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61

2004.11.25

멕시코 명절 ‘빛 바랜 전통’

망자 영혼 찾아온다는 ‘죽은 자의 날’… 젊은층 성묘 외면 놀러 가기 바빠 ‘휴양지만 북새통’

  • 멕시코시티=한동엽 통신원 boracap@hanmail.net

    입력2004-11-18 18:3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멕시코 명절 ‘빛 바랜 전통’

    멕시코 국립자치대학에서는 해마다 ‘죽은 자의 날’ 제단 전시회가 열린다. 전시회에 출품된 독창적인 작품들.

    11월1일 늦은 저녁 멕시코시티 외곽. 고즈넉하던 공동묘지가 소란스럽게 변했다. 무덤들은 색색의 꽃들로 화려하게 장식됐고, 몰려온 가족들이 빚어내는 소리가 공동묘지를 가득 덮었다. 1년 중 단 하루, 망자의 영혼이 찾아온다는 ‘죽은 자의 날(D a del muerto)’이다. 한국인이 추석 때 성묘 가듯, 멕시코인들도 이날 고인의 무덤을 찾는다. 무덤에 모인 가족들은 이야기꽃을 피우며 흥겹게 노래를 부른다.

    메소아메리카 지역의 가장 성대한 축제

    ‘죽은 자의 날’은 멕시코의 전통 명절로 아스테크 문명 이전부터 시작됐다. 이 명절은 500년에 걸친 스페인 식민지 시절에도 살아남아 오늘날 메소아메리카 지역에서 가장 성대한 축제가 되었다.

    고인의 무덤 앞에, 또는 성묘 가지 못한 가족들은 집안에 고인을 위한 제단을 만든다. 제단은 고인의 명복을 비는 무거운 의미가 아니다. 먼 여행 끝에 가족을 찾아온 죽은 자의 영혼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한 것이다.

    제단은 일정한 형식과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는데, 지역에 따라 조금 차이는 있으나 붉은색, 노란색 꽃과 더불어 물 불 땅 바람을 뜻하는 제물들로 꾸민다. 멕시코 전통 술인 폴케, 메스칼, 테킬라 등이 영혼의 갈증을 달래주는 물의 의미로 놓이고, 빛 희망 믿음을 의미하는 불을 대신해 초가 어둠을 밝힌다. 그리고 바람의 의미로 전통 향을 피우며, 땅을 상징하는 해골 모양의 ‘죽은 자의 빵’이 장식된다. 또한 아스테크 문명의 영향이 좀더 많이 남아 있는 지역에서는 피를 상징하는 붉은색의 설탕과자를 제단에 올린다. 그밖에 고인이 좋아하던 음식이나 사진, 해골 모양의 인형 등이 자유롭게 장식되어 죽은 자의 영혼을 반긴다.



    멕시코 대부분 지역에서는 ‘죽은 아이들의 영혼’이 돌아오는 11월1일과 ‘어른의 영혼’이 찾아오는 2일 이틀에 걸쳐 축제를 벌이지만, 일부 지방은 11월 한 달 내내 축제를 열기도 한다.

    멕시코의 시인이자 철학자 옥타비오 파스(Octavio Paz)는 “멕시코는 죽음과 친하고, 죽음을 농담으로 삼으며, 죽음을 애무하고, 죽음과 같이 자며, 죽음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이 말처럼 멕시코인들은 ‘죽은 자의 날’ 축제를 통해 죽음의 두려움을 해학과 유머로 재해석한다. 축제는 웃음과 춤, 색과 조화된 노래, 그리고 삶이 어우러진다. 이들은 ‘죽음이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면 곧 죽음이 찾아온다’고 믿는 동시에 죽음을 경외하는 것이다.

    멕시코 명절 ‘빛 바랜 전통’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무덤들.

    그러나 고대 멕시코의 삶과 철학이 담긴 ‘죽은 자의 날’ 축제도 현대 사회에 와서는 서구의 거센 상업주의 물결에 밀려 차츰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멕시코 국립자치대학에서 해마다 제단을 만드는 경연대회를 벌이고 공원마다 제단을 화려하게 꾸며놓는 등 고대로부터 내려온 문화를 지키려는 의지가 굳건하지만, 휴양지와 바다로만 향하는 고속도로에는 젊은이들의 인파로 가득한 게 현실. “죽은 자는 죽은 자대로 내버려둬라. 나는 내 삶을 즐기겠다”는 멕시코 한 청년의 말은 오늘날 전통의 빛이 점차 바래져가는 멕시코의 한 단면이 아닌가 싶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