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64

2004.12.16

代 이은 수제화 명품의 길 ‘뚜벅뚜벅’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4-12-10 16: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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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代 이은 수제화 명품의 길 ‘뚜벅뚜벅’
    서울 중구 을지로3가 , 마루나 타일을 파는 건축 자재점들 사이에 ‘송림제화’라는 간판이 행인들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빛바랜 초록색 글씨가 부조된 나무에서 세월의 풍상이 묻어난다. 이곳이 탐험가 허영호로 하여금 1800km의 북극을 횡단하게 해준 신발을 만든 곳이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연금 시절 집 마당을 돌 때 밑창이 닳도록 신었다는 신발을 만든 곳이며, 88년 서울올림픽 때 한국 사격선수단의 사격용 신발을 지어주었다는 바로 그 ‘송림제화’다.

    1936년 바로 이 자리에 고 이귀석씨가 ‘송림제화’를 창업했고, 96년 82세로 창업주가 타계하자 지금은 아들 이덕해 씨(53)가 대를 이어 신발을 만들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디자인, 눈을 현혹하는 광고들과 저가의 대량 생산품이 쏟아지는 서울 한복판에서 변함없이 수제화를 고집하는 이씨를 보자 문득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여성용 하이힐도 만들고 광고도 적극적으로 하면 어떠냐고 넌지시 물었다.

    “처음엔 여성용도 했지만, 좁은 신발은 편안함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점차 하지 않게 되었어요. 마케팅이야 돈 많은 기업이나 하는 것이고, 저희는 그저 손님들의 입이 최고 선전이죠. 하긴 지금까지 버틴 게 기적이긴 해요.”

    정말 그렇다. 자신의 책에서 송림제화 ‘티롤화(산악지대용 신발)’야말로 ‘한국의 명품’이라 극찬했던 사진작가 윤광준씨는 직접 KTX에 찾아가 고속철 창간호에 꼭 송림제화를 소개해야 한다고 우겨 직접 글과 사진을 넣었는가 하면, 장애인 음악인 김병식씨는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송림제화 이 사장님이 신발 안 만들면 나 같은 장애인은 신을 신발이 없다”고 호소한다.

    신사화에서 시작한 송림은 5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등산화를 생산했고, 특수 방수가공법을 개발해 산악인들 사이에서는 SL이라는 로고가 ‘명품’으로 인정받은 지 오래다. 90년대 중반 이후로는 장애인들을 위한 신발로 명성을 얻었다. 장애인들을 위한 신발은 발에 꼭 맞으면서도 밖으로는 표시 나지 않게 한 것이 특징이다. 최근 많은 여성들이 앓고 있는 무지외반증 환자들도 송림을 많이 찾는다.



    “94년인가 한 방송에 소개된 뒤 전국에서 장애인을 가족으로 둔 사람들이 몰려들어 다섯 켤레씩 신발을 해가곤 했습니다. 아내가 장애인인 한 남편은 직접 차를 몰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다 우리 가게를 찾았대요. 남편은 드디어 아내가 발에 꼭 맞아 편안한 신발을 신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더군요.”

    아버지와 다른 길을 걷기 위해 경희대 지리학과 졸업 후 일반 회사에 다니기도 했던 이 대표는 선친의 뜻으로 다시 송림으로 돌아와 손님들의 발을 재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제자들이 명동으로, 기업으로 진출해 성공하는 것을 보면서 ‘아버지가 때를 놓쳤다’고 생각했던 이 대표 역시 ‘내 타고난 복은 이거다’라는 깨달음을 얻은 뒤 그 자리에서 수제화를 고집하게 되었다.

    “이게 하나님의 뜻이지 싶어요. 모두 다 기계화되어 똑같은 신발만 만들어내잖아요. 발 모양이 모두 다른데. 젊을 때야 이겨낸다 해도, 나중엔 신발 닿는 것도 고통이 되지요. 발 모양에 맞게 손으로 재단해 만든 신발만이 아프고 뒤틀린 발을 편안하게 할 수 있어요. 오히려 요즘 제가 존재의 이유를 느낍니다.”

    송림에서 신발을 사려면 직접 가야 한다. 발을 재서 별 문제가 없으면 가장 발 모양에 근사한 신발을 바로 살 수도 있지만 발등이 높다든가, 옆이 튀어나왔다든가, 발가락이 휘었다면 발에 맞는 신발을 맞춰준다. 발이 오장육부와 연결된 기관이라는 것을 고려해 개개인의 발바닥 모양과 똑같이 코르크로 바닥을 맞춘 신발도 해준다. 그러니 인터넷 쇼핑 시대에 꽤 불편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명품’이란 만드는 사람과 이를 사용하는 사람 사이의 교감이 만들어내는 것이고, 이것이 지금껏 ‘송림제화’를 지켜온 힘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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