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73

2005.02.22

58경기 연속 패배를 몰랐다

세계 최강 ‘세리에A’ 리그서 90~93년 무패 대기록 … 굴리트·반 바스텐·말디니 등 대활약

  • 기영노/스포츠평론가 younglo54@yahoo.co.kr

    입력2005-02-18 10: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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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 스포츠계에서 승리는 ‘존재의 이유’다. 선수들은 승리를 위해 매 경기 ‘올인’하기 때문에 패배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특히 단체 종목의 경우 더욱 그렇다. 보통 개인 종목보다 단체 종목이 1승을 올리기가 더 어려운데, 단체 종목에서 승리하려면 실력뿐 아니라 운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실력이 출중해도 경기마다 운이 따르는 것은 아니어서 모든 경기에서 이기거나 비기기만 하기란 매우 어렵다.

    명장 사키 감독과 선수들 호흡 만점

    이탈리아 프로축구 AC 밀란은 세계 최정상의 축구리그인 세리에A 리그에서 58경기 연속 무패의 신화를 이뤄냈다. 상대 팀들도 승리에 올인한 터라 경기에서 패하지 않을 확률은 33%(승리·무승부·패배의 가능성을 각각 3분의 1로 본다)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58경기를 치르는 동안 한 번도 패하지 않고 이기거나 비기기만 했다니 이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58경기 연속 무패’ 신화를 남긴 AC 밀란은 밀라노를 연고지로 하는 팀으로, 홈구장은 스타디오산시(市)이고 유벤투스·인터 밀란과 더불어 이탈리아 3대 클럽 팀으로 불린다. 특히 유벤투스와는 라이벌 관계인데 유벤투스가 세리에A에 강한 국내용 팀이라면, AC 밀란은 국제 경기에 강한 국외용 팀이다. 그런데 국외용 팀인 AC 밀란이 국내 리그에서 전 세계 어느 클럽도 이루지 못한 ‘불멸의 기록’을 세운 것이다.

    AC 밀란은 1950~51년 시즌 처음 우승한 이후 명문 팀으로서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AC 밀란에는 48년 런던올림픽 축구 금메달리스트인 스웨덴의 군나르 글렌, 군나르 노달 그리고 닐스 리에드홀름 등이 활약했다. 북유럽 출신의 뛰어난 용병들 덕에 첫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조지 리베라가 뛰던 60년대에는 세리에A 우승 2회,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 컵위너스컵 우승 2회 등을 기록하면서 세계 최고 팀으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런데 78~79시즌 승부 조작을 시도한 것이 발각되면서 80~81시즌부터 세리에B로 강등돼 몰락의 길을 걸었다. 5~6년간 암흑기를 거친 AC 밀란은 86년 현 이탈리아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구단을 인수하면서 대대적으로 팀 개편에 들어갔다.

    베를루스코니는 팀을 재건하는 데 무엇보다도 선진 축구, 창조적인 축구를 구사하는 감독이 필요하다고 보고 그에 걸맞은 감독 영입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과 남미 등 세계의 모든 감독들을 물망에 올려놓고 저울질하다가 결국 눈을 안으로 돌려 명장 아리고 사키를 영입했다. 그러고는 물심양면으로 그를 지원했다.

    사키 감독은 선수를 패키지로 끌어들여야 활용가치가 높다고 보고, 당시 유럽에서 정상을 달리던 네덜란드 ‘토털축구’의 핵심 멤버인 루드 굴리트·반 바스텐·프랑크 리카르트 등 ‘오렌지’ 삼총사를 스카우트했다. 여기에 이탈리아 수비축구 가데나치오(빗장수비)의 핵심인 프랑코 바레시와 파올로 말디니가 가세하면서 최고 클럽 팀의 위용을 보이기 시작했다.

    박빙의 실력차 속에서 시즌 3연패도

    AC 밀란은 사키 감독이 사령탑에 오르기 전까지 극단적인 수비축구를 고수했다. 그러나 사키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수비만으로는 우승할 수 없다고 결론짓고 4-4-2 포메이션을 가동했다. 공격과 미드필더 수비를 20m 간격으로 배치해 그라운드 전체를 방어하고 곧바로 역습하는 시스템을 짰는데, 이 시스템을 완벽하게 소화한 선수들이 바로 오렌지 삼총사와 바레시, 말디니였다. 이들이 없었다면 사키 감독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대기록을 세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사키 감독과 그가 영입한 선수들이 주축이 된 AC 밀란은 89~90시즌부터 세리에A를 3연패했다. 당시 세리에A에서 연속으로 우승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다. 세리에A에선 1회 대회인 87~88시즌에 우승을 차지했던 제노아가 2회, 3회 대회마저 석권해 연속 우승을 한 이후 베르셀리 등이 연속 우승을 차지했고, 유벤투스가 4년 연속 우승한 적이 있다. 그러나 82~83시즌 이후로는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한 팀이 한 팀도 없을 정도로 팀들 간의 실력 차는 많이 좁혀졌다.

    그런데 AC 밀란은 89~90시즌과 90~91시즌 정규리그에서 연속 우승을 했을 뿐 아니라 유럽축구 최고팀을 가리는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유럽과 남미의 클럽 우승팀끼리 일본에서 단판 승부를 벌여 세계 최고 클럽 팀을 가리는 도요타컵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AC 밀란은 이처럼 전성기를 구가하면서 90~91시즌부터 92~93시즌에 걸쳐 58경기 연속 무패 기록을 세운 것이다. 58경기를 치르는 동안 40승, 18무를 기록했다. 이 기록은 세리에A뿐만 아니라 유럽 남미 아시아 북중미 아프리카를 통틀어 세계 최다 무패 기록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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