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70

2005.01.25

이후락 前 중정부장 불운 겹치는 말년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5-01-18 17: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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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락 前 중정부장 불운 겹치는 말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전설 속의 권력자,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노년이 불운으로 점철되고 있다. 이 전 부장 측과 접촉하고 있는 한 ‘관계(官界)’ 인사에 따르면 그의 주변은 권불십년의 징후가 뚜렷하다.

    무엇보다 그의 건강이 요즘 악화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최근 이 전 부장 측과 접촉했던 이 인사에 따르면 1924년생인 이 전 부장은 당뇨와 중풍 등에 시달리고 있다. 수시로 병원을 드나들지만 심신이 하루가 다르게 쇠잔해지고 있다는 것. 이 전 부장이 지난해까지 기거했던 경기 하남시 ○○동 자택이 경매에 넘어간 것도 말년 불운으로 회자된다. 대지 300평 건평 150평으로, 홀로 살기에는 비교적 규모가 큰 이 저택에서 이 전 부장은 경비원 겸 관리인 2명과 가정부 1명 등과 생활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경매에 넘어갔다. 보험회사로부터 거액을 대출받았다가 이를 갚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보험회사 관계자는 1월14일 전화통화에서 “대출금 반환기일이 지나 법적인 조치를 취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이 전 부장은 현재 다른 친지의 보살핌 속에서 서울 강남 인근으로 옮겨 살고 있다고 한다.

    2004년 4월에는 사업에 실패한 아들에게도 불운이 찾아왔다. 이 전 부장은 현재까지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한다.

    이 전 부장은 박정희 정권의 비밀을 모두 꿰뚫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로, 진실을 좇는 기자나 역사학자들이 꼭 만나야 할 제1의 취재원이다. 한때 기자들은 “20세기 최대의 특종은 이 전 부장이 쥐고 있다”며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근현대사를 공부하는 학자들이 이 전 부장 주변에 몰리는 것은 박정희 정권의 비밀을 담고 있는 ‘이후락 비망록’에 대한 욕심 때문. 이 전 부장과 가족들은 이런 주변의 성화를 피하기 위해 경호원을 별도로 고용하기도 했다. 이 전 부장은 직무수행 중 취득한 비밀은 무덤까지 갖고 가겠다는 의지로 일관했다. 1999년 봄 그는 “사람을 만나면 옛날이야기가 나오고 그러다가 공직생활 중 취득한 비밀을 입에 올릴 수 있다”며 족쇄를 채운 배경을 설명한 바 있다. 물론 사후 상황은 다르다. 이 전 부장 측은 이후락 비망록의 존재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않는다. 최근 이 전 부장 측과 접촉했던 앞서의 인사는 “이 전 부장의 성격이나 스타일로 보아 역사에 기록될 것과 무덤 속으로 가져가야 할 내용을 구별, 대책을 세워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증언은 이 전 부장의 가족들 주변에서도 흘러나온다.

    이 전 부장은 80년 신군부의 등장과 함께 정계활동을 포기한 이후 최근까지 은둔에 가까운 삶을 이어오고 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출마를 저울질하던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측에서 30년 전의 ‘진실’에 대해 조언을 구했을 때도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알고 있더라도 얘기할 수 없다”는 의견을 간접적으로 통보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전 부장도 과거와 관련된 사안에 대하여 때때로 회한에 찬 기억을 되살릴 때가 있다고 한다. 이 전 부장 측과 접촉하는 한 인사에 따르면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정일과 남북정상회담을 할 때 하루 종일 먼 산을 바라보며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70년 초 중앙정보부장시절 그는 유서를 써놓고 북한을 방문, 김일성을 만났다. 이른바 남북회담의 밀사로 활동했던 것. 30여년 전 비밀리에 방문했던 평양을 김 전 대통령이 공개리에 찾자 남다른 감회에 젖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부장은 최종길 교수의 타살 의혹 진상조사위에 당시 중정의 공작과 관련해 자신의 의견을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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