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6

2016.09.28

정치

이슈 선점의 정치학 라이터를 켜라!

차별성 사라진 속에서 고유성으로 살아남아야 대권 잡는다

  • 이종훈 시사평론가·정치학 박사 rheehoon@naver.com

    입력2016-09-26 19:5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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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떡집에 불이 나면 구경꾼이 몰려든다. 화재 진압에 방해가 될 뿐이지만 막무가내다. 라이터를 켠다. 불씨를 댕긴다. 때맞춰 바람이 불어 활활 탄다. 소방관들이 꺼보려 애쓰지만 좀체 꺼지지 않는다. 불씨 하나로 천하통일이다. 모든 대권주자가 꿈꾸는 그림이다. 바야흐로 그들이 라이터를 켜기 시작했다.



    좌향좌 vs 우향우

    최근 가장 열심인 대권주자는 남경필 경기도지사다. 모병제를 새롭게 들고 나왔다. 모병제를 대통령선거(대선) 공약으로 처음 내건 인물은 더불어민주당(더민주) 김두관 의원이다. 2012년 대선 당시 ‘진짜 안보와 신북방경제 시대를 위한 모병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처럼 모병제는 전통적으로 진보진영이 지지하는 이슈였다. 그런데 보수 후보인 남 지사가 모병제 찬성으로 돌아선 것이다.

    남 지사는 김 의원과 함께 개최한 ‘모병제희망모임’의 ‘가고 싶은 군대 만들기’ 토론회에서 모병제에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불씨는 때맞춰 바람이 불어줘야 한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불씨는 불씨로 끝날 뿐이다. 그런데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또 다른 대선주자인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의 측근인 김성태 의원이 모병제는 위헌이라고 반격에 나선 것이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 역시 “부잣집 자식은 군대를 가지 않고 가난한 집 자식만 가게 될 것”이라며 “정의 측면에서 용납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바람에는 순풍도 있지만 역풍도 있다. 대세로 자리 잡지만 않는다면 역풍도 불길을 살리는 데 그만이다. 사실 역풍이 강할수록 불길은 더 거세질 동력을 얻기도 한다.

    문제는 밀어붙일 힘이 있느냐다. 역풍이 불자 남 지사는 더 강하게 밀고 나갔다. 유 전 원내대표에게 공개 토론을 제안하면서 모병제를 반대한다면 대안을 내놓으라고 압박했다. 더욱이 “군대에 안 가겠다는 흙수저에게 군대에 안 갈 수 있는 자유를 줄 수 있다”고 반격하고 나섰다. 모병제는 곧 ‘국방민주화’라는 주장이다.



    보수 후보의 ‘경제민주화’ 열기도 여전히 뜨겁다. 2012년 대선에서 이미 박근혜 대통령이 선점해 재미를 본 이슈다. 그래서 재탕 느낌이 없지 않지만, 소득불평등이 더 심해진 까닭에 놓칠 수 없는 이슈라고 보는 것이다. 다만 포장을 달리한 점이 눈에 띈다.

    김무성 전 대표는 8월 30일 ‘격차 해소와 국민통합의 경제교실’이라는 당내 모임을 발족했다. ‘격차, 중산층 복원과 사회 통합’이라는 제목으로 창립 세미나도 열었다. 그 자리에서 김 전 대표는 “대한민국의 오늘을 설명하고 특징짓는 시대정신은 격차 해소”라고 강조했다. ‘격차 해소’는 경제민주화의 또 다른 표현이다. 남경필 지사는 ‘공유적 시장경제’라는 표현을 들고 나왔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공유와 협력이 경제발전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남 지사는 연합정치, 곧 연정과 공유적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대한민국을 리빌딩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경제민주화를 대체하는 개념으로 ‘경제정의’를 강조한다. 경제민주화도 정의의 한 요소라는 것이다.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소하고 재벌이 지배하는 한국 경제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바꾸는 것이 그가 말하는 경제정의다. 내용 면에서 진보진영의 경제민주화 주장과 큰 차이가 없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최근 ‘공생연구소’를 발족했다. ‘공존과 상생’이 시대정신이라는 것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어떨까. 반 총장은 최근 소수자 이슈를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성소수자 차별금지법 제정과 동성결혼 법제화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반 총장은 9월 20일 유엔 총회 마지막 연설에서 민족, 종교, 성적 지향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의 권리를 자랑스럽게 수호해왔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국내 보수진영이 들으면 화들짝 놀랄, 하지만 진보진영으로서는 환호할 내용이 아닐 수 없다.

    보수 후보의 좌향좌 행보 못지않게 진보 후보의 우향우 행보도 눈길을 끈다.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는 7월과 8월 사이 독도, 백령도를 방문하는 일련의 안보 행보를 선보인 바 있다. 9월에는 강원 홍천-인제-양구-화천-철원 접경지역을 방문하는 또 다른 안보 행보를 선보이기도 했다. 당시 문 전 대표는 6·25전쟁 홍천지구전투 전적비를 비롯해 충혼탑과 강재구 소령 추모공원도 참배했다. 물론 내년 대선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부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대선 행보임을 시사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문 전 대표만큼은 아니지만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 역시 안보 행보를 간헐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특히 리베이트 사건으로 한창 어수선하던 6월 안 전 대표는 경기 평택시 해군 제2함대 사령부를 방문해 김수민 의원 소환 문제에는 침묵한 채 “가장 중요한 것은 튼튼한 안보”라는 발언을 남겨 눈길을 끌기도 했다.

