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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액 논술과외’ 수험생 초만원

5주에 100만원 넘어도 빈자리 없어 … 수험생 불안심리 자극·과외 효과도 의문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고액 논술과외’ 수험생 초만원

‘고액 논술과외’ 수험생 초만원

서울 성균관대 수시모집 논술고사장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보고 있다.

어쩌죠, 벌써 다 마감됐는데.”

12월1일 서울의 한 유명 논술학원에 전화를 걸자 상담 교사는 혀부터 찼다. 목소리에서는 수강생 모집이 끝난 게 언제인데 이제야 문의하느냐는 은근한 책망이 묻어났다.

이 학원의 ‘논술 완성반’ 수강료는 5주에 160만원. 강의는 일주일에 세 번, 3시간씩 한다. 겨우 45시간 수업에 웬만한 가정의 한 달 생활비와 맞먹는 고액을 받지만, ‘논술 명문’으로 이름난 이곳에는 학생들이 줄을 서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이 끝난 직후인 11월20일께 이미 예정된 수강 인원을 모두 채웠고, 한 차례 추가모집을 하고도 희망자를 다 받지 못해 대기자를 두고 있을 정도. 빈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리고 싶다고 하자 “현재 이름을 올려둔 사람만 10명이 넘는다. 더 늦기 전에 다른 학원을 알아보는 것이 좋겠다”는 ‘친절한’ 답변이 돌아왔다.

2005학년도 입시를 앞두고 고액 논술학원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번 수능이 상대적으로 쉽게 출제돼 고득점 수험생들 사이에서 변별력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면서 ‘논술 완벽대비’를 내세우는 학원들의 수강료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것이다.

수능 변별력 적어 논술 중요성 부각



일선 학교와 입시 학원들의 가채점 결과에 따르면 이번 수능에서 500점 만점을 받은 학생은 전국적으로 수십명 선. 서울 대원외국어고의 경우 3학년 학생 440여명 가운데 2명이 만점을 받은 것으로 잠정 집계됐고, 서울 명덕외국어고 3학년생 450여명 가운데 24명이 490점을 넘긴 것으로 조사됐다. 논술 강의로 유명한 서울 대치동 C학원 원장은 “내가 아는 만점자만 10명이다. 올해 서울대를 지원하려면 480점, 연·고대 지원자는 470점이 넘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논술학원들은 ‘비슷한 점수대의 경쟁자들 사이에서 앞서려면 논술 실력이 중요하다’며 수강생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 고려대 등 일부 대학들이 수시 1, 2차 전형 논술시험에서 사실상 본고사라는 평을 들을 만큼 난이도 높은 문제를 출제한 것도 수험생들을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고 있는 한 원인이다.

고액 논술학원으로 이름난 C학원에 등록한 한 수험생은 “서울대를 지원하려고 하는데 주위에 알아보니 점수가 대부분 비슷하다. 논술만 잘 써도 수능 점수 5점 이상 차이를 벌릴 수 있다고 해서 학원에 등록했다”고 밝혔다. 이 학원에 다니는 또 다른 수험생은 “대학마다 전형 방식과 출제 경향이 달라졌는데 학교에서는 그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얻을 수가 없다. 돈이 좀 들더라도 입시 전문가와 함께 준비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형 과정이 복잡하고 성적 발표 후 대학 지원까지의 기간이 짧아, 이른바 ‘로또 수능’이라고 불리는 이번 입시를 앞두고 불안한 수험생들이 고액 학원으로 몰려가고 있는 셈이다.

‘고액 논술과외’ 수험생 초만원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서 수험생들이 논술 구술 면접에 대비한 참고서를 고르고 있다.

이처럼 수요가 늘어나자 유명 논술학원의 수강료는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앞서 밝힌 한 유명 학원 160만원을 비롯해 여러 지역에 분원을 둔 C학원 135만원, 서울 강남 P학원은 120만원을 받는다. 이들은 ‘입시전문’을 내세우며 학생들을 서울대반, 연·고대반, 서강대반, 성균관대반 등 특정 대학 이름별로 나누어 ‘맞춤 강의’를 한다고 홍보하고 있다.

