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4

2005.07.19

‘실수 연발’ 선관위 왜 이러나

고액기부자 명단과 통장 사본 ‘엉터리’ … 의원 후원회 기부자 계좌 조사도 외면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5-07-14 15: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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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수 연발’ 선관위 왜 이러나

    각급 선관위의 실수로 곤경에 빠진 중앙선관위원회.

    2005년 3월22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역사상 처음으로 국회의원들의 정치후원금(2004년) 중 고액기부자 명단을 공개했다. 이는 지난해 개정된 정치자금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것으로, 여기에는 1년에 120만원 이상을 기부한 사람의 이름과 직업, 기부액 등이 적혀 있어 언론의 관심은 달아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한나라당 대표인 박근혜 의원의 고액기부자 명단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 일부 언론은 중앙선관위가 발표한 자료를 그대로 믿고 ‘박근혜 의원 고액기부자 한 사람도 없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금세 오보로 밝혀졌다. 각 지역 선관위가 중앙선관위에 고액기부자 명단을 보고하면서 각 의원들의 고액기부자 명단을 누락했기 때문. 박 대표의 경우는 아예 통째로 고액기부자 명단이 올라오지 않아 오보를 쓸 수밖에 없었다. 당시 중앙선관위는 법을 지킨다며 취재기자들에게 정보 공개 요청서를 쓰게 했지만 정작 자신들이 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셈이 되었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법은 각 지역 선관위에 정보 공개를 요청하도록되어 있지만 취재 편의를 도운다는 측면에서 모든 의원의 자료를 모으다 보니 이런 일이 발생했다”며 이해를 구했다.

    하지만 선관위의 이런 실수 때문에 피해를 본 것은 언론만이 아니었다. 개정 정치자금법과 관련해서 논문을 준비하던 김승민(35·다음카페 공익제보자 모임 운영자) 씨는 “각 지역 선관위에 고액기부자 명단과 정치자금 통장에 대한 정보 공개를 요구해 자료를 받았지만 누락된 것이 너무 많아 논문 작성을 포기했다”며 “인지대까지 받아 챙긴 선관위가 법에 정해진 공개대상 서류를 이렇게 엉터리로 작성해도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씨는 이에 각 지역 선관위를 상대로 조만간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할 예정이다.

    선관위 “법 개정 후 행정사무 미비”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의 지역구인 부산 북구선관위의 경우, 1년에 120만원 이상 기부하는 자가 고액기부자의 정의임에도 지난해 ‘하반기’ 고액기부자 명단만을 내보내는 실수를 범했다. 때문에 상반기에 낸 기부금은 고액기부자 명단에서 빠져 유모 씨의 경우 지난 한 해 250만원을 기부했음에도 150만원만 한 것으로 처리됐다. 북구선관위 관계자는 “정형근 의원 후원회 측이 지난해 총선을 마치고 6월에 보고한 다음, 기부자의 기부금액을 계속 합산해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다시 카운팅을 시작하면서 이런 실수를 저질렀다”며 “모든 수입·지출 서류는 제대로 들어왔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주간동아가 20여명의 여야 중진들의 고액기부자 명단과 통장 사본을 받아 본 결과, 제대로 정보 공개가 된 경우는 없었다.

    특히 각급 선관위는 선거법 개정으로 얻어낸 국회의원 후원회 계좌와 기부자 계좌 조사권을 제대로 사용도 해보지 못한 채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다. 정치자금 통장에 법인 명의로 돈이 입금됐음에도 대부분의 선관위가 조사권을 발동하는 대신, 각 의원 후원회 쪽 말만 그대로 믿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게 현실이다.

    중앙선관위 측은 “법 개정 이후 행정사무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면이 있다”며 양해를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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