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64

2004.12.16

인도 동북부 7개주 ‘제2 화약고’

아삼, 나갈랜드 등 분리독립 움직임 가시화 … 특별법 개정, 무장세력과 대화 뉴델리 ‘긴장’

  • 델리=이지은 통신원 eunlee333@hotmail.com

    입력2004-12-10 11: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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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아시아의 화약고’로 불리는 카슈미르가 인도-파키스탄 두 나라의 화해 무드로 잠잠해졌나 싶은 요즘, 인도 정부는 또 다른 화약고가 언제 터질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인도의 제2 화약고는 중국, 미얀마와 접경을 이루고 있는 아삼·나갈랜드·미조람·메갈라야·트리푸라·마니푸르·아루나찰 프라데시 등 동북부 7개 주.

    1958년 이래 50년 가까운 세월을 ‘군대 특별권한 위임법’(이하 특별법) 아래서 국민의 기본권조차 누리지 못하고 살아온 동북 지역 사람들은 특별법 폐지와 군대 철수, 언론·집회의 자유 등 기본권 보장을 요구해왔다. 또한 주마다 최소한 수십개씩 있는 무장단체들이 분리 독립이나 부족 자치를 주장하며 무장투쟁을 계속해 왔다.

    이들 지역은 여러 면에서 인도와 매우 다른 독특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인종적으로 대다수의 인도인들이 아리안 계통이지만, 동북 지역민들은 몽골리안 계통에 속한다. 변방에 있다보니 경제적으로도 많이 낙후했다.

    몽골리안 계통 독특한 정체성

    언어가 다른 것은 물론 식생활도 북인도와 달리 쌀을 주식으로 하는데, 한국 음식의 맛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인도 본토에서는 종교적 이유로 금기하는 쇠고기도 이 지역에서는 즐겨 먹는다. 심지어 개고기를 먹는 곳도 있다고 알려졌다.



    몇 년 전 인도 중앙정부가 소의 도살을 금지하는 법령을 인도 전역에 확대 시행하려고 했을 때, 가장 크게 반대했던 곳이 바로 동북부 지역이었다. 쇠고기가 일상식이기 때문에 소 도살을 금지하면 단백질 섭취에 문제가 생긴다는 이유였다.

    문화적으로도 인도 본토와 많은 이질성을 갖고 있다. 동북부 지역에는 부족 중심의 사회체제가 유지되어 있고, 각 부족들의 문화적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다. 대부분의 부족은 강력한 ‘어머니 중심의 모계사회’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들은 어머니 성을 따르며 막내딸이 재산 등의 상속권을 갖는다.

    인도 사회체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카스트 제도는 이 지역에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부족을 중심으로 한 사회제도를 발전시켜왔다. 인도 국민 대다수가 신봉하는 힌두교가 아닌, 각 부족 특유의 전통 신앙을 고수하고 있다. 근대 초기 시절부터 서양 선교사들이 활발하게 활동한 지역이라 인도 본토에 비해 기독교 신자의 비율이 높은 것도 특징이다.

    이 같은 이질성으로 동북 지역민들은 인종, 역사, 언어, 문화 다방면에 걸쳐서 본토 인도인과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이 오랫동안 본토인들에게 억압당하고 있다는 의식을 키워왔다는 사실이다. 본토인들은 문화적 우월감을 바탕으로 동북 지역민을 변방인, 또는 미개인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동북 지역으로 이주해온 본토 출신들조차 이런 우월감을 드러내는 경우가 흔하다. 이는 지역민과 본토 출신 이주민의 서로에 대한 적대감으로 연결되는 악순환을 거듭한다.

    이와 같은 ‘지역민’과 ‘이주민’ 사이의 갈등은, 치안유지를 위해 파견된 군대와의 관계에서 최악의 모습을 보여준다. 지역마다 주둔하고 있는 군대(주둔 기간이 최소 30년에서 50년에 이름)의 절대 다수는 이주민으로 구성되어 있다. 58년 제정된 특별법에 따라 장교들은 법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람에 대해 발포하거나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법질서를 어긴 이가 총에 맞아 죽더라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 엄청난 특권을 갖고 있다. 90년 제정된 테러방지특별법 덕택으로 영장 없이 압수수색할 수도 있고, 무단 가택 침입도 할 수 있다.

    8월 발생한 강간 사건은 동북부 지역 주둔군의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마니푸르에 주둔하며 치안과 질서유지를 맡고 있는 ‘아삼 소총부대’ 대원들이 이 지역 독립투쟁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 활동가를 강제 연행해 강간, 살해한 것이다. 이 사건은 마니푸르 주에서 소수 무장단체와 민간인 합동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는 도화선이 됐다. 분노한 지역민들의 항쟁은 수십명에 달하는 여성들의 나체시위로까지 이어졌다.

    과격해지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중앙정부는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 진상규명에 나섰다. 그러나 용의자들은 법정 출두를 거부하고 있고 군부도 이들을 비호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중앙정부는 주 정부, 독립투쟁 단체들과 협의한 끝에 일부 도심지에서 문제의 특별법을 폐지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마니푸르의 해방을 외치며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결코 간단치 않은 문제 진화에 부심

    마니푸르 사태가 채 수습되기도 전에 이번에는 아삼과 나갈랜드에서 대형 폭탄테러와 무차별 총격이 잇따라 발생했다. 이로 인해 적어도 45명이 죽고, 150명 이상 중상을 입은 것으로 추산된다. 이 사건 역시 이 지역의 분리독립 투쟁과 연결된 것으로, 불법단체로 지목된 무장단체들이 개입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동북부 지역이 인도로 편입된 것은 영국의 식민통치 와중이었다. 그러나 강한 부족적 전통, 인종적·역사적 차이로 인해 본토와의 융합에 어려움이 있고, 분리주의 움직임이 강해지자 영국 식민정부는 법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철권통치를 했다. 독립 인도가 탄생한 뒤에도 이는 계속되었다. 특히 종교분쟁과 인종주의, 분리주의가 정치와 연결되어 유혈 폭력사태가 잦았던 상황에서 인도는 테러 방지라는 명목으로 동북 지역민의 기본권마저 박탈하는 압제 통치를 했다.

    5월 총선 이후 고조되고 있는 동북부 지역의 갈등과 분리독립 움직임에 대해 중앙정부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동북부 문제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내무부 장관을 파견하고, 각 주의 무장세력 대표들과 총리 회동을 마련하는 등 진화에 부심하고 있다. 마니푸르의 경우에서 그랬듯, 일부 지역에서는 특별법에 의한 통치가 철회되기도 했다. 또한 만모한 싱 총리는 특별법 개정 가능성을 밝히는 등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동북부 지역 문제는 결코 간단치 않다. 동북부 지역 부족민들과 본토인들 사이의 갈등은 인종적·문화적 차이에서뿐 아니라, 오랜 세월 쌓인 경제적 불평등에서도 기인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동북부 지역의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경제발전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수많은 부족들이 흩어져 있고 부족 간 알력이 심각하기 때문에, 설령 자치권을 준다 해도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부족 간 교통정리가 선행돼야 한다.

    하지만 인도 정부는 근본적으로 부족들의 독립을 허용할 수 없다는 태도다. 이러한 한계 속에서 정부가 내놓을 해결 방안을, 분리독립을 외치고 있는 무장세력들이 얼마나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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