고액 논술학원에 대한 비난이 높아지면서 최근 서울시교육청이 고액 수강료 학원 집중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단속 대상에서도 벗어나 있는 상태. 교육청은 한 달 20시간 수업에 15만원 넘게 받는 학원을 단속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고액 논술학원들은 글쓰기 시간까지 포함해 한 번 수업에 6시간 넘게 강의한다고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5주 강의 시간이 100시간에 육박해 70만원 이상의 수강료가 정당화된다. 여기에 교재비까지 포함하면 100만원이 넘는 수강료를 받고도 단속망을 빠져나갈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이에 따라 고액 논술학원은 서울 강남 지역뿐 아니라 서울 양천구 목동과 송파구 잠실, 경기 일산 등지로까지 퍼져나가고 있으며, 50만~70만원대를 받는 학원들은 ‘어디에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반화됐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강사와 학생의 ‘일대일 논술 수업’을 제안하는 광고들도 인터넷 포털사이트 대입 관련 게시판에 꾸준히 올라온다. 명문대 법학과, 국문과, 신문방송학과 출신임을 강조하는 이들은 일주일 세 번 개인교습에 150만원, 혹은 논술 첨삭지도 한 번에 10만원 선을 요구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러한 개인과외가 적발될 경우 1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e메일과 휴대전화를 이용해 학생들과 개인적으로 접촉하는 데다 수시로 연락처를 바꾸기 때문에 단속이 쉽지 않다.

결국 고액 논술과외들이 성행하면서, 이러한 수업을 듣지 못하는 학생들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게 현실이다.

친구 3명과 팀을 꾸려 서로 논술을 돌려 보는 식으로 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서울 J고 3학년 김진철군은 “대학마다 시험 유형이 다른데 학교에서는 그에 대해 전혀 지도해주지 않는다. 친구들과 입시 박람회에 쫓아다니며 정보를 얻고, 학원에서 발간한 책을 보며 지원 대학의 출제 경향을 알아보다 보면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라며 “돈 있는 애들은 학원 가서 대학 붙는 거고, 아니면 할 수 없는 거지 뭐 그게 새삼스러운 일인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고액 논술과외’ 수험생 초만원

최근 호황을 누리고 있는 고액 논술학원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에 대해 이견을 표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고액 논술학원에 다니는 것은 불안함을 떨치기 위한 자기만족을 줄 뿐, 실제 논술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기간에 창의력 배우기는 불가능”

한 논술 관련 카페에 글을 올린 재수생 누리꾼(네티즌) ‘리노이트’ 씨는 “작년에 70만원이나 내고 학원에 다녔는데, 결론은 아무 도움 안 됐다는 것이다. 강사가 들어와서 잠시 논술에 대한 설명을 한 뒤 바로 글쓰기를 시키는데, 그때부터는 집에서 혼자 쓰는 것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올해는 논술 문제집을 사서 혼자 쓸 생각”이라고 밝혔다.

서울 진성고 박길제 교사(국어)도 “짧은 기간에 학원에 다니면서 글쓰기 기술을 배울지는 모르지만 사고의 깊이, 창의성, 논리성 등은 그런 방식으로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대학 논술시험에서 평가하는 것은 매끄러운 글솜씨가 아니라 논리 전개 능력이므로, 학교 수업시간에 충실했다면 개인적으로 연습하고 담당 교사의 지도를 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학의 논술 채점 교수들 역시 고액 논술학원에 길들여진 학생들의 논술 실력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연세대 유석춘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답안을 보면 논제에서는 벗어났는데 매끄럽게 쓴 글들이 있다. 학원에서 논술을 배운 수험생들이 논제와 비슷한 주제로 미리 연습해둔 내용을 그대로 써내는 것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았다”며 “논술에서 중요한 것은 창의력과 논제에 맞게 글쓰는 능력이기 때문에 획일적인 내용에 기술만 뛰어난 답안은 감점 대상”이라고 밝혔다.

중앙교육진흥연구소 강신창 논술팀장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논술에 대해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동안 글을 제대로 써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며 “주어진 시간 안에 정해진 분량의 글을 쓸 수 있는 정도의 능력만 갖추면, 그 다음부터는 사고력과 논리력 싸움이다. 평소에 많은 책을 읽고, 내용에 맞게 논술 형식으로 써보는 연습을 하면 학원 강의에 기대지 않고도 좋은 논술을 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주간동아 2004.12.16 464호 (p44~45)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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