    경제와 관련해 안 전 대표는 ‘공정성장론’을 강조한다. 경제민주화에 보수진영이 강조하는 경제성장 개념을 더한 경제관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함께 성장하고 발전하면 일자리가 창출되고 성장과 분배가 선순환한다는 주장이다. 문 전 대표는 ‘소득주도성장론’을 강조한다. 이 또한 경제민주화에 성장을 더한 경제관이다.

    ‘공정성장론’과 ‘소득주도성장론’의 차이는 무엇일까. 안 전 대표의 최근 지적이 한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9월 1일 열린 ‘안철수의 공정성장론’ 간담회에서 안 전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소득주도성장론은 제대로 작동만 하면 이상적이지만,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임금을 인상해야 고리가 풀린다는 점이 관건, (중략) 그런데 지금은 정부가 기업들에 강제할 수단이 부족하다.” 그래서 공정성장론은 중소기업 주도의 성장을 좀 더 강조하고 있다.

    김부겸 의원 역시 경제민주화에 성장을 더한 ‘동반성장론’을 주장한다. 이미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선점한 경제관이다. 다만 그는 상하가 아닌 동서, 영호남 동반성장을 주장한다. 그래서 최근 대구와 광주를 잇는 ‘달빛투어’, 곧 달구벌과 빛고을을 연계한 민생 행보를 선보인 바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역중심성장론’을 주장한다. 지역 중심적 동반성장론인 셈이다. 그 역시 ‘성장’이라는 단어를 강조한다. 진보 후보들의 경제 우향우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서진 vs 동진

    김무성 전 대표의 호남행이 잦아졌다. 그것도 몸을 한껏 낮춘 모습이다.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서는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생가를 찾았고, 전북 부안 계화간척지에서는 벼 베기에 참여했다. 마을회관에서 러닝셔츠 차림으로 양말을 빠는 모습도 선보였다. 물론 “호남은 경상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산업단지가 적고 농촌에 청년이 사라져 박탈감을 느끼는 것 같다”며 “호남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대선주자는 아니지만 대선주자급 행보를 보이는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의 서진(西進)전략도 매우 공격적이다. 지난 정기국회 본회의 교섭단체대표연설에서 그는 “호남과 새누리당이 얼마든지 연대정치, 연합정치를 펼칠 수 있다고 확신한다”며 호남-새누리당 연대론까지 제기하고 나섰다.

    김무성 전 대표와 이정현 대표가 몸으로 호남에 호소하고 있다면,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마음으로 호소하는 것으로 보인다. 진보성향의 호남 유권자가 호응할 만한 이슈를 던지는 방식이다. 이미 진보적 경제정책으로 마음을 얻은 그다. 그런데 최근에는 공직비리수사처 설치 제안에 대해 “안 받을 이유가 없다”며 적극 찬성함으로써 다시 한 번 호남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한 듯하다. 제2의 교육평준화 주장도 마찬가지다. 그의 호남행도 이제는 시간문제일 뿐이다.

    반기문 총장도 호남 유권자의 마음을 상당히 얻은 상태다. 이정현 대표와 더불어 4월 총선에서 호남에 새누리당 깃발을 꽂은 정운천 의원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호남에서 반 총장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6월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반 총장을 포함해 실시한 첫 대권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반 총장은 호남에서도 1위를 차지해 충격으로 받아들여진 바 있다.

    문재인 전 대표는 최근 호남 지지율 회복보다 영남 지지율 제고, 곧 동진(東進)전략에 더 집중하는 모습이다. 8월 22일 부산지역 언론사 간담회에서 “내년 대선에서는 PK(부산·경남) 유권자의 선택이 중요하다”고 언급한 데 이어, 9월 11일 광주 방문 때는 “요즘 전국 여러 곳을 다니고 있다. 많이 다니고 많이 들으려 한다”며 광주 방문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동진전략으로 지난 총선에서 보여준 더민주의 영남 득표력을 제고하는 데 성공한다면, 호남 표심은 결국 자신을 지지할 수밖에 없으리라 판단한 듯하다.

    안철수 전 대표도 8월 30일 부산을 찾았다. 4월 총선 직후인 4월 19일 부산을 방문해 “부산 시민이 20% 지지를 보내준 것은 선물이 아닌 숙제이기 때문에 책임감을 느끼고 변화로서 보답하겠다”고 언급했던 그다. 4개월 만에 다시 부산을 찾은 안 전 대표는 공식 일정을 마친 뒤 부산고 동문회에 참석했다. 부산 사람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야권의 불모지 대구·경북에서 당선한 김부겸 의원은 영남에 깃발을 꽂은 자로서 이미 동진전략의 상징이 된 인물이다. 앞서 살펴봤듯이 오히려 동쪽에 기반을 두고 서쪽을 공략하는 확장전략을 추진 중이다. 이정현 대표와는 상반된 모양새다. 그러나 호남을 끌어들여 영남에서 세력을 확장하려는 전략이라는 점에서 동진전략인 것은 분명하다.



