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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 위 의문의 죽음, 그는 말이 없다

철도청 진모씨 청소 도중 쓰러져 사망 … 철도노조 “비리 혐의 부당 대우 진실 규명을”

  •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철길 위 의문의 죽음, 그는 말이 없다

철길 위 의문의 죽음, 그는 말이 없다
10월20일 오전 8시55분경 서울 영등포구 지하철 1호선 영등포역 선로에서 철도청 6급 직원 진모씨(55)가 병점을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S542 열차(기관사 최모씨)에 치여 숨졌다. 진씨는 영등포역 전 직원이 참여하는 선로 청소 작업을 하기 위해 혼자 일찍 나왔다가 변을 당했다. 경찰조사에서 기관사 최씨는 “시속 65km로 열차를 운행하던 중 150m 전방에서 검은 물체를 발견했다”며 “기적을 울렸지만 엎드려 있던 진씨가 꿈쩍도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평소 협심증이 있던 진씨가 열차에 치이기 전 선로에 쓰러져 있다가 열차에 치인 것으로 보고 ‘단순사고사’로 수사를 종결했다.

TV 뉴스에 단신으로 보도된 한 철도청 공무원의 죽음. 그러나 그의 죽음이 잊혀져갈 무렵 철도노조가 진씨의 죽음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철도노조는 그가 죽기 직전 비리에 연루됐다는 점과 그의 죽음으로 비리 관련자에 대한 조사가 없던 일이 돼버렸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철도노조는 “한 사람의 죽음으로 진실이 묻혀서는 안 된다”며 “비리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규명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죽은 진씨는 9월 말 철도청 서울지역사무소 행정감사에서 비리 혐의가 적발돼, 10월14일 자신이 맡고 있던 도급경비직을 박탈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도급경비란 역사에 들어오는 물품의 출납을 관장하는 업무로 돈의 흐름과 직접적 관련이 있다. 진씨 주변인에 따르면, 그는 14일 전보 조치가 내려졌던 진씨가 16일 관리팀장의 업무를 보좌하는 자리로 방출됐다는 것.

먼저 진씨의 자살 의혹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경찰조사가 이미 종결된 상태라서 진씨의 자살 여부를 밝히긴 어려운 상황이다. 사고 당시 사망자의 장기가 완전히 손상돼 부검조차 시행되지 않아 현재 사인 규명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씨의 죽음을 둘러싼 몇 가지 정황은 진씨의 자살 가능성을 점치게 한다.

도급경비직 박탈 관리팀으로 방출



첫째, ‘관리업무 보조자로 전보 발령을 받은 진씨가 왜 업무시간 전에 혼자서 청소를 시작했는가’ 하는 부분이다. 영등포역 전 직원은 매주 월요일 오전 9시부터 한 시간 동안 철도 주변을 청소한다. 각 부서별로 담당 구역을 맡은 서너 명의 직원들이 안전관리자의 안내에 따라 함께 쓰레기를 줍는다는 것. 역측은 열차 진입에 따른 위험 때문에 청소시 항상 안전요원을 배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찰이 확보한 영등포역 직원의 진술에 따르면, 진씨는 당일 평소 청소시간보다 이른 오전 8시20분경부터 혼자서 쓰레기를 주웠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조사에서 동료직원들은 “진씨가 워낙 성실한 사람이라 아침 일찍부터 청소하러 나왔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20년간 철도청에서 일했던 진씨가 안전요원도 없이 혼자 휴지 줍는 일이 위험한 일임을 모를 리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 영등포역 관계자는 “진씨가 아침 청소를 위해 그렇게 빨리 나온 적이 없다”며 진씨가 갑작스레 일찍 철로에 나간 사실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철길 위 의문의 죽음, 그는 말이 없다

사망 전까지 진씨가 근무하던 영등포역사와 10월20일 오전 진씨가 사망한 1호선 영등포역 철로(왼쪽).철도노조는 진씨의 죽음으로 비리의 책임 규명이 흐지부지 되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오른쪽).

둘째, ‘진씨가 정말 선로에 기절해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진씨는 열차에 치이기 직전 선로 위에 엎드려 있었다. 경찰은 진씨가 연초 실시한 건강검진에서 협심증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았고, 20년 전에한 디스크 수술의 후유증으로 다리가 불편하다는 사실을 들어 그가 사고 전 선로에 쓰러진 것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진씨의 아내는 경찰조사에서 “남편은 협심증 재검사에서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고, 평소에 건강상 별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유족의 반대로 부검이 이뤄지지 않아, 진씨가 왜 선로 위에 쓰러졌는지에 대해서는 영영 밝혀지기 어렵게 됐다.

