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75

2005.03.08

이은주자살 원인 이대로 묻히나

노출 연기 부담·돈 문제 거론됐지만 여전한 미스터리 … 마지막 통화 ‘언니’ 결정적 열쇠 쥔 듯

  • 김지영/ 여성동아 기자 kjy@donga.com

    입력2005-03-03 18: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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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주자살 원인 이대로 묻히나

    이은주의 마지막 영화가 된 \'주홍글씨\'.

    2월22일 25세의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해 충격을 안겨준 영화배우 이은주. 그의 영결식이 이틀 뒤인 24일 분당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거행됐다. 유족과 친지, 교우들 외에 문근영, 김지수, 도지원, 이병헌, 지성, 김정현, 윤석화 등 동료 연예인과 관계자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숙연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이날 영결식은 영결 예배를 시작으로 팬클럽 및 영화인들의 추도사 낭독에 이어 가수 전인권과 바다의 추도가로 이어졌다. 전인권이 “이은주가 좋아했던 노래”라며 ‘걱정 말아요’를 부르자 식장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나왔다. 전인권 역시 검은 선글라스 밑으로 눈물을 보였다. 영결식이 끝난 뒤 이은주의 시신은 경기 벽제 장묘문화센터로 옮겨져 화장 절차를 밟았다.

    화장이 끝나자 이은주의 어머니가 목놓아 울음을 터뜨려 보는 이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이은주의 유골함은 경기 청아공원 납골당에 안치됐는데, 이은주의 오빠는 납골함을 안치하면서 ‘엄마를 꼭 지켜주겠다’고 적혀 있던 유서의 내용이 생각난 듯 “네가 엄마 지켜준다고 했잖아”라며 오열했다. 장례식 내내 자리를 지킨 바다, 김정현, 전인권, 한석규, 김소연, 황인성 등 동료들이 하나둘 빠져나가던 납골당 입구에는 ‘이은주, 불꽃처럼 살다간 당신 편하게 잠드소서’라는 커다란 플래카드가 펄럭이고 있었다.

    경찰은 우울증 탓으로 최종 결론

    이은주의 충격적인 자살 소식이 알려진 뒤 세간에서는 그의 자살 동기를 놓고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일단 경찰 조사에서 밝혀진 자살 원인은 우울증. 경찰은 “영화 ‘주홍글씨’를 촬영할 당시 노출 연기로 많이 힘들어했으며 개봉 후 기대 이하의 흥행 성적을 거둬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려왔다”는 유족의 진술과 그가 남긴 유서 내용 등을 참작해 우울증으로 인한 단순 자살로 결론지었다. 실제로 그는 최근 한 달 사이 우울증 치료를 위해 분당 서울대학교병원을 두 차례 찾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그는 1월24일 처음 병원을 찾아 건강검진을 받았고, 2월3일 신경정신과 문진에서 “밥맛이 없고 잠도 하루 한 시간밖에 자지 못한다”며 극심한 불면증과 식욕부진을 호소했다고 한다. 병원 측은 “2월3일 검사 결과가 우울증으로 판명돼 정밀검사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당사자가 받아들이지 않아 2주치 약을 주며 꾸준히 치료받을 것을 권유했다”며 “원래는 2월17일 다시 병원에 오기로 했는데 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은주자살 원인 이대로 묻히나

    영정 속에서 모처럼 활짝 웃고 있는 고 이은주.

    그렇다면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던 결정적인 원인이 ‘주홍글씨’ 때문이었을까. 항간에서는 그가 유서를 통해 밝힌 ‘근본적인 원인,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 없을 텐데…. 누구를 원망하고 싶지 않았어. 혼자 버티고 이기려 했는데… 일 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어. 무모한 바람이었지. 일 년 전이면 원래 나처럼 살 수 있는데 말야’ 등의 말과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노트에 적혀 있던 ‘인간사도 이젠 지겹다. 자존심도 바닥을 쳤고 더 이상은 그러고 싶지 않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런 모습… 더 이상 보이고 싶지 않다’는 말을 ‘주홍글씨’ 출연을 후회하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그는 ‘주홍글씨’ 촬영 당시 주변 사람들에게 힘들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소속사 측은 이에 대해 “캐릭터가 난해해 힘들어하긴 했지만 연기자로서 고민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을 뿐 노출 문제로 괴로워했다는 일부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유족 주변에서도 ‘주홍글씨’의 노출 연기가 자살을 선택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될 수 있지만 영화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이은주가 전작인 ‘오! 수정’에서도 이미 노출 연기를 한 데다 그가 유서에서 ‘돈이 다가 아니지만 돈 때문에 참 힘든 세상이야. 나도 돈이 싫어’라고 밝혔듯 금전문제로 고민한 흔적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이은주자살 원인 이대로 묻히나

    분당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거행된 이은주의 영결식. 그녀의 마지막 가는 길을 드라마 ‘카이스트’에서 함께 연기했던 김정현이 지켰다(왼쪽).

    소속사 “궁금한 점 공식적으로 밝힐 것”

    또한 그가 유서에서 언급한 ‘언니’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는 유서에서 ‘마지막 통화 언니… 꼭 오늘이어야만 했던 사람. 고마웠어’라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경찰은 이번 사건을 단순 자살로 종결하고 추가 수사를 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마지막 통화자인 ‘언니’는 이은주의 자살 원인을 밝히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줄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로선 그가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소속사 측은 “당분간은 추측 보도를 자제해달라”며 “현재 궁금해하는 점에 대해서는 이은주의 장례식을 무사히 치른 뒤 공식적인 자리를 통해 알려드리겠다”고 말한 바 있어 앞으로 어떤 입장을 밝힐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은주는 영광여고를 졸업할 때까지 전북 군산에서 성장했으며, 1997년 선경스마트 학생선발대회에 은상으로 입상한 뒤 같은 해 KBS 드라마 ‘스타트’를 통해 연기에 입문했다. SBS 청춘드라마 ‘카이스트’에서 김정현과 호흡을 맞추며 사랑이 싹터 한때 두 사람은 연예계의 공식 커플로 주목받기도 했다.

    그는 99년 ‘송어’로 영화계에 데뷔했고 ‘오! 수정’(2000)에 출연해 대종상영화제에서 신인여우상을 수상했다. ‘번지점프를 하다’(2001) ‘연애소설’(2002) ‘하얀방’(2002) ‘하늘정원’(2003) ‘안녕! 유에프오’(2004) ‘태극기 휘날리며’(2004) ‘주홍글씨’(2004)에 출연했고 지난해에는 이서진, 에릭과 함께 MBC 드라마 ‘불새’로 대중적인 인기를 모았다.

    그는 한때 음대 진학을 고려했을 만큼 피아노 연주와 노래 실력이 뛰어나 마지막 출연작인 ‘주홍글씨’에서 대역 없이 재즈 가수 역을 연기했다. 올 2월18일 단국대 졸업식에 참석한 것이 공식적인 이은주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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