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4

2005.07.19

올 초에 저질렀다면… 그놈의 40평대 속 뒤집네

40대 주부 ‘금싸라기’ 지역서 아파트 구하기 천정부지 호가 상대적 박탈감 심화

  • 장옥경 자유기고가

    입력2005-07-14 15: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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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부동산 가격. 정부의 강력한 투기억제책에도 서울 강남을 비롯한 ‘금싸라기’ 지역 아파트 값은 여전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있다. 마침 새 집을 구할 참이던 40대 주부 장옥경 씨가 “나도 한번 해보마” 호기롭게 길을 나섰다. 동병상련이 따로 없는 그의 속앓이 사연, 직접 돌아본 서울 강남과 목동, 강동구 명일동 일대, 경기도 분당의 요즘 시세 이야기.
    올 초에 저질렀다면… 그놈의 40평대 속 뒤집네
    요즘 나는 주말을 집 보러 다니기로 시작해 그 일로 끝낸다. 저녁이면 종아리부터 발목, 발바닥까지가 다 얼얼하다. 모두 그놈의 40평대 아파트 때문이다.

    ‘가슴을 치고 후회한다’는 말이 무엇인지를 예전엔 미처 몰랐다. 그런데 집을 보러 다니다 보니 그 말이 그렇게 실감날 수가 없다. ‘올 초에만 움직였어도’ ‘그때 그 친구 말만 귀담아들었어도’ 하는 식의 아쉬움이 끝도 없이 밀려온다.

    “얘, 소리 없이 강한 차라는 말이 있지. 강남이 하도 떠들썩해서 이쪽은 잘 알려져 있지 않나본데, 우리 아파트도 소리 소문 없이 많이 올랐어.”

    올 초 오랜만에 만난 목동 친구가 기쁨을 억누르며 넌지시 말을 건넬 때만 해도, 서울 강동구 한 귀퉁이에 사는 난 “그래?” 하며 심상하게 대꾸했다.

    “판교발 영향이라나 뭐라나, 어제 반상회 갔는데 한 달 사이에 4000만원이 뛰었대.”



    그로부터 한 달 후,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분당 사는 또 다른 친구의 들뜬 목소리를 들었을 때도 기분은 좀 상했지만 “그렇구나”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 두 친구가 그로부터 일주일이 멀다 하고 번갈아 전화를 해 “또야 또. 자고 나면 하루가 달라” “이렇게 올라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일주일 사이에 8000이야” “이건 내가 생각해도 엄청나다”, 이렇게 주가 동향 보고하듯 아파트 시세를 생중계하니 점점 심사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이 호들갑을 떤 지 다시 한 달쯤 지나서야 ‘강남·분당 대형 평형 일주일 새 1~2억 폭등… 안양 평촌까지 확대’라는 제목의 기사들이 신문지면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내 마음도 덩달아 급해졌다. 열 살 난 딸과 아홉 살배기 아들의 방을 갈라주기 위해서라도 ‘40평대 아파트 장만’은 우리 가족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 친구들은 “대형 평형은 값이 워낙 팍팍 올라 빨리 장만하는 게 최선”이라는 조언을 쏟아놓았다. 결국 나는 3주일 전부터 본격적으로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올 초에 저질렀다면… 그놈의 40평대 속 뒤집네

    경기도 분당의 서현중고등학교.

    [분당] 씨 마른 매물··· 입 아프고 헛걸음

    “11월 분양하는 판교 호재도 있고, 현 정부가 남진(南進) 정책을 계속하는 한 분당 메리트가 크다”는 친구 말을 믿고 첫주에는 그곳부터 돌아보았다. 우선 인터넷 부동산 사이트부터 뒤져봤다. 서현역 주변 시범단지 아파트가 한눈에 쏙 들어왔다. 지하철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이면서 삼성 플라자에 중앙공원까지 있어 주거환경이 좋았다. 게다가 평준화되기 전 명문으로 꼽히던 서현중고가 인접해 있고 강남 대치동처럼 학원가도 밀집해 있어 교육 환경도 썩 괜찮았다.

    분당으로 달려가 상가 1층에 늘어선 부동산중개소 중 규모가 가장 큰 집으로 들어갔다.

    “40평대 아파트를 보러 왔다”고 하자 “30평대는 한두 개 나와 있는데 40평대는 매물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번 장만하면 10년 이상 살아야 할 집이니 평면도, 내장재, 방의 배치 등을 꼼꼼히 비교해보고 고르려 한 내 의도는 애초에 깨지고 말았다. “아파트 값이 계속 올라 주인들이 매물을 내놨다가도 곧 회수해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판교 분양가가 높게 책정되면서 이곳 값도 덩달아 뛰기 시작했어요. 그 와중에 정부 정책이 공급 확대보다는 세금 쪽에 맞춰지면서 당분간 중대형 공급이 없어질 것 같으니까, 사려는 사람은 많은데 매물이 없어 호가만 계속 오르는 중입니다.” 중개업자의 말이었다.

