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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팝니다! ‘체 게바라 죽음’을

배신했던 마을이 ‘상품화’에 앞장 … 야영지·행군 코스 등 많은 관광객 기대

  • 멕시코시티=한동엽 통신원 boracap@hanmail.net

팝니다! ‘체 게바라 죽음’을

중남미 젊은이들의 영웅 체 게바라는 1928년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여행가에서 게릴라, 혁명가를 거쳐 쿠바 총리를 지냈다. 이후 그는 ‘볼리비아 민중의 자유’를 위해 다시 총을 들었으나 1967년 10월7일 출로 계곡의 전투 끝에 체포되어 이틀 뒤인 9일 라 이게라라는 마을의 폐교에서 사살됐다.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벌어진 볼리비아 게릴라전은 체 게바라에게 힘든 싸움이었다. 평생 자신을 괴롭혀오던 천식의 발작과 그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된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볼리비아 정부군의 추격, 게릴라 부대 내부의 배신과 농민들과의 연대 실패는 체 게바라를 정부군에게 쫓기다 끝내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래서 후대 역사가들은 “그는 ‘볼리비아의 자유를 위해 싸우다 볼리비아의 배신 때문에 죽은 것’이다”고 말한다.

산간 마을 가난 극복할 기적 믿어

그로부터 38년이 지난 오늘. 체 게바라가 혁명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최후를 맞이했던 곳, 그가 동료들과 함께 소총을 들고 비밀리에 활동했던 라 이게라 마을과 인근 지역은 최근 ‘체의 행로’ 개막식을 열고 ‘체의 죽음’을 팔 준비를 마쳤다.

이들은 빈곤의 그림자가 어둡게 드리워진 이 산간 마을에 ‘체의 행로’가 자신들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줄 희망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체의 역사와 죽음을 기억하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는 것.



이들이 만든 ‘체의 행로’는 66년 체 게바라의 첫 번째 야영지부터 그가 사살됐던 라 이게라 마을의 작은 학교 교실에까지 이른다. ‘체의 행로’라고 쓰여진 표지판에서 시작된 이 코스는 그란데 강을 끼고 있는 험준한 협곡을 비롯해 300km에 달하는 체 게바라 게릴라 부대 행군 코스와 그들이 숨어 지냈던 동굴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카미리라는 곳에는 프랑스 지식인 레히 데브라와 아르헨티나 화가 시로 부스토스가 갇혀 있었던 정부군 제4사단 감옥이 시로 부스토스의 그림과 함께 일반에게 공개되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그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바예그란데에서는 체와 그의 동료 6명이 비밀리에 매장됐던 묘 구덩이가 30년 만에 발견되어 ‘체의 행로’ 중 가장 매력적인 중심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체 게바라의 죽음을 지켜봤고, 여전히 그를 기억하고 있는 라 이게라 마을을 포함해 인근 지역 주민들은 체의 영혼과 그를 둘러싼 전설, 그리고 게릴라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에게 가난을 극복할 기적을 가져다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 탓에 몇 년 전부터 마을 주민들은 체 게바라가 마지막으로 앉았던 의자나 그가 먹고 마셨던 그릇, 혹은 그가 뉴스를 듣곤 했던 라디오 수신기 같은 물건을 수집해왔다. ‘제사보다 젯밥’에 더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은 ‘체를 기억하고 기린다’는 말 뒤에 따라올 경제적 이익을 계산하고 있는 셈이다.

라 이게라 마을 학교의 음악교사인 세사르 아르테아는 “체 게바라가 죽었던 이 마을로부터 15km에 이르는 지역에는 수많은 체의 영상들이 있다”며 “그가 이곳에 ‘신의와 애정’을 남겨놓았고, 많은 사람들은 그의 영혼 앞에 자신의 일과 여행의 안녕을 기원한다”며 마을 주민들의 체 게바라에 대한 신앙을 설명한다.

반면 아브라 델 피카초에 사는 관광가이드 폴리카르피오 코르테스는 “나를 포함해 인근 마을사람들이 ‘체의 행로’를 보러 오는 관광객들로 많은 경제적 혜택을 받기를 원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곳의 어린 학생들에게도 체 게바라는 도시 젊은이들이 흠모하는 ‘이상의 영웅’만은 아니다. 14세의 마리셀라 모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기를 원했던 체의 이상은 아름다운 것이었다”고 말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역사와 죽음을 알기 위해 이곳을 찾기를 바라고, 이를 통해 우리의 생활이 조금이나마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딸 “돈벌이 위해 현실 악용 우려”

이뿐이 아니다. 오늘날, 한때 여행가였던 체 게바라가 지나갔던 수많은 중남미 국가 곳곳에 남겨놓은 그의 흔적은 최고의 관광상품이 되었다. 체 게바라를 동경하는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상품은 ‘쿠바 혁명의 게릴라 행군로’를 경험하는 여행상품에서부터 그가 올랐던 멕시코의 화산 포포카테베틀과 그가 살았던 집, 번화한 거리와 시장에서 판매되는 옷과 포스터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 걸쳐 있으며, 심지어 전통 공예품 시장에서조차 체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캠퍼스를 누비는 수많은 학생들의 옷에는 체 게바라의 초상이 그려져 있고, 체의 상징이었던 베레모를 쓰고 다니며, 이들의 방에는 체의 포스터와 여러 장식물들이 놓여 있다. ‘영웅에 대한 동경’이 다양한 상품으로 둔갑한 것이다.

그럼에도 볼리비아 마을의 ‘체의 행로’는 다른 지역에서 회상하는 체 게바라의 느낌과 사뭇 다르다. 체 게바라를 정부군에 신고함으로써 자신들의 자유를 위해 싸웠던 세기의 영웅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이들이 38년이 지난 오늘, 그의 죽음을 통해 관광 수입을 올리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체 게바라의 딸인 알레이다 게바라 마치는 ‘볼리비아의 체의 행로’에 대한 소감을 묻는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존경을 담아 무언가를 하거나, 사람들이 아버지한테서 무언가를 더 배울 수 있게 하는 경우에는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도 “항상 두려운 것은 일반 민중이 아닌 일부 사람들이 돈벌이만을 위해 현실을 악용하는 것”이라며 체에 대한 지나친 상품화를 우려했다.

그러나 비록 체 게바라의 죽음이 그를 배신했던 마을 사람들에 의해 상품화된다 하더라도 그들이 원하는 ‘기적’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가 남긴 ‘미완의 혁명’에 ‘희망’이라는 작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주간동아 2005.01.25 470호 (p52~53)

멕시코시티=한동엽 통신원 boraca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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