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68

2005.01.11

순진하지 않은 싱글들의 연말연시

  • 입력2005-01-05 16: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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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진하지 않은 싱글들의 연말연시
    영화 ‘록키 호러 픽쳐 쇼’(The Rocky Horror Picture Show, 1975)는 ‘곰 인형이 싫다고 했을 때부터 이미 나쁜 애였던’ 악동들에 대한 이야기를 노래로 들려준다. 그렇게 순진하지 않아 귀엽지 못한 아이였기로는 나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1학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선물은 엄마가 마련하는 거야. 산타클로스가 어디 있담”하며 언니와 동생을 선동했던 것이 들통나 벌을 설 때부터 싹수가 노랬다 한다.

    착한 여자아이로서 지켜야 할 규정을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던 내가 반듯한 어머니에겐 골칫거리일 수밖에 없었다. 건방지다는 죄목으로 자주 매를 맞기는 했지만 반항을 사서 했다기보단 주입되는 가치에 딱히 확신이 가지 않았을 뿐이었다. 부모님과 선생님 말씀대로 행동하고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 맞는 길이 아닐 수 있겠다는 도저한 의심과 혼란 속에서 스스로도 괴로웠던 성장기를 통과했던 것이다.

    징그럽게 말 안 듣는다는 어른들의 역정은 결혼 문제를 두고 정점에 달하게 됐다. 결혼에 대한 강박이 있을 리 없는 20대 초반의 딸년에 대해 부모님은 미리부터 걱정이었다. 신부감으로 조건이 신통찮은데 연애에도 소질 없어 뵌다며 결국 어머니는 대학 졸업을 앞둔 내 머리채를 틀어잡고 맞선을 보게 하기 시작했다.

    나 같은 ‘양아치’가 유명한 레스토랑과 카페를 전전하며 맞선을 십수 차례 봤다면 배꼽을 쥐고 웃을 일이지만 정말이다. 그리고 과연, 내가 친구들을 졸라 ‘어렵게 뚫은’ 소개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안정된 직업과 성장 배경이 바른 청년들을 숱하게 만났다. 가끔은 굳이 맞선이 필요 없을 현란한 매력의 상대를 만나 넋이 나가기도 했다.

    그렇다고 중매 결혼이 나에게 적합한 관계 맺기나 필요한 절차라고 수긍하게 되는 건 아니었다. 나라고 맞선을 앞뒤로 두고 어머니한테 두들겨 맞는 게 지겹지 않았을까. 나의 행복을 보장해줄 만한 개인이나 관계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마당에 어머니의 모진 매를 피해 결혼이라는 호랑이 굴로 뛰어들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강제적인 맞선을 견딜 수 없어 종국엔 집에서 떨어져나오게 되었고 부모님이 걱정하시던 결혼 적령기를 혼자 훌쩍 지나고 있다. 이제는 맞선 시장에서 값을 쳐주지도 않는다는 서른두 살의 겨울. 괜찮은 남자는 죄다 어리거나 예쁜 여자들이 다 쓸어갔다더니 나이가 장벽이 되어 사람 만나는 게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소개를 받기도 어렵고, 소개를 받더라도 상대가 내 나이를 부담스러워해 도망가거나, 나이를 속이며 마음에 드는 남자를 붙들어보기도 하는 비참한 상황이 정말로 펼쳐지고 있다.

    나와 같은 또래의 싱글 여성들은 이렇게 나이와 반비례하는 연애의 가능성에 퍽 당황해하며 살고 있다. 우리는 결혼과 관련된 제도적 가치를 인생에 편입시키기를 망설였던 의심 많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남의 아이 커가는 걸 옆눈으로 구경하게 되면서 징그럽게 집착했던 공부나 일, 자유의 가치를 회의해본다. 연하의 애인에게 차이거나, 나이 어린 여자애가 애인을 채간 사례를 피눈물 흘려가며 앞으로도 반복하게 될 지루한 연애사에 한숨을 쉬기도 한다.

    그러나 그외의 다른 모든 상황이 대체로 만족스러운 만큼 연말 연시 외롭고 고단한 시간들을 감수하게 되는 것이다. 와인의 레벨을 까다롭게 따지고 풍경 좋은 음식점을 예약해 단출한 송년회를 하며, 가정의 미덕을 순진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싱글 여성들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2005년을 기대하고 축원한다. 우리에게 맞는 행복과 사람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만들고 찾아갈 수 있을 거라고. 의심 많은 지난 시간들이 그랬듯, 후회 없이 우리를 충실하게 채워갈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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