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2

2005.09.13

다 포기한 盧, 탈당 카드 뽑나

대연정 추동력 확보 거침없는 행보 … 당·정 일부 현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5-09-07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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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포기한 盧, 탈당 카드 뽑나

    노무현 대통령이 8월30일 저녁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청와대 영빈관으로 초청, 인사를 하고 있다.

    ‘2선 후퇴’ ‘임기단축’ 등 노무현 대통령의 행보가 거침이 없다. 처음 가는 연정의 길이지만 마치 수십년 걸어온 논둑길처럼 발걸음이 가볍다. 바둑으로 치면 예상 가능한 수순을 다 읽은 고수의 여유가 느껴진다. 남은 것은 상대의 반응과 국면에 따른 전술 구사라고나 할까. 과연 노 대통령의 다음 카드는 무엇일까.

    당장 눈에 띄는 것은 노 대통령의 당적 문제다.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성사를 위해 열린우리당(우리당)을 버릴 것인가 하는 문제다. 노 대통령 주변과 우리당 의원들은 점차 ‘가능성이 높다’는 흐름 쪽으로 기운다. 그 흐름은 노 대통령의 몇 가지 언행에서 기인한다. 8월30일 우리당 의원과의 만찬 간담회에서 노 대통령은 행간을 읽게 하는 언행을 드러냈다. 이날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제안으로 호남 민심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는데,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강한 답변을 했다.

    “만일 대연정 문제에 반감을 가진 의원이, 예를 들어 호남의 어떤 의원이 당을 떠나겠다고 하면 내가 먼저 떠나겠다.”

    “당 떠나겠다” 상상 초월한 답변

    이 발언은 연정 성사를 위해 호남 지역의 지지도, 우리당도 과감히 버릴 수 있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기에 충분하다. 당 의원들도 ‘연정론에 장애가 되면 뛰어넘겠다’는 취지로 이해했다. 정장선 의원(경기 평택)은 “탈당 배수진을 치고 호남에 ‘희생을 감수하고 내 뜻을 따르라’고 요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김우식 전 비서실장 거취와 관련해서도 숨은 배경을 일부 공개했다.

    “김 실장이 살아온 과정과 성품으로 봐서 연정을 수용하지 않을 것 같아 내보냈다.”

    당초 알려진 것과 달리 노 대통령과 김 전 실장이 연정을 놓고 심한 의견 대립을 했음을 시사한 것. 김 실장은 평소 “대통령이 그만두겠다는 건 말려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당과 청와대가 모두 나서 말려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노 대통령에게도 비슷한 톤으로 여러 차례 입장을 전달했지만 의견이 좁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그 갈등의 배경을 골프장에서 만난 한 중진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당 인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이 발언은 ‘연정’을 위해 ‘다 버릴 수 있다’는 강력한 의지로 다가온다. 이미 임기단축이나 2선 후퇴 등 극약 처방을 선보인 노 대통령의 승부수로 손색이 없다. 물론 청와대에선 대통령의 탈당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9월1일 “대통령은 탈당을 생각해본 일이 없다”고 밝혔다. 당에서도 부정적 견해가 나온다. 민병두 의원의 설명이다.

    “대통령의 탈당 여부는 대연정이 성사된 뒤에나 대통령이 탈당을 하든지 다른 정치적 액션을 취하든지 할 수 있지, 손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데 어떻게 탈당을 하느냐.”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이런 해명과 문제 제기에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오히려 탈당에 대한 청와대와 당의 태도는 점차 구체화되는 분위기다. 소속 의원들 사이에서도 이를 현실로 받아들이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민주당 이낙연 의원도 이에 가세했다. 그는 1일 불교방송에 출연해 “대통령이 연정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한번 실현해보고 싶다는 것이 진정한 의도라면 ‘탈당 후 거국내각 구성’도 나올 수 있는 방안”이라고 실제 탈당을 요구하기도 했다.

    개헌과 권력체제 변화가 목적지?

    청와대 측도 이런 흐름을 읽고 있는 눈치다.

    노 대통령의 측근으로 활동했던 우리당 한 의원도 “대통령의 연정 구상이 구체화하기까지는 수많은 고개를 넘어야 하지만 1차 분기점은 탈당 정국”이라고 전망했다. 또 다른 변곡점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의 회동이다. 박 대표는 연정에 반대한다. 노 대통령을 만나 “연정을 그만두라”고 요구할 태세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그를 대화의 장으로 끌어낸 것에 의미를 둔다.

    노 대통령의 연정 구상은 매우 정교하다. 이미 오래전부터 가다듬었다. 그런 징후는 곳곳에서 보인다. 청와대는 ‘대연정’ 구상을 추진하면서 ‘선(先)사회적 공론화, 후(後)정치권 협상’이라는 전략 전술을 구사했다. 노 대통령은 두 달 가까이 국민을 상대로 연정 제안의 취지와 배경에 대해 설명을 거듭했다. 언론과 야당의 매몰찬 힐난에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노 대통령의 대국민 설득 작업은 두 달이 흐르면서 어느 정도 사회적 공론 형성에 성공했다. 이런 흐름이 가닥이 잡히자 노 대통령은 8월30일 우리당 소속 전원을 청와대로 불러 정치권 설득에 들어갔던 것. 박 대표와의 회동은 예정된 수순이다.

    이런 노 대통령의 움직임을 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미묘하다. 노 대통령의 현란한 정치 플레이의 지향점을 정확히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통령 탈당-한나라당과의 대연정(거국중립내각 구성)-선거구제 개편-개헌-동시 선거 등의 수순이 우리당을 감싼 지는 이미 오래다. 청와대 기류도 비슷하다. 만일 대통령의 당적 이탈이 현실화할 경우 충격을 몰고 올 것임은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권은 앞으로 몇 차례 더 충격적 상황을 감수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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