱정이 되었다.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지방의 도로 사정은 어떨지, 텐트를 치고 잘 곳은 쉽게 찾을 수 있을지, 내 몸이 하루 100km 정도의 주행을 견딜 수 있을지, 이 모든 것이 하나하나 걸렸다.

    출발 당일인 22일 새벽 5시 반. 자전거 짐받이에 약 30kg의 짐을 싣고 서울 강남구 일원동의 집 문 밖을 나섰다.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망설이지 않고 그대로 달렸다.

    한강 둔치의 자전거도로를 달려 미사리 근처까지 가는 것은 쉬웠다. 그러나 자전거도로가 끝난 지점에서 팔당대교까지 가는 도로를 찾는 것이 첫 번째 도전이었다. 길을 잘못 들어 결국 차들이 시속 100km 이상 달리는 새벽 올림픽대로를 잠깐 타야 했다. 갓길도 없는 데다 굉음을 내며 옆을 스치듯 지나가는 차들은 공포 자체였다.

    몇 차례 헤맨 끝에 45번 국도에 안착했고, 북한강 옆을 따라 올라가다 46번 국도로 갈아탔다.

    길을 떠나고 보니 모든 것이 꽤 순조로웠다. 곧 주변 경치도 감상하며 자전거를 탈 정도의 여유도 찾았다. 오후 4시경 춘천 진입을 10여 km 앞두고 관광정보센터에 들러 야영지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북한강과 이어진 의암호에 있는 위도 유원지로, 그곳까지 가는 403번 지방도로는 특히 주변 경치가 아름다웠다.

    빗속 자전거 주행 색다른 경험

    그런데 위도까지 10km쯤 남기고 오른쪽 무릎에 이상 신호가 왔다. 심하게 시큰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거리계는 이제까지 달려온 거리가 110km임을 알려주고 있다. 첫날 주행 거리로는 너무 길었던 모양이다. 위도에 도착해 강 옆 숲속 야영지에 텐트를 치고 안에 누우니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다음 날 날씨는 활짝 갰다. 이날은 위도에 있는 수영장에서 수영도 하고 숲길을 산책하고, 잔디밭에 누워 책도 읽으며 한가롭고 조용하게 보냈다.

    자전거로 찾은 속초 감동 파도 확 밀려오네

    4박5일간 필자와 동행한 애마.

    8월24일 새벽 텐트를 접고 다시 짐을 꾸려 자전거 안장에 올라탔다. 조심스레 페달을 밟아보니 다행히 무릎 상태가 많이 호전됐다. 60km 정도 떨어진 양구까지 가기로 했다.

    양구에 가려면 중간에 해발 600m 높이의 배후령을 넘어야 한다. 고개 전체 길이는 한 10km쯤 될까. 하지만 이 구간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었다. 20분 주행과 휴식을 반복해야 했다. 한발 한발 있는 힘껏 페달을 밟노라면 금세 숨이 가빠졌다. 4시간가량의 라이딩 끝에 마침내 정상에 오르니 양쪽 허벅지는 젖산을 잔뜩 머금어 팽팽하게 부풀었다. 손가락으로 살짝만 눌러도 고통이 찌리릿 전해진다.

    양구에도 강변에 야영장이 있었다. 오르막을 힘들게 오른 때문인지 양구에 도착해 야영장에 텐트를 치고 나자 이마에 열이 있었고 한기도 느껴졌다. 시내로 나가 약국에서 감기약을 사 복용하고 동네 목욕탕에서 땀을 뺐다. 식당에서 밥을 챙겨 먹고 텐트에 들어가 침낭을 뒤집어쓰자 밖에서는 비까지 와장창 쏟아지기 시작했다. 습기 때문에 텐트 안이 축축해진 데다 강풍이 텐트를 뒤흔드는 바람에 여러 차례 잠에서 깼다.

    다음 날 오전에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그래도 출발했다. 원래 계획은 경사가 비교적 완만하고 경치가 좋다는 한계령을 넘으려고 했다. 하지만 해발 600m의 배후령을 넘으며 지독하게 고생한 경험 때문에 진부령으로 향했다.

    빗속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처음에는 몸이 젖는 느낌이 싫었지만 익숙해지면 차라리 땡볕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보다 시원해서 괜찮았다. 헬멧 아래 받쳐 쓴 모자챙이 얼굴로 들이닥치는 비를 막아줘 시야도 크게 방해받지 않았다. 단점은 몸이 젖고 비 때문에 기온도 내려가기 때문에 휴식은 가능한 짧아야 한다는 것. 금방 추워지기 때문이다. 몸을 따뜻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계속 페달을 밟는 것뿐이다.

    오후 4시쯤 간성에 도착했고 그대로 7번 국도를 타고 속초로 향했다. 곧이어 나타난 동해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차를 타고 편하게 왔다면 느끼지 못했을 감동이었다.

    속초까지 몇 km를 앞두고 바닷가 옆 펜션에 방을 잡았다. 바다가 보이는 큰 창문에 베란다가 있는 예쁜 방이었다. 출발할 때 준비해간 건조비빔밥으로 저녁식사를 한 뒤 침대에 쓰러지자 바로 잠이 들었다.

    일찍 잔 덕분에 새벽 4시쯤 저절로 눈이 떠졌다. 날씨는 거짓말처럼 깨끗하게 갰다. 베란다로 나왔다. 하늘에는 새벽 별이 총총했다. 한 시간쯤 지나자 수평선에 낮게 깔린 구름 뒤로 태양이 막 떠오르려고 했다. 한 시간에 걸친 일출 과정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오전에 젖은 텐트와 침낭, 옷을 햇볕에 말린 뒤 오전 11시경 짐을 꾸려 다시 7번 국도를 탔다. 성수기가 지나 한산해진 해수욕장들은 다소 을씨년스럽다. 속초를 지나 양양, 주문진을 그대로 통과한다. 이제 강릉이다. 저녁 무렵 경포대에 도착했고 이곳에서 가장 좋아 보이는 호텔에서 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내기로 했다.

    아침에 호텔을 나서보니 강릉 시내는 지척이었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서울행 차표를 끊고 자전거 앞뒤 바퀴를 떼어내어 버스 화물칸에 실었다. 강릉에서 서울까지 차로는 불과 3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 내려 자전거를 조립한 뒤 한강 둔치 자전거도로를 통해 집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경. 거리계는 정확히 380km를 가리키고 있다. 이것이 휴식일 하루 빼고 4일 동안 내 힘으로 달린 총거리였다.

    몸은 그다지 피곤하지 않았다. 얼굴과 팔뚝, 허벅지는 햇빛에 그을려 커피색이었고, 허벅지는 팽팽해진 느낌이었으며, 허리 사이즈는 조금 줄어든 듯했다. 자전거 여행을 시도해보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균 시속 16.7km의 속도가 아니었으면 강원도가 그렇게 아름다운지 몰랐을 것이다. 짧은 여정은 끝났지만, 내 삶에서 자전거 여행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 여행 경로

    첫째 날: 서울 강남구 일원동 출발-한강 자전거도로-미사리-팔당대교-가평-춘천 위도 둘째 날: 휴식 셋째 날: 춘천 위도-배후령-양구 넷째 날: 양구-인제-원통-진부령-간성 다섯째 날: 간성-속초-양양-주문진-경포대-강릉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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