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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고려대 100년 세계로 미래로

막걸리 안 마셔도 野性 살아 있다

끈끈한 응집력과 실천력, 고려대 ‘DNA’… 민족 이름 아래 키운 ‘虎然之氣’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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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끈하기로 소문난 고려대 교우회원들의 모교 방문 행사.

매주 월요일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신사들이 서울 종로1가 한일관으로 하나둘씩 모여든다. 1943년 보성전문학교에 들어와 광복 이후 고려대를 1회로 졸업한 교우들의 모임인 고일회(高一會) 회원들이다.

서태원 전 의원이 회장을 맡고 있는데, 김진웅 전 고려대 총장서리, 조동표 전 기자 등 회원들의 면면이 한 시대를 호령했음직하게 화려하다. 20년간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매주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고일회 회원들은 ‘고려대의 힘’은 끈끈함, 즉 일심동체(一心同體)에서 나온다고 입을 모은다. 여기에 ‘야성’(野性)이 덧붙는다. 1950년대에 고려대를 다닌 김창호(74) 씨는 당시 학교에 붙어 있던 현수막을 기억한다.

‘행동하는 고려대에서 사색하는 고려대로’.

야성은 밟히면 밟힐수록 더 포효하는 법. 그는 “야성을 조금 죽이자고 50년 동안 떠들었지만, 후배들을 보면 변한 게 없다”며 “야성은 고려대의 DNA”라고 말한다. 70년대 김상협 총장이 ‘지성과 야성’이라는 모토를 내건 것도 넘치는 야성을 조금 줄여보자는 뜻이었다고 한다.



타 대학 출신 교수들 고려대 오면 ‘우리가 남이가’

고려대의 상징 색(色)은 ‘크림슨’이다. 호랑이 피의 터질 듯한 그 붉음이다. 크림슨은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을 품고 있다. 고려대 출신 한 의원은 “고려대는 ‘민족’이라는 이름 아래 학생들을 종으로 횡으로 녹여내는 붉은 용광로다. 서울대 출신 교수들도 고려대에 들어오면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는 고대인(高大人)이 된다. 이런 학풍 탓에 주목받는 정치인이 연세대보다 훨씬 많은 것 같다”며 웃었다.

삼성전자 구주전략본부 양해경(57) 사장은 고교 시절까지 내성적이고 소심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고려대를 다니면서 호연지기(虎然之氣)-그는 넓을 호(浩)가 아니라 호랑이 호(虎)라고 했다-를 길렀다고 한다. 고려대의 독특한 기질은 4년 동안의 학교 생활을 통해 부지불식간에 전이된다는 것이다. 후배들이 고대의 호연지기를 살려 세계의 주역 노릇을 해주었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고려대가 각종 대학 평가에서 단골로 1위를 차지하는 분야가 있다. ‘평판도’와 ‘졸업생 직무 수행 능력’이 그것이다. 고려대는 지난해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평판도와 관련한 11개 설문 중 7개 항목에서 수위를 기록했고, 업종별·기관별로 나눠본 순위에서도 1위를 석권했다. 특히 조직 융화력과 충성도에서는 단연 1위다. 이러한 평가가 고려대 특유의 끈끈함과 야성에서 나왔다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L그룹 인사 담당자는 “평판도에서 고려대 졸업생들이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은 과거에 농촌 출신이 많았고, 서울대보다 떨어진다는 자격지심이 어우러져 ‘우리는 뭉쳐야 한다’는 집단의식을 갖게 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면서 “술집에서 생면부지의 새까만 후배를 만났다고 술값을 대신 내주는 선배를 가진 학교는 고려대 외엔 없다. 후배들이 술 깰 때까지 주정을 받아주는 선배도 고려대 출신을 빼곤 없다. 그게 고려대의 융화력이다”라고 평했다.

“한 학교를 다닌 우리는 모두 친구” 그래서 ‘교우회’

고려대 출신인 국가정보원 중견 간부도 “몇몇 국가기관이나 기업에선 ‘고려대 마피아를 조심하라’는 말이 공공연히 회자되곤 했다. 고려대 졸업생들은 남들 보기에 얄미울 정도로 뭉친다. 고려대 출신이 두각을 나타내는 곳은 대부분 집단성, 협동성, 로열티 같은 게 중요시되는 곳 아닌가. 고려대 졸업생들이 직무 수행 능력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학교 때 길러진 끈끈한 조직 의식 때문일 것이다”고 풀이했다.

