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71

2005.02.01

“우리는 휴대전화 신인류”

1525 세대, 게임·음악·영화·사진 등 만능수단 활용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5-01-26 12: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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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휴대전화 신인류”

    휴대전화 마니아 주상일씨(왼쪽)와 추현석군.

    고교 1학년인 유총재군(17)은 일명 ‘문자귀신’이다. 하루 평균 300∼400통의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그의 실력은 20초 안에 50자 이상을 찍어내는 수준. 지난해 12월 한 TV 프로그램에서 마련한 ‘문자메시지 빨리 보내기’ 대회에 출전해 1등을 하기도 했다. 등굣길, 쉬는 시간, 야간자율 학습시간, 학원 가는 길, 집에 돌아오는 길 등 짬 날 때마다 휴대전화에 코를 박고 문자를 ‘날린다’. 하루 평균 15∼20명의 친구들이 문자메시지의 대화 상대다.

    “학교 가는 길에 오늘 숙제나 준비물이 무엇인지 5∼6명에게 한꺼번에 문자를 날려요. 가끔은 같은 교실에 있는 친구에게도 문자를 보내요. 직접 가서 물어보기 귀찮잖아요.”

    휴대전화 알람에 깨고 배터리 전원에 꽂고 잠들어

    그러나 유군은 한 달 전부터 문자메시지 무제한 사용 서비스를 해제하고 대신 무선인터넷 무제한 사용 서비스에 가입했다. 요즘 무선인터넷으로 메신저 대화를 하는 것이 유행이기 때문. 각종 모바일 프로그램을 내려받는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유군은 매주 수요일마다 새로 출시되는 모바일 게임을 모조리 내려받고 있다. “학원 다니느라 집에서 컴퓨터 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모바일 게임을 주로 한다”며 “중간에 그만뒀다가 다시 이어서 할 수 있는 롤플레잉 게임이야말로 버스나 지하철에서 짬짬이 즐기기에 좋다”는 것.

    대학생 송지연씨(24)는 휴대전화 요금으로 매달 12만원씩 내고 있다. 이중 음성통화료는 3만원에 불과하고, 나머지 9만원은 모두 부가서비스 사용료다. 폰카 사진 무제한 전송 서비스, TV 프로그램 무제한 상영 서비스, 뮤직비디오나 영화 등 동영상 무제한 다운로드 서비스 등 각종 부가서비스에 가입한 까닭이다. 송씨는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 재미난 포즈를 취하는 친구들, 놀러 간 곳 등의 사진을 찍어 친구에게 전송해주고 자신의 미니홈피에 곧장 올리기도 한다. 송씨는 “하루 평균 20명에게 30장 정도의 폰카 사진을 전송한다”고 말했다.



    1525(15~25세)세대에게 휴대전화는 이미 ‘이동통신수단’의 의미를 넘어섰다. 고등학생에서부터 대학생까지, 좀더 확대하면 중학생에서부터 20대 후반의 직장인까지 ‘모바일 신인류’는 음성통화보다 문자메시지에 더 익숙하다. 휴대전화는 음악, 게임, 카메라, 영화, TV 프로그램 등을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매체이자 하루 종일 나를 따라다니며 나만의 개성을 드러내주는 분신 같은 존재다. 이들은 휴대전화 알람소리에 맞춰 잠을 깨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 휴대전화 배터리를 전원에 꽂고 잠드는 것으로 하루를 마친다.

    “이것 좀 보세요. 요즘엔 휴대전화 무선인터넷으로도 인터넷 카페에 접속할 수 있거든요. 어라? 회원 한 명이 도착했는데, 절 못 알아보나 봐요.”

    “우리는 휴대전화 신인류”

    휴대전화로 은행 업무를 확인하는 모습. 온라인을 통해 중고제품을 자주 사고파는 신세대들에게 휴대전화 무선인터넷을 통한 잔액조회는 편리한 서비스다.

    1월19일 오후 서울 방배동에서 만난 조병진씨(28)는 10만명의 회원을 거느린 다음카페 ‘LGT CYON 사용자 모임’(cafe.daum.net/lgtlp3000) 운영자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휴대전화 버튼을 눌러 인터넷 게시판에 접속한 조씨는 불과 몇 분 전 올라온 새 글을 발견했다. 이날 만나기로 한 카페회원 김재승씨(23)가 ‘기다리는 중인데 닭님(조씨의 카페 닉네임) 얼굴을 모르니 치명적이네요. ㅠㅠ’라며 글을 올려놓은 것. 조씨는 곧장 답글 메뉴를 선택해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남겼다. 그리고 3분 뒤 김씨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서로 얼굴도 연락처도 모르는 상태였지만 무선인터넷을 활용한 덕분에 ‘접선’에 성공한 셈이다.

    한 사람이 단말기 22대 갖고 있는 경우도

    조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휴대전화 마니아다. 2년 전쯤 삼성전자가 출시한 슬라이드형 휴대전화를 사용한 이후 휴대전화에 푹 빠졌다. 조씨는 “새로운 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직접 사용해보면서 해당 제품의 장단점을 조목조목 따져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고 말한다.

