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75

2005.03.08

‘나무판화’로 하나 된 한-중-일 예술혼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5-03-04 10:1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나무판화’로 하나 된 한-중-일 예술혼

    캉지엔페이, ‘무제’, 목판화, 2004.

    “지난해 문화올림픽이라는 세계박물관협의회가 열려 외국의 미술관, 박물관 인사들이 대거 서울을 방문했을 때 가장 많이 고민한 문제는 도대체 무엇이 ‘한국적’이고, 무엇이 ‘동양적’인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오랜 고민과 토론 끝에 그것이 ‘나무판화’라는 데 다다랐어요. ‘동북아 삼국의 현대목판화전’은 그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월18일 시작하자마자 많은 관람객들과 유명 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져 화제가 되고 있는 ‘레드 블러썸(red blossom)’의 기획자 김희령 일민미술관 수석 큐레이터는 “그러나 이 전시는 나무판화가 단순히 동양적이라거나 한국적인 것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나무를 깎은 판에 색을 묻혀 찍어내는 목판화는 동양, 특히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704년 혹은 751년으로 추정)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물이고, 중국의 ‘금강반야경’ 변상도(불경의 맨 앞장에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넣은 그림)는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판화(당나라, 868년)다. 오늘날 ‘미술’ 하면 보통 서양 미술을 일컫지만, 나무판화 미술은 동양에서 시작되고 크게 발전했다. 이 지역에 단단하면서도 칼이 잘 드는 나무가 많다든가, 섬유질이 많은 나무가 많아 질 좋은 종이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게 자연스런 이유가 될 것이다.

    ‘나무판화’로 하나 된 한-중-일 예술혼

    모리무라 레이, ‘시오가마 진자’, 목판화, 2001.

    전시는 모두 네 부문으로 구성된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현대 나무판화 작가들의 작품들이 각각 하나의 부문을 이루고, 특별전 형식으로 한국의 고판화 전이 함께 열린다.



    원래 판화는 발생에서부터 그림의 일회성을 극복하고, 많은 양을 복제하여 여러 사람에게 널리 보급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다. 한-중-일이 판화를 처음 만든 계기는 공통적으로 불경을 일반인들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일종의 종교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조선시대에는 판화가 유교 서적의 삽화로 이용되기도 하고, 의학·천문·군사 등의 기술 서적에 ‘해설도면’으로 판화가 곁들여지기도 했다.

    ‘나무판화’로 하나 된 한-중-일 예술혼

    금강반야바라밀경 변상도, 보물 제877호, 1357년, 삼성출판박물관 소장.

    ‘한국의 고판화’ 전은 바로 이 같은 목적으로 만들어진 고려와 조선시대의 고판화를 나무판과 함께 전시하므로 ‘묘법연화경’, ‘불설대보부모은중경’ 등 개인과 절집 소장의 탁월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명지대 이태호 교수 같은 이는 “고려와 조선시대 종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보람 있는 전시”라고 말한다.

    금속활자가 발명되고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나무로 만든 판화는 자연 쇠퇴했지만, 20세기 초 사회에 참여하려는 열망을 가진 예술가들은 다시 나무와 칼을 잡는다. 때는 동북아 삼국이 서양에 의해 ‘근대화’의 격랑을 건너던 시기로 예술가들은 판화를 통해 민족적 각성을 호소하면서 서구 열강의 식민주의에 저항할 것을 선동했다.

    유명한 중국의 사상가인 루쉰(1881~1936)은 독일 프롤레타리아 작가인 케테 콜비츠에게서 영향을 받아 ‘목판화의 본질적 기능은 사회교육’이라 외치며 신목판화 운동을 일으키고, 이에 따라 수많은 작가들이 나무판화 제작에 몰두하게 된다.

    일본은 이보다 앞선 에도 시대에 ‘우키요에 판화’라는 독특한 판화 형식을 낳는다. 일종의 정밀한 다색 인쇄 기술인데 서민 생활과 풍경을 다루었고, 윤곽선과 선명한 색채가 특징이다. 이 우키요에 판화가 19세기 말 파리에 소개되면서 마네, 고흐, 고갱 등이 큰 영향을 받아 이를 모방할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현대 젊은 작가들 중에도 우키요에 판화에 심취한 이들이 있다. 일본이 자랑하는 일러스트레이션과 만화가 한 자락을 기댄 것도 이 나무판화다.

