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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식 기술로 지폐 위조 막겠다고?

국내외 전문가들 “한국은행 발표한 홀로그램·요판잠상 등 시대에 뒤떨어져”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구식 기술로 지폐 위조 막겠다고?

4월18일 서울 남대문로 한국은행(이하 한은) 본점. 박승 한은 총재는 기자들에게 새 지폐 도입의 당위성을 소리 높여 설명했다. 박 총재는 유로화에 도입된 위조 방지 장치를 예로 들면서 50유로 지폐를 흔들어 보이기도 했다.

“현 은행권은 규격이 너무 커서 선진국의 지갑에는 안 들어갑니다. 종이 질과 세련미도 떨어지고요. 위조지폐 방지가 시급해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인물 도안은 현행을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한은이 재정경제부와의 협의를 거쳐 새 지폐를 발행하기로 한 것은 박 총재의 설명대로 첨단 기술을 이용해 지폐의 위조를 막고, 세련된 도안과 재질로 사용의 편리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한국 지폐는 기본 골격이 1983년 이후 바뀌지 않아 탄자니아, 에티오피아 등의 후진국보다도 뒤떨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외국에서는 위조지폐 방지를 위해 6∼7년마다 도안을 변경한다”는 박 총재의 설명처럼, 위조지폐 유통에 취약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델로 삼은 유로화 … 위폐 방지엔 실패



새 지폐는 크기가 줄어들고 색상이 화려해질 전망이다. 1만원권 지폐는 148×69mm로 줄어들어 크기가 미국 달러화(155.9×66.3mm)와 비슷해진다. 1만원권은 기존의 녹색이 유지되지만, 5000원권은 황갈색에서 적황색으로, 1000원권은 연보라색에서 청색 계열로 바뀌게 된다. 새 화폐안 발표 후 인물 도안까지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어쨌거나 5000원권을 시작으로 새로 만들어지는 지폐는 현재보다 고급스럽고 화려한 모습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새 지폐를 만드는 두 가지 목적(위조지폐 방지와 편리성 확보) 중 하나는 충족시키는 셈이다. 문제는 “새 지폐가 위조지폐 제조를 막을 수 있느냐”에 있다.

컴퓨터 및 인쇄 기술의 발달로 종이 지폐를 사용하는 국가는 위조지폐의 유통이 늘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국도 물론 예외가 아니다. 올 1분기 중 발견된 위조지폐는 총 3153장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744장에 비해 4배가량 늘어났다. 특히 5000원권은 1691.4%나 늘어난 2508장이 위조됐다.

그렇다면 새 지폐는 위조지폐 문제를 크게 줄일 수 있을까. 국내외 전문가들에 따르면, 유로화를 주 표본으로 삼은 새 지폐의 위조지폐 방지 효과는 “아니올시다”다.

구식 기술로 지폐 위조 막겠다고?


익명을 요구한 시중은행의 한 위조지폐 전문가는 “한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은행권 전문가들이 쉬쉬하고 있을 뿐, 유로화를 주로 모방한 새 지폐로 위조지폐를 막는다는 건 터무니없는 소리다. 왜 유로화를 흔들었는지 모르겠다. 유로화는 위조지폐 문제에서만큼은 벌써부터 실패한 화폐”라고 일축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위조지폐를 막으려면 종이 재질 대신 호주 등에서 도입한 폴리머(플라스틱) 소재를 과감하게 선택하는 등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새 지폐와 ATM 기기 등을 들여놓고 위조 문제가 불거지면 그때 가서 또 바꿀 것이냐”고 꼬집었다.

한국 화폐 위조는 아직 조악한 수준

한은이 뽐낸 새 지폐의 위조지폐 방지 장치는 크게 7가지다. 한은은 그중에서 특히 홀로그램, 광가변잉크, 요판잠상의 위조지폐 방지 효과를 강조했다. 홀로그램은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과 색상이 변하는 홀로그램을 지폐에 붙인 것을 말한다. 광가변잉크는 빛의 반사가 서로 다른 물질로 구성돼 보는 방향에 따라 색상이 다르게 보이게 만든다. 요판잠상은 지폐를 비스듬히 놓으면 숨겨진 문자나 문양이 나타나게 되는 기술로 복사기 스캐너 등으로는 재현할 수 없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그러나 국내외 전문가들은 “홀로그램, 광가변잉크, 요판잠상은 모두 시대에 뒤떨어진 기술로 위조가 가능하다”면서 “새로울 게 없다”고 깎아내렸다. 광가변잉크는 보조적인 수단에 불과하고, 요판잠상은 현재 지폐에서도 사용된 방법으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홀로그램은 한국에 새로 도입되는 위조지폐 방지 방법이기는 하다. 그러나 내구성이 약해 지폐를 오래 사용하면 은박으로 위조한 것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허점이 있다. 홀로그램을 도입했음에도 3년 만에 위조가 위험 수위에 달한 유로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유로화는 2007년께 위조 방지 기능이 추가로 강화된 새로운 지폐를 발행할 계획을 세워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한은 관계자는 “새 지폐에 도입되는 첨단 위조 방지 장치는 적어도 5~7년 동안은 지폐 위조 방지에 탁월한 효과를 거둘 것”이라며 홀로그램, 요판잠상 등에 대한 외국 전문가들의 부정적인 견해는 화폐기술 수출 등 해당 국가의 사정에 따라 왜곡돼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구식 기술로 지폐 위조 막겠다고?


“미봉책에 그치면 향후 이중삼중 부담”

아직까지 한국 화폐의 위조는 대부분 컬러복사기나 스캐너를 이용한 조악한 수준이다. 지금도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누구나 진위 여부를 쉽게 식별할 수 있다. 조악한 수준의 위조에 대한 대책은 현재도 충분하다고 한다. 문제는 앞으로다. 세계적으로 유통되는 슈퍼노트(정교하게 위조된 100달러 화폐)나 위조 유로처럼 정교하게 위조된 한국 지폐가 유통되면 국가적 혼란은 불가피하다. 새 화폐에 도입되는 위조 방지 기능이 적어도 10년 이상을 내다봐야 하는 이유다.

4700억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번 처방이 미봉책에 그치면 향후 이중삼중의 부담을 가져올 수 있다. 아직은 국제 조직이 한국 지폐 위조에 매력을 느끼지 않고 있지만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새 지폐에 도입된 시스템을 뚫을 수 있다는 게 국내외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선진국에서 이미 적용했다가 실패한 방법을 들여오는 수준이 아니라, 비용이 조금 더 들더라도 한 단계 발전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지폐를 바꿔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뤄진 탓에 새 지폐 논의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의원들은 하나같이 새 지폐 도안에 어떤 인물을 넣어야 한다는 등 정치적인 관점에서 접근한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위조를 어떻게 막느냐다. 위조지폐를 막기 위해 새 지폐를 발행한다면서 사후약방문식으로 선진국에서 이미 실패한 시스템을 들여왔는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더 늦기 전에 위조지폐 방지 방법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식 기술로 지폐 위조 막겠다고?






주간동아 2005.05.03 483호 (p42~44)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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