    선점 vs 균점

    보수성향의 대선주자는 좌향좌하고 진보성향의 대선주자는 우향우함으로써 차별성이 사라지는 추세다. 각자 서진전략과 동진전략을 취하고 있어 차별화되지 않는 현상도 무시할 수 없다. 이와 더불어 선점하지 못할 바에는 균점이라도 하겠다는 전략 역시 확산 추세다. 균점 과정에서 표현, 그러니까 포장만 바꿔 마치 신상품인 것처럼 선보이는 얄팍함마저 비일비재하다. 경제민주화에 성장 개념을 담았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는데, ‘동반성장론’ ‘공정성장론’ ‘소득주도성장론’ ‘차별해소론’ ‘경제정의론’이라는 표현을 각기 들고 나온 것이 대표적 사례다.

    모병제 역시 국민적 관심 이슈로 떠오르면 각종 형용사를 단 다른 버전의 모병제를 새롭게 들고 나올 것이 뻔하다. 이런 식으로 이슈 합종연횡이 횡행하면 유권자는 누가 원조인지 알 길이 없다. 모두가 원조라고 주장하는 음식점 가운데 어디가 원조인지 알 수 없는 것과 유사한 현상이다. 대선주자에게는 이런 상황이 곧 무한경쟁을 의미한다. 차별성이 사라진 속에서도 고유함을 추구해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다 보면 가끔 무리수도 등장한다. 새누리당 원유철 전 원내대표가 핵무장론을 강조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국민 정서에 부합하는 측면이 없지 않지만 그렇다고 상식에 부합하는 주장도 아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전 대표는 9월 6일 한진해운 사태와 관련해 ‘일시적 국유화 또는 임시적 국가 관리까지 검토하는 특단의 대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한진해운 국유화 이슈 역시 핵무장론과 마찬가지로 국민 정서에는 일부 부합할지 몰라도 상식에는 맞지 않는다. 이런 문제점을 고려하면 이슈에 대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지만, 연구에 장기 투자하는 대선주자는 의외로 적다. 대부분 길어야 대선을 1년 정도 앞둔 시점에 연구소나 캠프를 꾸린다. 이렇게 단기간에 밤샘 공부하듯이 정책 이슈를 연구하다 보니 다른 대선주자의 이슈를 베끼거나 포장만 바꿔 내놓는 현상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선점에도 실패하고 균점에도 실패했을 때는 어떤 전략을 쓸까. 재 뿌리기다. 상대 후보의 이슈가 뜰 조짐이 보일 때 무관심한 척 비난하는 전략이다. 앞서, 강한 역풍은 오히려 불길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바로 그런 상황을 막으려는 전략이다. 김무성 전 대표의 민생 탐방에 대해 정우택 전 최고위원이 “일부러 수염을 기르고 다니는 모습, 또 뭐 어디선가 속옷을 빠는 모습도 나오던데, 좀 남우세스럽지 않느냐”고 지적한 것이 한 예다. 깃털을 건드려 몸통을 흔드는, 또는 꼬리를 흔들어 몸통을 넘어뜨리는 전략이다. 김부겸 의원이 문재인 대세론에 대해 “1등을 달린다고 우〜 따라가기만 하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지적한 것도 비슷한 경우다. 누구라도 우〜 따라가기만 하는 건, 역시 좀 남우세스럽다고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순발력 vs 지구력

    라이터를 켜서 불씨를 댕기는 일은 순발력을 필요로 한다. 바람이 불어 활활 타기 시작했을 때 기름을 끼얹는 것도 순발력을 필요로 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불길이 꺼지지 않게 하는 일도 중요하다. 이때 필요한 것이 지구력이다. 새로운 이슈가 지난 이슈를 덮는 일은 흔히 발생한다. 새로운 이슈가 덮치고 지나간 뒤 다시 불씨를 살려내는 일은 대단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물론 국민적 관심이 되살아나는 경우도 있다. 새로운 이슈로 자꾸 덮이지만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슈로 대표적인 것이 개헌이다.

    정의화 전 의장과 이재오 전 의원, 그리고 더민주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불씨가 꺼지려 할 때마다 개헌론을 꺼내 든다. 주로 비주류 대선주자가 제기하고 있긴 하지만, 최근 개헌론은 제3지대론에 힘입어 되살아나는 분위기다. 개헌 역시 초기에는 대선주자 몇몇이 선점했다 균점 상태로 넘어간 대표적 이슈다. 개헌 이슈의 최대 수혜자가 누가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비교적 모두에게 기회가 열린 까닭에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균점 상태에서도 누가 끝까지 변하지 않고 그 이슈를 주장했는지는 중요한 문제다. 국민은 마지막까지 지킨 자를 잊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지구력은 중요한 문제다. 아마도 순발력과 지구력을 모두 겸비한 대선주자가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이다. 물론 두 가지 능력을 모두 갖춘 대선주자가 흔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사람이 누구인지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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