    매물이 없다니 돌아볼 아파트도 없었다. 다른 중개업소를 찾았지만 상황은 같았다. 모두들 “매물이 나오는 대로 전화 줄 테니 연락처를 적어놓고 가라”고 했다. 그래도 시세나 알고 가자 싶어 가격을 물었다. 시범단지는 7700여 가구에 삼성·한신·한양·현대·우성 아파트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각각이 2000~2500가구에 이를 만큼 대단지라고 했다. 그런 데다 다양한 평형이 고루 분포돼 있어 소형이라도 다른 곳의 같은 평수보다 값이 더 나갔다. 삼성·한신 49평이 10억원 선, 우성 47평이 9억원 선, 한양 47평이 8억5000만원 선, 현대 47평이 10억원 선이라고 했다. 모두 인터넷 시세보다 2000~3000만원씩이 더 비쌌다. 중개업자들은 “하루가 다르게 호가가 뛰어 인터넷 시세가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래서야 지금 사는 집을 팔고도 배 이상을 보태야 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중개업소에 내 연락처를 적어놓기가 겁이 났다. 머뭇거리자 중개업자는 “아파트는 위치다. 여기는 수요가 안정적이어서 값이 빠져도 내림 폭이 크지 않고 오를 때는 서너 배씩 뛴다”고 충고했다. 그래도 엄두가 나지 않아 연락처는 적지 않은 채 “다음에 들를 게요” 하고 문을 나섰다.

    발길을 돌려 인근 효자촌으로 가봤다. 서현역에서 도보로 15~20분 거리에 있어 시범단지보다 값이 싸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그곳도 46평 동아아파트가 8억8000만원, 47평 삼환아파트가 9억원 선, 47평 현대아파트가 9억2000만원 수준이었다. 40평 임광아파트가 상대적으로 싼 7억7000만원이라고 해 집을 보러 가기로 했다. 그런데 중개업자가 주인에게 전화를 걸자 “팔 수 없게 됐다”는 답이 돌아왔다. “40평이 좁아 50평형대로 가려 했는데 부담이 너무 커 그냥 눌러 살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그 주에 한 집도 구경조차 하지 못했다.

    [목동] 지않아 잠실 수준? 또 다른 좌절

    순례 둘째 주. 목동을 찾았다. 재건축을 논할 시점은 아니지만 80년대 중반 지어진 데다 이만한 규모를 가진 단지도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또 교육 하면 목동 아닌가. 중학교는 어디든 다 좋은데 고등학교는 좀 차이가 난다던 목동 친구의 말을 떠올리며 지하철 오목교역과 도서관이 가까운 신시가지 3·4단지로 향했다.

    올 초에 저질렀다면… 그놈의 40평대 속 뒤집네

    서울 목동 3·4단지 전경.

    3단지는 27평부터 55평까지 있는데 내가 필요로 하는 방 4개짜리 45평은 10억~11억원이나 했다. 분당보다 더 비싼 수준이었다. 그나마도 품귀 상태여서 매물이 없다고 했다. 기대치를 낮춰서 방 3개인 35평대를 알아보니 그 역시 8억원에서 9억원 선이었다. 매물도 단 한 집뿐이었다. 4단지는 3단지보다 2000~3000만원 정도가 빠졌지만 비싼 것은 매한가지였다.

    “얼마 전에 할머니 한 분이 며느리를 데리고 집을 보러 오셨어요. 80년대에 헐값을 주고 잠실 2단지 소형 아파트를 한 채 샀는데 그게 지금은 10억원이 넘는 물건이 됐다며 목동도 머지않아 그렇게 될 테니 여길 보라고 며느리에게 권한 거죠.”

    중개업자는 이렇게 말하며 “낡은 아파트가 왜 이렇게 비싸냐고 묻지 말고, 금싸라기 같은 목동 땅에 이만한 아파트를 가지고 있다는 개념으로 봐야 한다”고도 했다. 동 간 간격이 넓고 곳곳에 공원과 놀이터가 있으며 대지 지분이 많아, 머지않아 잠실 같은 상황이 올 것이라는 게 목동 주민이나 이곳에 들어와 살려는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인 듯했다. 지금이야 규제 때문에 일시적으로 거래가 주춤하지만 오를 것이 뻔한데 누가 팔겠냐는 것이었다.