고려대 교우회는 해병전우회, 호남향우회와 함께 한국 사회의 ‘3대 찰떡 집단’으로 불린다. 찰떡처럼 잘 뭉친다는 얘기다. 물론 비아냥거림이 섞인 표현이다. ‘교우회(校友會)’라는 이름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서울대는 동창회라는 표현을 쓰고 연세대는 동문회라고 부른다. ‘교우’라는 말은 ‘한 학교를 다닌 우리는 모두 친구’라는 뜻이다. 이러한 학풍과 성향은 흔히 동문들끼리 ‘밀어주고 끌어주는’ 집단이기주의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다른 학교 출신들의 비판을 받기도 한다.

얼마 전 고려대를 졸업한 A 의원이 가까운 고려대 출신 기자들과 모임을 했을 때의 일이다. 정치 얘기는 자연스레 모교 얘기로 이어졌고, 모임이 끝날 때쯤 A 의원은 “이명박 시장이 고려대 졸업생 중 대권에 가장 근접한 사람 아니냐. 우리 ‘고대 사람’들이 도와줘야지 누가 도와주겠느냐”고 차기 대선에서의 호불호(好不好)를 드러냈다. 학교 후배들 앞이라 편하게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동석한 기자들은 ‘이건 아닌데’ 싶었으나, 대선배의 ‘모교 사랑’엔 감히 토를 달 수 없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 시절 지지율이 낮아 고전할 때 다른 대학 출신들은 하나 둘씩 보따리를 쌌지만, 고려대 출신 참모들은 끝까지 한길을 걸었다는 일화도 정치권에서 고려대 출신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김대중 정부 시절 고려대 출신의 김중권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집권당 대표에 올라 고대 출신 인사들을 챙기자 연세대 출신들 또한 “우리도 한번 고려대처럼…” 하는 식의 ‘기류’를 보인 일이 있었는데, 당시 고려대 출신 인사들은 “모이는 척해도 ‘거품’”이라고 일축했다고 한다.

‘지성과 야성의 조화’ 글로벌 시대 어디 가든 통용

어쨌거나 고려대가 ‘행동하는 지성’ ‘지성과 야성의 조화’ ‘자유·정의·진리’ 같은 교육이념을 내세우며 교풍(校風)이 부재한 한국 대학의 현실에서 독자적인 학풍을 형성해온 것은 의미가 매우 크다. 머리엔 날카로운 지성을, 가슴에는 힘찬 야성을, 손과 발에는 뜨거운 열정을 담은 교풍이 만들어낸 고대인의 응집력, 실천력은 한국 현대사의 주요 장면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고려대는 ‘민족고대’라는 100년의 모토를 버리고 ‘세계고대’로의 도약을 선언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소극적인 의미의 민족을 버리고 적극적인 의미의 민족을 지향하겠다는 뜻이다. 고려대는 지금 ‘기득권’을 버리고 혁명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막걸리를 버리고 와인을 선택했다고 해서 100년을 이어온 ‘민족사학’의 학풍이 변하는 건 아닌 듯싶다. 밟히면 밟힐수록 더 포효하는 야성처럼….

고려대 중앙광장에서 만난, 모델처럼 멋지게 명품 선글라스와 캐주얼을 차려입은 고려대 새내기 박현진(경영·05학번) 양은 벌써부터 고려대의 독특한 기질이 전이돼 있었다. 그는 “끈끈함과 응집력이 좋아 고려대를 선택했고, 그런 고려대를 사랑한다”면서 “올가을 열리는 첫 고연전이 너무나도 기다려진다”고 했다. 연극배우 장두이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고대인에게는 고대인만이 가지고 있는 뚜렷한 색깔이 있습니다. 지성과 야성, 우직함과 성실함은 고대인이 가진 가장 큰 힘입니다. 이런 힘이 있다면 글로벌 시대 어디에서든 자신의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선배들에게서 내려온 이 색깔이 후배들로 인해 더욱 짙어지고 빛나길 소망합니다”.

● 高麗大&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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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전도사’

오영교 행정자치부 장관 (경영 67학번)


“변화를 두려워하면 1등은 없다.” 정부 부처가 혁신 바람으로 소란스럽다. 그 진원지는 행정자치부. 오영교 장관이 올 초 취임하면서 행정자치부는 ‘정부혁신 전략본부’로 거듭났다. 오 장관은 직급제를 허물고 능률 중심의‘팀제’를 본격 도입해 공직사회를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그는 고려대 응원가에 나오는 ‘맹호는 굶주려도 풀을 먹지 않는다’는 대목이 대학 졸업 후 사고와 신념의 토대가 됐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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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신춘문예 3관왕

강유정 (국어교육 94학번)


