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2

2005.09.13

‘십자군 전쟁’ 참회합니다

쾰른 세계 가톨릭 청년대회 교황 첫 고국 나들이 … 관용과 화해 메시지 전달

  • 슈투트가르트=안윤기/ 통신원 friedensstifter@gmail.com

    입력2005-09-07 1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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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군 전쟁’ 참회합니다

    세계 가톨릭 청년대회에 참석한 교황 베네딕트 16세.

    8월 내내 독일의 방송과 신문을 장식했던 것은 쾰른에서 열린 세계 가톨릭 청년대회였다.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1985년 처음 시작돼 올해로 20회를 맞이한 이 대회는 8월16일부터 21일까지 전 세계 197개 나라의 청년 100만여명을 라인 강변의 유서 깊은 도시 쾰른으로 불러 모았다. 이곳 쾰른 대성당은 아기 예수의 탄생을 경배한 동방박사들의 유해 일부가 보존돼 있다고 알려진 곳이다. 이 점을 감안한 듯 대회의 모토는 ‘우리가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성서 마태복음 2장 2절)였고, 대회 참가자들에게는 동방박사와 같은 순례자적인 마음가짐이 요구됐다. 한국에서도 900여명이 대회에 참석했다.

    그러나 이 대회가 전 세계 뉴스의 초점이 된 것은 단지 규모가 ‘매머드급’ 행사였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4월 선출된 신임 교황 베네딕트 16세의 첫 공식 해외 나들이이자, 공교롭게도 이 행사가 그의 조국 독일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이 된 뒤 처음으로 고국 폴란드를 방문했을 때, 감격스러워하는 폴란드인들의 모습이 방송 전파를 타고 전 세계에 전달됐다. 독일인들 역시 교황의 금의환향을 기다리며 이와 흡사한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

    각국 젊은이들 “베네딕트!” 연호

    대회가 시작되자 예상대로 엄청난 수의 순례자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들었다. 쾰른 한 도시에서만 그 인원을 다 수용할 수 없어, 인근의 대도시 본과 뒤셀도르프에도 사람들을 분산 배치시켰다. 종교 집회라 하면 보통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생각하지만, 현지 분위기는 그야말로 월드컵을 방불케 하는 축제 무드였다. 연일 흐린 날씨에 비도 많이 왔지만 젊은이들이 뿜어내는 열정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그들은 각국의 국기를 휘날리며 춤을 추었고 노래 대결을 벌였다. 급기야는 쾰른 축구경기장에서 열린 개막 미사에서 쾰러 독일 대통령이 축사를 하는 중 일부 청년들이 장난 삼아 시작한 ‘파도타기’가 관람석을 여러 바퀴 도는 바람에 연설이 중단되는 난처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다 보니 하루 세 끼 배식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한 시간 이상 줄을 서는 것은 기본. 간신히 받아낸 급식 봉투 안에는 빵 한 조각과 버터, 초콜릿, 과일 하나 정도가 고작이었다. 젊은이들은 그것을 받아들고는 비바람을 피할 만한 곳에서 옹기종기 앉아 음식을 먹었다. 잠은 쾰른 시내 각 교회의 부속 시설이나 실내 체육관, 학교 건물 등에서 잤는데, 일부 청년들은 노숙을 감행하기도 했다. 또 수많은 인파가 한꺼번에 특정 장소로 몰려드는 바람에 쾰른 시내 교통은 수시로 마비됐다. 이처럼 혼란스럽고 고생스러운 여정이었지만, 배낭 하나 메고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젊은이들은 축제의 열기와 스스럼없는 우애에 도취돼 그런 불편함도 모르는 듯했다.



    ‘십자군 전쟁’ 참회합니다

    한국인 900여명을 포함해 전 세계 젊은 가톨릭교도 100만여명이 참여해 축제를 즐겼다.

