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70

2005.01.25

선거 이긴 압바스 “걱정은 지금부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의장 당선 … 카리스마 없는 데다 국내외 현안 산더미 ‘불안한 출발’

  • 이스라엘=남성준 통신원 darom21@hanmail.net

    입력2005-01-19 18:2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야세르 아라파트의 사망에 따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의장 선거가 1996년 이후 처음으로 1월9일 시행되었다. 이번 선거는 아라파트 이후 팔레스타인 정국의 향방을 결정짓는 중요한 선거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였던 존 케리 등이 포함된 800여명의 국제감시단이 파견되어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선거가 되도록 감시하는 등 국제 사회의 높은 관심 속에서 진행되었다.

    2004년 11월 말 마흐무드 압바스(아부 마젠)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이 팔레스타인의 지배 정파인 파타흐의 단일후보로 지명된 순간 당선자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다른 선거와 달리 누가 당선되느냐보다 투표율과 득표율이 얼마나 될 것인지가 관심사였다.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공식발표에 따르면 총 5명이 후보로 나선 선거에서 아부 마젠은 62.32%의 득표로 당선되었다. 2등은 의사이자 인권운동가로 무소속 후보인 무스타파 바르구티로 19.8%를 얻었다. 내심 70%대의 득표율을 기대한 마젠의 선거진영에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결과지만, 현지 언론과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정국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지지 기반은 확보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이다.

    낮은 투표율 기대 못 미처 ‘부담’

    이번 선거는 큰 사고 없이 비교적 차분하게 이뤄졌으나 투표 과정에서 두 가지 절차상의 문제점을 드러냈다. 선관위가 낮은 투표율을 우려해 투표 마감 시간을 오후 7시에서 9시로 2시간을 연장한 일과 선거인 명부에 이름이 올라 있지 않은 사람이라도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민이라는 신분증만으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한 일이다. 특히 신분증만으로 투표할 수 있게 한 일은 한 사람이 중복투표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 부정투표에 대한 시비를 불러일으켰다. 선관위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팔레스타인의 인구조사가 오래되어 실제 투표권이 있는 사람의 수와 선거인 명부에 이름이 올라 있는 사람의 수가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관위 측은 중복투표를 방지하기 위해 하루나 이틀 정도 유지되는 특수잉크를 투표자의 손에 찍었으나 실제로 한두 시간이면 잉크가 지워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높은 투표율과 득표율에의 집착은 마젠이 처한 상황에서 비롯되었다. 파타흐 내의 구세력으로 대표되는 마젠은 신진세력의 도전을 받고 있고, 파타흐 내부에는 포스트 아라파트를 노리는 여러 후보들이 여전히 기회를 엿보고 있다. 특히 파타흐 내의 신진세력은 의장 후보로 인티파다[민중봉기, 2000년 9월 발발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반(反)이스라엘 저항 운동] 기간 중 대중적 지도자로 급부상한 마르완 바르구티를 옹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결국 바르구티가 출마를 포기했지만, 만일 바르구티가 선거에 출마했더라면 마젠의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또 밖으로는 하마스 같은 반정부 단체가 파타흐의 주도권에 대해 강력히 도전해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의장 선거에서 하마스나 이슬람 지하드 같은 이슬람 단체들은 보이콧했지만, 이들이 연합하여 후보를 냈더라면 마젠으로서는 힘겨운 싸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낮은 투표율과 득표율은 자칫 자치정부 의장으로서 마젠의 지위가 안팎으로부터 위협받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기에 높은 투표율과 득표율이 중요했던 것이다.

    마젠은 일단 60%가 넘는 득표율로 비교적 안정적인 지지율을 확보했지만, 예상보다 낮은 투표율은 부담이 될 전망이다. 투표율이 낮은 주원인은 하마스 및 이슬람 단체 지지자들의 선거 보이콧과 이스라엘이 선거에 협조했음에도 여전히 일반인들은 통행이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당초 선관위는 70% 정도의 투표율을 예상했으나 실제 이보다 훨씬 낮은 50%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선관위는 총 투표자 수는 밝혔지만 투표율을 공개하지 않았는데, 이는 앞서 언급한 절차상의 문제 때문에 투표율을 산출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의장으로 당선된 마젠은 아라파트의 뜻을 이어받아 정국을 운영할 뜻을 밝혔다. 마젠은 야세르 아라파트와 1959년 파타흐 설립 초기부터 팔레스타인 독립운동을 위해 함께했지만 여러 면에서 대조된다. 아라파트가 타고난 선동가로 대중 앞에 서는 것을 즐겼다면, 마젠은 조용한 성품으로 앞에 나서기를 체질적으로 싫어한다. 아라파트에 이어 PLO 내 2인자 위치에 오랫동안 있었지만 대중 앞에 전면적으로 나선 것은 이번 선거가 처음일 정도다. 군복과 카피예(무슬림들이 머리에 쓰는 두건)로 상징되는 아라파트의 카리스마가 마젠에게는 없다. 이 점은 마젠이 이후 정국을 운영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전문가들, 압바스 정권 성공에 부정적 시각

    그러나 마젠은 카리스마가 없긴 하지만 PLO 내의 대표적 협상 전문가다. 협상가로서의 마젠의 능력은 이번 선거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하마스나 이슬람 지하드 같은 반정부 단체가 이스라엘과 대치정국을 형성한다면 선거 자체가 무산될 수 있었기 때문에 마젠은 이들 단체의 대표들과 만나 이번 선거의 중요성을 역설했고, 결국 이들의 협조를 얻어내 선거를 무사히 치르는 데 성공했다. 93년 오슬로 협정의 팔레스타인 측 입안자 또한 마젠이다. 당시 이스라엘 측 입안자로 마젠과 머리를 맞대고 협상해본 경험이 있는 이스라엘의 대표적 좌파 지식인이자 정치인인 요시 베일린은 마젠에 대해 “온건하고 합리적인 실용주의자란 세간의 평과 달리 결코 온건하지도 만만하지도 않은, 상황 판단이 매우 빠른 냉철한 협상가”라고 평가한 바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선호하는 인물이라는 점도 마젠의 장점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 점은 역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변인’이라는 비판을 불러일으킬 위험성도 가지고 있다. 마젠은 인티파다 기간 내내 팔레스타인 민중에게 무력투쟁을 중단할 것을 강조했다. 무력으로는 결코 이스라엘을 이길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팔레스타인의 현실 정치인 가운데 감히 공개적으로 무력투쟁의 중지를 주장한 인물은 마젠이 거의 유일하다.

    어찌되었든 이번 선거를 계기로 팔레스타인에 민주적 절차를 통한 정통성 있는 합법정부가 들어서게 되었고, 이는 그 자체만으로 평가받을 만한 일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마젠 정권의 성공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팔레스타인 민중의 삶을 정상화하고 이스라엘과 평화협상을 재개하여 궁극적으로 독립국가를 설립해야 한다는 과제는 마젠 아닌 다른 누구라도 감당하기에 벅차기 때문이다. 이 어려운 과제를 마젠 정권이 어떻게 풀어갈지 지금 세계의 눈은 팔레스타인에 쏠려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