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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아버지의 바이올린’

베트남 민초 11인의 삶

  • 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베트남 민초 11인의 삶

베트남 민초 11인의 삶

정나원 지음/ 새물결출판사 펴냄/ 304쪽/ 1만2000원

인도차이나반도 동부에 위치하고 면적 32만9560km2, 인구 8109만명(2002년), 종교는 불교와 가톨릭, 국내총생산 1681억 달러(2000년)인 나라. 그리고 강대국 미국을 물리친 나라. 바로 베트남이다. 정식 명칭은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 한자 명칭은 월남(越南).

베트남과 우리나라의 관계는 미묘하다. 식민 지배와 민족 분단, 전쟁을 겪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베트남전쟁 참전으로 총부리를 겨누기도 했다. 그러나 베트남이 개혁개방 정책을 통해 자본주의 시장원리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지금은 경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다른 나라 못지 않게 한류 열풍도 거세다고 한다.

지금의 베트남을 보면 전쟁 상흔은 벌써 치유하고 경제 부흥을 위해 애쓰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베트남 사람들이 과거의 기억을 모두 지워버렸을까? 그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처럼 친일 과거사 청산 등의 숙명적 과제는 없을지라도 그들에게도 씻어낼 수 없는 아픈 역사가 존재한다. 6·25전쟁을 겪은 우리 어른들이 그러하듯 전쟁의 참화에 가슴 아파하고, 가난의 기억에 몸서리칠 것이 분명하다.

번역가이자 논픽션 작가인 정나원씨가 쓴 ‘아버지의 바이올린’은 베트남 사람들의 속내를 기록한 책이다. 저자는 2002년 1월부터 2004년까지 약 3년에 걸쳐 하노이에 사는 11명의 사람들과 만나 속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50년 넘게 한자리에서 정통 베트남 국수를 만들어온 통 할아버지를 비롯, 파리 유학의 꿈을 접고 프랑스와 싸우기 위해 산으로 들어가야 했던 백발의 화가 테비씨 등 신구 세대 11명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베트남에 오시면요, 제발 전쟁 얘기 좀 그만 했으면 좋겠어요. 바깥에서 온 사람들이야 참전지나 한번 돌아보고 가면 그만이겠지만, 여기 사는 사람 생각도 좀 해주셔야지요. 전쟁 얘기라면 정말 신물이 나요.”



베트남전쟁 기간 중 태어난 응안(여·가명)의 하소연이다. 응안은 ‘크리스마스 폭격’과 ‘달러 폭격’을 경험한 세대에 속한다. 1972년 12월 미국의 ‘크리스마스 폭격’ 때 하노이에 살고 있던 응안의 어머니는 피해 있던 방공호에서 응안을 낳았다고 한다. 또 어른으로 성장한 응안이 94년 신문사 광고사원으로 취직을 했는데 그 직후에 미국의 경제 제재 조치가 풀리면서 외국 투자가들의 광고가 쏟아진 덕에 엄청난 돈을 벌게 됐다. 당시 건설부에서 일하던 응안의 아버지 월급이 40달러였는데, 응안은 한 달 만에 아버지의 2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돈을 벌었다. 응안은 이를 ‘달러 폭격’으로 비유했다. 22년 사이에 미국은 두 번의 폭격을 통해 응안에게 ‘병 주고 약 주고’ 한 셈이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시인 판휘엔뜨는 인민 가수로 활약한 어머니와 반동 계급 출신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또한 뛰어난 음악가였지만 출신 성분 탓에 인쇄 공장 근로자로 머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한계에 대한 비관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판의 아버지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 이후 판의 가족은 수년 동안 죄인처럼 살아야만 했다. 그 시절에는 자살도 반동적인 행위로 여겼던 탓에 가족이 그 짐을 짊어져야 했던 것. 그렇게 떠난 판의 아버지는 판에게 바이올린의 기억을 남겨주었다. 어린 시절 판에게 선물했던 그 바이올린이다. 이 책의 제목 ‘아버지의 바이올린’은 바로 여기서 따온 것이다.

이밖에 “전쟁이 끝나자 제일 공포스러웠던 것은 역시 가난”이라고 토로한 한 혁명가 출신의 작가 이야기도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고, “전쟁과 가난은 이길 수 있으나 피붙이들끼리 가슴에 못을 박으면 그 상처는 쉬 아물지 않는다”는 한 시골 할머니의 넋두리는 가슴을 아프게 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전쟁에서 승리한 베트남인들의 입을 통해서는 ‘역사에서 승리와 패배는 있을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오로지 인간의 삶만이 소중하다는 진리를 느낄 수 있을 뿐이다.

Tips

하노이 인구 220만명, 민영업체 약 1만8000개가 소재한 베트남의 수도로 베트남 정치·경제·역사의 중심지다. 베트남전쟁 막바지인 1972년 12월 10여일 동안 미국의 대공습으로 도시가 초토화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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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2005.03.08 475호 (p82~83)

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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