    서서히 고조되던 대회 분위기는 18일 교황 베네딕트 16세가 과거 순례자들의 전통을 따라 배를 타고 모습을 드러내면서 절정에 달했다. 배에는 각 대륙의 청년 대표들이 함께 탔고, 197개 참가국들의 깃발이 펄럭였다. 라인 강변에 쭉 늘어선 젊은이들은 열정적으로 환호했고, 교황은 배의 갑판 앞머리에 서서 팔을 벌려 젊은이들의 환호에 답례하고 이들을 축복했다. 이때 젊은이들이 외치던 ‘베~네딕트!’라는 함성은 우리에게 꽤나 친숙했다. 2002년 월드컵 때 우리가 그토록 목 놓아 외쳤던 ‘대~한민국!’ 함성과 리듬이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4월 바티칸 콘클라베에서 라칭어 추기경이 신임 교황으로 선출됐을 때 우려와 유감의 목소리도 많았다. 심지어 독일에서 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60% 이상이 그가 교황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편하게 대해줬던 전임 교황과는 달리, 그는 지나치게 엄격하고 보수적인 인물인지라 관용과 화해를 요구하는 시대정신에 걸맞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교황청의 신앙교리 부서를 담당하면서 매우 보수적인 해석을 내놓았고 종교 다원주의, 여성 사제 서품, 사제의 결혼, 개신교와의 합동 미사 등에 대해 일관되게 반대했다. 또 동성애와 이혼, 인간복제, 피임, 혼전 성관계 등을 강력하게 거부하고 비난하는 등 보수적인 시각을 견지해왔다. 현재 기독교가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이 바로 세속주의이고, 이럴 때일수록 바티칸이 시류에 영합하지 말고 정통 원리 원칙에 충실하게 따르면서 전 세계 신자들을 지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기본 원칙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라칭어 추기경은 항상 적이 많았다. 재미있는 것은 특히 조국인 독일 교계와 학계에서 그를 냉소하고 비판해왔다는 사실이다. 과거 극심한 신·구교 갈등을 겪었던 독일 가톨릭으로서는 개신교와의 화해 및 연합이 무엇보다 중요했는데, 지난해에 바티칸은 베를린의 한 사제가 개신교인에게 성체를 줬다는 이유로 그를 파면했다. 이 당혹스러운 결정의 배후에는 물론 라칭어 추기경이 있었다.

    교황 지도력 시험무대 합격점

    따라서 이번 세계 가톨릭 청년대회 참석은 신임 교황의 향후 지도력에 대한 중요한 시험무대였다. 천생 교수 타입인 베네딕트 16세는 전임 교황처럼 청년들과 함께 록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지는 못했어도, 기대 이상으로 젊은이들과 잘 어울렸고 많은 사랑과 환호를 받았다. 그는 “신앙이 없는 청년들도 이 자리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방문 이틀째인 19일에는 유대교 회당을 방문해 “과거 나치 정권 아래서 행해진 홀로코스트는 상상할 수도 없는 큰 범죄였다”고 고백하면서 “이런 광기의 인종차별 이데올로기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화해의 손길을 건네면서 그는 자신이 히틀러유겐트(나치스 독일의 청소년 조직) 출신이었다는 오점을 희석할 수 있었다. 교황의 유대교 회당 방문은 요한 바오로 2세가 1994년 로마에 있는 유대교 회당을 찾은 이후 처음이었다.

    20일에는 리드반 카키르 터키-이슬람협회 회장 등 이슬람 단체 지도자들과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두 종교 간에 피의 역사가 있었다. 종교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잔혹 행위가 부끄럽다”면서 과거 십자군 전쟁에 대한 사과의 뜻을 밝혔다. 그리고 현재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테러리즘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슬람 젊은이들의 사상을 이끄는 지도자들의 구실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세계 가톨릭 청년대회 기간 중 신임 교황 베네딕트 16세는 비록 요한 바오로 2세만큼 스타 기질을 가지지는 않았어도 젊은 세대 및 타 종교인들과도 잘 어울릴 수 있음을 입증해 보였다. 이는 종교를 중심으로 한 문명 간의 충돌 위협이 어느 때보다 높은 현 시점에서 참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뛰어난 학자이기도 한 베네딕트 16세는 항상 신앙생활의 아름다움과 현대 문명의 치료제로서의 종교의 구실을 강조해왔다.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교황의 관용과 화해의 제스처는 바로 그가 오랫동안 강조해왔던 바를 행동으로 나타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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