셋째, 참고인 자격의 진술자들 중 어느 누구도 경찰조사에서 진씨가 행정감사 과정에서 비리 혐의가 밝혀져 보직이 변경됐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들은 경찰에게 자살을 의심해볼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는 사실을 전혀 말해주지 않았던 셈이다. 영등포경찰서 해당 사건 담당 경찰은 “비리 혐의에 연루된 사실을 알았더라면 ‘자살 의혹’에 대해서도 충분히 수사했을 것”이라 밝혔다.

철도노조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진씨의 죽음으로 인해 비리 연루자에 대한 책임 추궁이 더 이상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다. 6급 공무원으로 성실하게 일해온 진씨 혼자서 비리에 연루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 철도노조는 “영등포역에서 진씨의 죽음을 순직으로 몰고 가 비리 혐의를 축소·은폐하려 한다”며 비리 책임자를 끝까지 추적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진씨의 비리가 적발된 것은 9월 말이지만, 이후 영등포역에 대한 별다른 검찰수사나 처벌 조치가 없었던 사실도 노조측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영등포역 비리 감사 축소 의혹’에 대해 철도청 이기원 감사팀장은 “비리 관련자에 대해서는 일벌백계로 다스린다”며 문제제기를 일축했다. 이팀장은 “철도청 서울지역사무소가 9월22일부터 27일까지 5일간 실시한 정기 행정감사에서 진씨의 비리를 발견했고, 본청에서 10월 중순 진씨의 여죄를 추궁해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특히 “진씨의 죽음으로 연루자들의 비리까지 덮을 의도는 추호도 없다”며 “일방적으로 직원의 비리 행위를 은폐한다면 3만 철도청 가족에게 실망을 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등포역 비리 은폐 의도 있나

그러나 철도청은 구체적인 비리 내역과 비리 혐의 관련자에 대해서는 극구 밝히기를 거부했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감사가 종결되지 않은 사실이나 사망자에 관련된 이야기일 경우, 당사자의 감정을 해하거나 명예를 훼손할 수 있으므로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검찰에 사건을 이관했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망자의 명예가 훼손되지 않는 방향으로 검찰수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법무부와 협의 중”이라며, “11월7일 이내에는 조사가 끝날 것”이라 밝혔다. 특히 이팀장은 “진씨가 보유한 통장에 빼돌린 수억원의 돈이 있었다는 소문은 결코 사실이 아니며, 직원의 직무 감독을 소홀히 한 상사에게 책임을 묻게 될 것”이라 해명했다. 또 진씨의 비리 행위로 밝혀진 것 중 하나는 “물건을 구입할 때 영수증을 조작해 납부일을 지연한 정도였다”고 확인해주었다.

이에 대해 철도노조는 “철도청의 해명이 석연치 않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진씨의 비리 사실이 서울지역사무소 감사팀에 적발된 것은 9월 말이며, 그때 이미 검찰로 수사를 이관할 수도 있었다는 것. 비리 혐의가 갑자기 포착된 것도 아닌데 한 달 동안 대체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다는 반응이다. 또 감사가 끝나지 않았다면서 철도청이 “진씨와 공모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10월 중순에 여죄를 추궁해 종결했다는 감사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하겠다는 철도청의 주장을 납득하기 어렵다”며 “이것이야말로 영등포역측의 비리 혐의를 축소·은폐하려는 의도가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모든 의혹이 풀리기 위해서는 철도청이 감사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 노조의 강력한 입장이다.

진씨가 혼자 비리 혐의에 몰려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을 비관해 선로에 엎드렸는지, 아니면 철길의 자갈에 미끄러져 기절했던 것인지 그 누구도 알 수가 없다. 기자는 전보 발령 직후 진씨가 겪었던 심리적 갈등에 대해 듣기 위해 그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대답을 듣지 못했다. 아픔을 되새기기 싫다는 뜻이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한 철도 관계자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열차에 치여 허망한 죽음을 맞이한 진씨는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죽음으로 자칫 가려질지 모르는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바로 철도청의 몫입니다.”



주간동아 409호 (p56~57)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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