    현재 조씨가 가진 휴대전화는 무려 22대. 이중 15대는 사용 가능한 ‘현역폰’이다. 지난해 쓴 최신형 휴대전화 6대 구입비만 300만∼400만원. 100만원 가까이 드는 500만 화소 카메라폰인 삼성전자 애니콜 SCH-S250은 친구에게 며칠 빌려서 사용해보는 것으로 ‘참았다’.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제품은 ‘정복’ 후 중고폰 온라인 거래로 팔아치운다.

    조씨의 가방은 각종 휴대전화 유틸리티로 가득하다. 두어 대의 휴대전화, 배터리 충전기, 컴퓨터 연결용 케이블선, USB포트, 메모리칩 등. 언제 어디서나 단말기에 ‘밥’을 주고, 컴퓨터와 연결해 영화·뮤직비디오·음악·애니메이션 파일 등을 단말기에 채워넣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요즘 1525세대에게 ‘1인당 이동전화번호 1개’란 명제는 그저 편견일 뿐이다. 이들은 갖고 싶은 휴대전화 단말기가 있다면 그것을 사용해볼 목적으로 번호를 하나 더 개통한다. 조씨 또한 현재 4개의 이동전화번호를 사용하고 있다. 주로 사용하는 ‘메인폰’을 제외한 3대의 ‘서브폰’은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단말기를 바꿔가며 사용한다. 이동통신에 대한 니즈(needs)가 단말기 수요를 낳는 것이 아니라, 단말기에 대한 니즈가 이동통신 서비스 고객을 창출하는 셈이다.

    “정말 MP3처럼 생겼죠? 어딜 가나 진짜 휴대전화냐고 물어요. 지하철에서도 이걸로 음악 듣다 전화를 받으면 주변 사람들이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고요. 그럴 때마다 기분이 끝내주죠.”

    “우리는 휴대전화 신인류”

    이기훈군이 제작한 일반전화에 휴대전화 부품을 옮겨 부착한 ‘이동전화기형 모바일폰’

    대학생 주상일씨(26) 또한 두 군데 이동통신사에 가입한 휴대전화 신인류. 한 달 전 모토로라가 출시한 MS400이 너무 마음에 들어 이미 사용하고 있는 휴대전화가 있는데도 구입했다. MP3 플레이어도 있고 기존에 사용하던 휴대전화에도 MP3 기능이 있지만 그는 “새로 구입한 단말기는 차원이 다르다”고 딱 잘라 말한다. MP3 플레이어로 음악을 들으면 휴대전화 벨소리를 듣지 못해 걸려온 전화를 놓칠 수도 있지만 MP3폰은 그럴 염려가 없고, 기존 단말기와 달리 음악을 들으면서도 문자메시지 작성이나 무선인터넷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경기 부천의 집에서 서울 역삼동 사무실까지 출근하는 1시간 30분 동안 휴대전화 두 대는 모두 재미난 장난감이 되어준다. 한 대로 음악을 들으면서 다른 한 대로는 모바일 게임을 하거나 전자소설을 읽는 것.

    벨소리를 내려받는 것도 자주 하는 ‘휴대전화 일과’ 중 하나다. 한 달에 30곡씩 내려받아 마음에 드는 곡을 골라 사흘에 한 번꼴로 벨소리를 바꾼다. 주씨는 “가끔 어느 벨소리가 내 휴대전화 벨소리인지 헷갈리기도 한다”며 웃었다.

    고등학교 3학년 진학을 앞둔 추현석군(18)은 휴대전화 알람소리에 눈을 뜨자마자 이불 속에서 무선인터넷에 접속해 메일함을 확인한다. 아침부터 컴퓨터를 켜면 엄마에게 혼나기 때문이다. 등굣길에는 친구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오늘의 숙제나 준비물을 묻기도 하고 쓸데없는 농담도 나눈다. 수업시간에도 엄지손가락은 책상 서랍 안에 넣어둔 휴대전화 키패드(keypad) 위에서 춤을 춘다.

    쉬는 시간에는 폰카(휴대전화 카메라)를 가지고 논다. 익살스런 표정을 짓는 친구들 사진을 찍어 포토메일로 전송해주기도 하고, 인터넷 미니홈피나 블로그에 곧장 올리기도 한다. 추군은 시험시간표도 폰카로 찍어 휴대전화 포토앨범에 저장해두었다. 궁금할 때마다 주머니 속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확인하면 되기 때문에 수첩보다 훨씬 편리하다.

    새로 출시되는 제품이라면 모조리 사용해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추군은 새 단말기를 손에 넣으면 하루 종일 단말기를 주무르고 또 주무른다. 손에 쥐었을 때 느낌은 어떤지, 메뉴 설정은 사용하기 편리한지, 액정화면 화질과 카메라, MP3 기능은 어떤지, 부가서비스 기능으로는 무엇이 추가됐는지, 혹시 버그(기술상의 결함)는 없는지 등.