3개 일간지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쾌거는 1961년 이근배 전 한국시인협회장 이후 처음이란다. 강유정 씨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영화평론 ‘현실을 주관하는 두 개의 원리, 경계선의 미학-박찬욱과 김기덕 영화의 원리와 지평’이 뽑혔고, 경향신문에서 천운영 소설을 다룬 문학평론 ‘소멸을 창조하는 역설적 사제의 글쓰기’로, 조선일보에서 성석제 소설을 분석한 문학평론 ‘지독한 방법-중독의 미학’으로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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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스트라이커

박주영 (체육교육 04학번)


지난해 박주영은 고연전에 참가하기 위해 아시아 청소년 축구 예선전에 불참했다. 비판의 눈초리가 사나웠으나, 그는 모교를 선택했다. 승부에 쐐기를 박는 골을 터뜨린 박주영은 어느새 당대 최고의 스포츠 스타로 발돋움했다. FIFA가 ‘가장 주목할 선수’로 뽑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언론을 통해 속속 전해진다. 축구에 대한 열정과 타고난 성실함이 트레이드마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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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가 희망이다

컴투스 박지영 대표 (컴퓨터 93학번)


박지영 대표는 세계시장에서 승승장구하는 모바일 업계의 가장 주목받는 여성 CEO다. 2003년 8월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를 ‘14명의 기술 대가’ 중 한 명으로 뽑았다. 컴투스는 중국, 일본 등 아시아권은 물론이고 유럽과 미국 등 40여개 나라에서 모바일 게임을 서비스하고 있다. 그는 컴투스가 국내 선두 기업을 넘어 글로벌 선두가 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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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 do! 리더십

이명박 서울시장 (경영 61학번)

이명박 시장은 고려대 출신 중 가장 대권에 접근한 인사다. 그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엇갈린다. 청계천 복원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으며 버스노선체계 개편과 뉴타운 사업, 서울광장 건설 등 내놓는 사업마다 두드러진 성과를 거뒀다. 일하는 시장의 전형을 보여준 셈. 측근들은 이 시장이 오랜 고민을 거쳐 일단 결론이 내려지면 강하게 추진하는 CEO형 리더십을 갖고 있다고 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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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드의 황태자

성시경 (사회 00학번)


성시경은 우직하고 소탈한 학풍이 좋아 고려대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는 최근 네 번째 정규 앨범을 내놓았다. 직접 곡을 쓰기도 했고 작은 악기소리 하나까지도 세세히 신경을 썼단다. ‘다시 꿈꾸고 싶다’는 앨범 제목처럼, 그는 새롭게 노래하고 사랑하고 싶다는 의지를 담았다. 한국 최고의 프로듀서인 김형석이 프로듀싱을 했고, 김진표가 랩 퓨처링을 맡아 앨범의 완성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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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들여다보는

시적 언어, 김훈(정치외교 66학번)


혹자는 김훈의 언어를 ‘한국문학에 내려진 벼락같은 축복’이라고 평한다. 오랫동안 기자로 일한 그는 첫 장편 ‘칼의 노래’로 동인문학상을, 첫 단편 ‘화장’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고려대 김인환 교수(국문학)는 “당대의 권위 있는 문학상 두 개를 석권한 최초의 작가며, 어쩌면 유례를 찾기 힘든 이 기록을 오래 보유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밝힌다. 칼의 노래의 실마리는 대학 2학년 때 도서관에서 꺼내든 ‘난중일기’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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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合理)’의 리더십

SK 최태원 회장 (물리 79학번)


최태원 회장은 학부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부친 고 최종현 회장의 뜻이었다고 한다. “경제의 기본원칙은 ‘합리(合理)’다. 따라서 최고경영자가 되려면 ‘이(理)’, 즉 물리나 화학·생물 가운데 한 가지는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재벌의 지배구조를 합리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기업문화와 브랜드를 중심으로 연결된 ‘브랜드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재벌 모델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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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의 여성 파워

LG CNS 임수경 상무 (산업공학 81학번)

임수경 상무가 공대에 입학했을 때 공대 전체에서 여학생은 그를 포함해 4명뿐이었다. 산업공학과에선 5년 만에 처음으로 입학한 유일한 여학생이었다고. 그런 그가 올 초 남성들의 분야로 알려진 IT(정보기술) 업계에서 임원으로 승진했다. 입사 5년 만에 상무로 승진해 주변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고 있다. 임 상무는 대학 때 ‘시스템적’으로 일하는 방법을 배운 게 사회생활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05.05.03 483호 (p28~30)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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