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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증 발급 할인혜택 달라”

‘백수 100인 인권선언’ … “무능력보다 사회적 현상, 편견 해소 등 공동의 노력”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백수증 발급 할인혜택 달라”

“백수증 발급 할인혜택 달라”

12월4일 열린 백수 100인 인권선언대회에서 ‘백수증’을 들어 보이고 있다. 풍자였지만 결코 즐겁지만은 않은 대회였다.

실업자들을 모아놓고 승리자에겐 취직을 시켜준다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출연자들은 뻘밭을 구르며 낙지 캐기 경기도 하고, 참여 기업 간부들과 뜨겁게 람바다를 추고 점수를 받기도 했다.

모든 관문에서 살아남아 취업이 확정된 한 명은 ‘내일 출근할 곳이 생겼다’며 눈물을 흘렸지만, 떨어진 또 한 명은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백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펑펑 눈물을 쏟았다.

영화 ‘위대한 유산’을 필두로 드라마와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백수들은 약속한 듯 ‘추리닝’을 한 벌로 입고, 씻지 않으며, 기생하기 위해 매우 치사한 인성을 가진 것으로 묘사된다.

이런 프로그램을 보면서 더는 웃을 수 없게 된 건 청년실업이 7%대로 고착된 현실 때문일 것이다. 주변의 젊은이 10명 중 거의 한 명(정부 통계로만 봐도 2004년 6월 현재 청년실업률은 7.8%다)은 ‘백수’인 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숫자적으로 백수는 결코 ‘소수’ 집단이 아니지만, 건강한 젊은이들이 ‘논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사회에서 백수는 ‘소수자’ 집단이다. 그래서 오락프로그램과 드라마에서 백수를 희화화해도 그 흔한 항의 한번 하지 못하며,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해도 젊음으로 이겨내는 수밖에 없다. 탄핵정국 당시 한 의원이 광화문에서 항의시위하는 시민들을 ‘백수’라고 칭한 것은 백수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모욕적인 호칭이라는 함의일 것이다.



이에 드디어 전국의 백수들이 분연히 일어나 ‘백수 100인 인권선언대회’를 열었다. 12월10일 세계 인권선언일을 앞둔 4일 서울 안국동 참여연대 2층 느티나무카페에 모인 백수들은 ‘사회적 편견 해소와 제도 개선을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일 것’을 다짐하며 ‘백수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백수는 개인적 무능력함이 아닌 사회적 현상’ ‘백수는 자신만의 일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소개될 권리가 있다’ ‘백수는 정치적으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등의 조항이 포함된 ‘백수인권선언문’을 발표했다.

높은 관심에 참여 백수들 당황

이들은 실적 위주의 실업자 대책을 중단할 것과 ‘백수증’을 발급하여 정부기관이 운영하는 각종 시설과 교통비 등에서 할인혜택을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날 주최 측은 ‘백수의 사회참여에 대한 공론화에 기여한 공로’와 ‘현재 몸소 백수생활을 과감히 실천하고 있는’ 홍사덕 전 의원을 ‘홍보대사’로 임명했다.

이날 행사는 청년실업자 커뮤니티 전국백수연대(운영자 주덕한, 이하 전백련)와 젊은 시민운동가 모임(NGOlove), 헤딩라인 뉴스로 유명한 미디어몹(편집장 최내현), 시민의 신문 등이 함께 마련한 것.

전백련 주덕한 대표는 “노동단체도 아닌데 이런 행사를 해 매우 낯설겠지만 나서지 않으면 아무 변화가 없겠다는 위기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 미디어몹 최내현 편집장은 “지금은 체제 위기”라면서 “노동시장이 유연해지면 고용이 느는 게 아니라 노동자들의 미래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지한 취지와 사회적 환기에도, 정작 행사에 참석한 ‘백수’들은 각계 인사들의 참여와 언론사의 열띤 취재에 당황스러워하는 빛이 역력했다.

또한 민주노동당 이영순 의원 등 참석 인사들이 청년실업 문제 해법을 놓고 자기 의견을 강조하는 ‘홍보성’ 격려사를 이어가자 참석자들 사이에 긴장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한 참여자는 “다음 카페를 통해 오늘 ‘전백련’ 모임 내에서 이벤트로 ‘인권선언’을 하는 것으로 알고 사람들이나 만나려고 나왔는데, 이처럼 외부 사람들이 오고 방송을 하는 줄 몰랐다”며 당황스러워했다. 또 다른 참여자는 “이런 행사가 청년실업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인터넷에서 비디오테이프 판매업을 하고 있다는 백수 8년차 한 참석자는 “한때 월 50만원어치도 팔아봤다. 개인 사업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며 일할 의지가 있는 백수에게 ‘실질적 지원’이 절실할 뿐 아니라 효과적임을 강조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오늘 인권선언에 아쉽고 미숙한 점이 없지 않지만, 실업자들의 목소리가 공식적으로 제기됐다는 점에 의미를 둔다”면서 “앞으로 한번쯤 백수의 처지에서 백수를 바라봐주기 바란다. 또한 백수라는 수용자 차원에서 실업 정책이 입안되기를 바란다”며 ‘뒤풀이’ 장소로 향했다.



주간동아 2004.12.16 464호 (p46~46)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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