    근대화 이후 일본 나무판화는 ‘미술 대중화’와 프롤레타리아 미술 운동으로 변화하며 중국 개방 전까지 세계 판화 미술계를 독식한다.

    ‘나무판화’로 하나 된 한-중-일 예술혼

    이상국, ‘홍제동에서2’, 목판화, 2004.

    우리나라에서는 카프를 중심으로 한 좌파 작가들이 ‘질소비료공장’(이상춘), ‘노동자’(이갑기) 등의 판화를 제작하여 일제에 의해 강요된 ‘예술지상주의’를 비판했고, 나혜석도 흑백 판화인 ‘개척자’를 발표했다. 무엇보다 1980년대 민족미술계 작가들의 판화운동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군사정권에 저항한 나무판화 운동은 일반인들에게 미술의 존재를 알리고, 고립된 작가들을 광장으로 끌어낸 ‘사건’으로 현대 한국 미술사에 큰 흔적을 남겼다. 흰 깃발 위에 먹색으로 드러난 칼날 자국처럼 소박한 분노와 저항의 정신을 잘 표현한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무판화’로 하나 된 한-중-일 예술혼

    장민지에, ‘변환2’, 목판화, 2000.

    ‘레드 블러썸’에 전시된 작품들은 이 같은 각국 판화의 전통과 맥을 이으면서도 형식적 다양함과 완결성을 추구하고 있는데, 특히 중국과 일본 작가들의 작품은 기술적인 면과 장인적 치열함에서 감탄을 금할 수 없게 한다.

    오사카 트리엔날레에서 수상하는 등 일본에서 각광받는 중국 작가 장민지에의 대형 판화들은 우선 많은 사람들을 각기 다른 모습으로 새겨넣는 ‘노동’의 양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그의 그림에서 제복을 입은 군상들은 얼굴이 지워진 채 반복적인 행위를 이루는데, 이는 공산주의와 현대사회에 대한 공포와 야유를 드러낸다.

    캉지엔페이 역시 분명한 목소리로 자유를 이야기하는데, 작품의 매력은 나무판화가 가진 ‘칼날’의 맛과 색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모리무라 레이, 고바야시 케이세이, 가라사와 히토시 같은 일본 작가들은 숨이 막힐 정도로 세밀한 칼 솜씨로 화면을 채워놓았는데, 입체감 없는 독특한 원근법에서 일본 회화의 전통이 느껴진다.

    최근 세계 미술 시장과 컬렉터들 사이에서 아시아, 특히 중국 작가들의 작품이 대단한 인기를 끌면서 아시아 작가들이 서구 컬렉터들의 입맛에 맞게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데 비해, 이번 전시 작가들의 작품은 좀더 ‘중국적’이고 더욱 ‘일본적’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자주 열리는 중국과 일본 작가들의 전시들과 비교하면 이 점은 확연하다. 이 역시 나무판화의 본성 때문일 것이다.

    전시에 참여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은 편안하지만, 상대적으로 밀도는 덜한 편이다. 오히려 중국과 일본 현대 작가들은 한국의 고판화 작품들과 더 가깝다. 비록 작가는 아니지만 칼끝으로 부처의 자비로운 입매를 표현하려는 불심과 나무판을 하나의 오브제로 다듬어낸 기술 간에 예술적 열성이 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상 작품과 아이디어만 보여주는 개념 미술이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시대에도 목판화는 여전히 강력하게 대중에게 호소하는 장르이며, 작가의 손과 노동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던한 미술로서의 가능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전시작이 많다 보니 나무판화 그림의 특성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현대 아시아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 거쳐야 할 전시이기도 하다.

    ‘레드 블러썸’이란 제목은 삼국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선호한 봄꽃 매화에서 따온 것이다. 이런저런 전시 제목 후보들이 각국의 문화적 금기로 하나씩 탈락하고 봄꽃이 매화라는 점에 만장일치로 동의가 이뤄졌다고 한다. 같은 봄날, 같은 꽃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한국, 중국, 일본이기에 가능한 전시임이 틀림없다. 4월3일까지, 문의 02-2020-2055.



    문화광장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