    “우리는 휴대전화 신인류”

    1525세대가 제작한 휴대전화 카메라 기능을 활용한 다양한 ‘폰카놀이’ 사진.

    추군이 최근 구입한 단말기의 경우 3일 만에 무려 2822번 폴더를 열고 닫은 것으로 기록됐다. 사실 이 같은 통계는 소비자가 접근할 수 없는 정보다. 소비자에게 제공되는 메뉴 목록에는 포함되지 않은 ‘테스트 메뉴’에 들어 있는 정보이기 때문. 그러나 추군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숫자 키를 눌러 이 숨겨진 메뉴를 찾아냈다.

    추군은 일본에서 생산되는 단말기에도 관심이 많다.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 손에 쥔 일본 휴대전화만 서너 대. 회원수가 9000명이 넘는 일본 폰 동호회도 운영하고 있다. 분홍 보라 연두색 등 다채로운 단말기 색상, 국내 단말기보다 선명한 액정화면 등이 추군이 말하는 일본 제품의 장점이다. 추군은 각종 인터넷 사이트나 관련 매체에 휴대전화 사용 후기 글을 게재하는 것으로 용돈을 번다. 이렇게 번 돈은 물론 새 단말기를 사는 데 쓴다.

    경남 울진에 사는 이기훈군(19)의 취미는 휴대전화 튜닝. 튜닝이란 휴대전화에 새로운 색을 칠하거나 키패드, 안테나에 불이 들어오도록 발광다이오드(LED)를 붙이는 등 휴대전화를 개조하는 작업을 말한다. 이군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튜닝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가족, 친척, 친구, 동호회 회원의 휴대전화 등등 줄잡아 200여개의 휴대전화를 튜닝했다. 이군은 “휴대전화를 뜯어 내부를 살피는 게 취미”라며 “전교생 휴대전화는 다 뜯어봤다”며 웃었다. 그는 최신형 휴대전화를 사갖고 온 친구에게는 ‘망가뜨리면 물어주겠다’는 각서를 쓴 뒤 빌려서 분해해보곤 한다.

    이군은 지난해 10월 평소 상상했던 것을 실현하는 데 성공했다. 일반전화에 휴대전화 부품을 그대로 옮겨 ‘괴짜 휴대전화’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그것. 일반전화에 액정화면까지 옮겨 달았고 문자메시지 수신, 벨소리 변경, 진동 등 휴대전화의 모든 기능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수업시간에 문자 온 게 걸려도 선생님한테 혼나지 않았어요. 다들 한번씩 사용해보면서 재미있다고 말씀하시고 그냥 가시더라고요.”

    대학생 김재승씨는 집에서도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즐겨본다. 침대에 누워 배 위에 휴대전화를 올려놓고 애니메이션을 즐겨 감상하는 것. 그는 서울지하철 노선표도 사진을 찍어 휴대전화 포토앨범에 저장해놓았다. 포토앨범 줌 기능을 활용하면 사진을 확대해 필요한 지하철 노선 정보를 알아내는 데 편리하다.

    “우리는 휴대전화 신인류”

    1525세대가 제작한 휴대전화 카메라 기능을 활용한 다양한 ‘폰카놀이’ 사진들.

    휴대전화는 신체의 일부? … 몸에 없을 땐 불안 시달려

    인터넷 카페 운영자 조병진씨는 중요한 회사 서류를 휴대전화 메모리칩에 저장해놓는다. 주요 일정도 휴대전화 스케줄 메뉴에 저장시키고 매일 아침 확인한다. 1525 세대에게 휴대전화는 TV이자 스크린, 서류가방이자 수첩인 셈이다.

    1525 세대에게 휴대전화를 빼앗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추군은 “친구가 자기가 보낸 문자가 ‘씹혔다’며 기분 나빠할까 봐 불안하다”면서 “휴대전화를 뺏는 것은 입을 막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조씨는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온 날이면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생겼는데 나만 연락받지 못하는 상황을 상상하며 걱정하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송지연씨는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등교한 날이면 공강 시간을 이용해 왕복 2시간가량 걸리는 집에 휴대전화를 가지러 갔다 온다”고 말했다.한결같이 “휴대전화를 몸에서 떼어놓으면 몹시 불안감을 느낀다”는 고백인 것.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된 서비스에 사로잡힌 1525 세대 휴대전화 소비 행태는 과연 매출 증대를 꾀하는 사업자의 책략이 낳은 소비의 거품일까. 이에 대해 1525 세대는 ‘휴대전화의 유비쿼터스는 시대적 흐름’이라고 한 목소리를 낸다. “휴대전화는 음성통화만 잘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추군은 이렇게 맞받아친다.

    “그런 논리라면 자동차는 굴러가기만 하면 되는 거죠. 휴대전화가 단순히 음성통화 용도에만 머물러야 한다면, 자동차도 ‘포니’ 이후에 발전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되잖아요. 어른들이 좀더 빠르고 편안하고 기능이 많은 자동차를 원했듯이 우리 세대도 좀더 진화된 휴대전화를 원하는 것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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