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71

2005.02.01

유영철 잡혔으면 그만? … 경찰, 시체 신원 확인 늑장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5-01-26 09: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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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철 잡혔으면 그만? … 경찰, 시체 신원 확인 늑장

    2004년 7월19일 서울 봉원사 인근 야산에서 이뤄진 유영철의 현장검증.

    이름 없는 2구의 시체는 어떻게 됐을까. 지난해 여름 전 국민을 경악시켰던 연쇄살인 사건에 대해 1심 재판부가 피의자 유영철씨에게 사형을 선고하면서 이 사건은 마무리 국면에 들어간 듯 보인다. 그러나 이 초유의 살인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서울 봉원사 인근 야산에서 발견된 11구의 시체 중 2구에 대해 지금까지도 신원 확인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

    뼈만 앙상하게 남은 이 피해자들의 이름과 가족은 영영 찾을 수 없는 것일까. 경찰은 “지문이 남아 있지 않고 자신의 딸이라며 나서는 사람도 없어 신원 확인이 어렵다”며 고충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피해자의 신원을 찾아낼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실종자들의 치과 치료 기록을 활용하는 것.

    현재 경찰에 신고된 실종자들 중 유씨가 범행 대상으로 삼았던 20대 여성들의 치과 엑스레이 사진을 피해자들과 대조해보면 신원 일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보관하고 있는 피해자 두개골에는 둘 다 어금니를 치료한 흔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이 방법은 DNA 대조보다 짧은 시간 내에 변사체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유용한 기법이다. 지난해 12월 경기 화성에서 발견된 변사체가 실종된 여대생 노모씨란 사실이 반나절 만에 밝혀졌는데, 이는 노씨의 치과 엑스레이 사진 대조를 활용한 덕분이었다.

    이 같은 수사기법이 있음에도 경찰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경찰 안팎으로부터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서울지방경찰청은 이미 전국 실종자 1만2350명 중 20대 여성 429명의 명단을 확보했지만 두 달 넘게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자료 협조를 요청하는 공문조차 보내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공단으로부터 대상 실종자들이 언제 어느 병원에서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입수해야 실제 자료 수집에 나설 수 있는데도 경찰이 이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

    경찰 안팎에서는 검찰 송치 이후 유영철 수사라인의 사실상 해체, 범죄자 검거 위주의 평가 체계, 변사체 신원확인 책임 소재의 불분명함 등이 범죄 피해자에 대한 이 같은 무관심을 낳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한 경찰수사 관계자는 “유영철 사건 수사에 참여했던 경찰들에게 시체 수사를 위한 팀을 꾸리자고 제안했더니 ‘이미 다른 강력범죄 수사팀에 투입된 상태’라며 난감해했다”면서 “경찰 당국은 피해자 신원 확인에 관심조차 갖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종된 자녀나 형제를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경찰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신원확인 수사에 나서야 함은 당연지사. 한 경찰 관계자는 “이를 위해서는 경찰이 유씨의 범행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는 기존 수사인력으로 전담반을 꾸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실종자 관련 정보를 수집하도록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한편 서울청 기동수사대 홍정련 폭력팀장은 “우리가 맡고 있는 다른 강력 사건이 많아 신원확인 수사가 미진한 것은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서울청은 ‘주간동아’의 취재가 있은 지 하루가 지난 1월21일에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수사협조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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