    분당에서 집 한 채 구경 못했던 일이 생각나 “35평이라도 보여달라”고 했다.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학생이 문을 열어주었다. 수리를 했다는데도 요즘 짓는 35평 아파트에 비하면 구조며 상태가 형편없었다. 베란다도 작고 수납공간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목동에서는 그런 것을 탓할 상황이 아니라고 했다. 여기서도 결국 ‘간’이 작아 대기자 명단에 이름조차 적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명일] 사는 집 팔고 와라 … 머리가 ‘띵’

    올 초에 저질렀다면… 그놈의 40평대 속 뒤집네

    ‘강동의 8학군’으로 불리는 서울 명일동 일대 아파트촌.

    목동에서 돌아오는 길에, 내가 사는 강동구이긴 하지만 배재중고, 한영외고와 한영고, 명일여고 등이 있어 ‘강동의 8학군’으로 불리는 명일동 지역을 둘러보기로 했다. 지하철 5호선 명일역에서 내려 삼익그린 2차 아파트 앞 상가 쪽으로 가니 1층에 중개업소들이 밀집해 있었다.

    한 중개업소를 찾아가 30평대와 40평대 매물 여부와 가격을 물어보았다. “삼익그린 1차는 18평에서 32평까지 있는데 32평은 매물이 하나도 없고, 삼익그린 2차도 30평대 이상은 45평 한 채만 나와 있다”고 했다. 가격은 최근 1억 이상이 올라 7억5000만원. 그나마 목동의 35평대 가격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집을 보자고 하니 “확실히 살 거면 사는 집부터 판 뒤 와서 보라”는 말이 돌아왔다.

    중개업자의 설명인즉 이랬다.

    “매물이라고 달랑 하나 나와 있는데 집 보러 가는 사람이 늘면 호가가 올라 가격이 더 뛰어버려요. 여러 부동산에 가서 자꾸 물어보는 것도 안 좋아요. 진짜 살 생각이 있으면 (돈 마련할) 대책부터 마련한 뒤 뛰어드세요.”

    머리가 ‘띵’해지는 느낌이었다. 허탈감만 잔뜩 안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올 초에 저질렀다면… 그놈의 40평대 속 뒤집네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주변 공인중개소 밀집가.

    지난주에는 집을 보러 다닐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 이왕 순례에 나선 김에 그 유명하다는 대치동 은마 아파트 쪽도 한번 돌아보기로 했다. 31, 34평으로 구성된 은마아파트는 31평이 8억3000만~8억7000만원 선, 34평이 9억4000만~9억8000만원 선이었다. 그나마 정부에서 8월경 새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다는 말에 주춤한 상태라는 설명이 돌아왔다. 이곳도 매물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70%가 외지인인 전세 매물만 서너 개 나와 있는 상태였다.

    “지금은 그래도 괜찮죠. 얼마 전까지만도 하루가 다르게 값이 치솟으면서 6월 초쯤에는 아예 계약금 1억원을 들고 중개업소로 출퇴근하며 매물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부동산업자의 말에 “매물이 없으면 전세라도 고려해보겠다”며 방이 4개라는 34평 아파트를 보여달라고 했다. 부동산업자는 반색을 하며 “작년 여름만 해도 전세가가 2억4000만원씩 했는데 내신 비중이 높아지니 ‘대전(교육 때문에 대치동에서 전세살이를 하는 것)’ 수요가 줄어 올해는 2억원 정도에서 전세가가 형성돼 있다”고 했다.

    복도식으로 된 34평 아파트 내부에 들어가 보니 수리를 했다는데도 화장실이 너무 좁아 세탁기 하나만으로도 꽉 찰 지경이었다. 방이 4개라지만 하나는 너무 좁아 쓸모가 없었다. 다른 방들도 좁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런 곳으로 이사를 온다는 생각만 해도 숨이 막혔다. 집을 보여준 여자에게 “왜 이사를 가려느냐”고 묻자 “세입자인데 막내가 올해 대학에 합격해 더 이상 불편을 감수하면서 살 이유가 없어졌다”고 했다.

    이렇게 3주간의 부동산 순례는 끝이 났다. 나는 일찍 온 더위에 완전히 나가떨어진 상태다. ‘부동산은 타이밍’이라는 말이 그렇게 실감날 수가 없다.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지금 가격에서 1억5000만원이나 2억원 정도는 더 쌌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 밤에 잠이 안 온다. 그 돈이면 우리 가족이 5, 6년은 놀고먹어도 되는 액수다. 부동산 값 꽉 잡았다는, 그리고 잡을 수 있다는 정부의 말은 분명 거짓말이다. 2005년 7월, 나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내내 속이 편치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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