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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신화 | 잃어버린 신화를 찾아서 ④

바위에 새겨진 ‘천지개벽 신화’

천전리 바위그림에 하늘로 향하는 ‘우주뱀’ 담겨 … 외계충격 상황 직접 묘사한 듯

  • 류이/ 문화평론가·연출가 nonil@korea.com

바위에 새겨진 ‘천지개벽 신화’

바위에 새겨진 ‘천지개벽 신화’

우주뱀에서 진화한 용의 이미지. 상고대인들은 꼬리별이나 별똥별 떠돌이별이 떨어지는 모습을 하늘뱀의 이미지로 형상화했다는 것이 바위그림에 나타난다.

꼬리별(혜성)이 지구를 향해 돌진한다. 꼬리별이 지구의 땅덩어리와 충돌하며 거대한 해일이 일어난다. 해일이 자유의 여신상 허리를 댕강 분지르고, 현대 문명의 상징인 뉴욕의 마천루를 단번에 초토화해 버린다. 영화 ‘딥 임팩트(Deep Impact)’가 흥행에 성공한 것은 거대한 해일이 도시를 삼키는 예고편 덕분이라고들 한다. 그만큼 특수효과가 볼 만했다.

‘딥 임팩트’에 나오는 꼬리별을 파괴하는 장면을 실제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2억4000만 달러의 예산을 투입하여, 2005년 7월4일 꼬리별 템펠 1호를 파괴하는 ‘딥 임팩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 사용될 우주선 딥 임팩트호는 2004년 1월 지구를 떠나 2005년 7월4일 템펠 1호 상공에 도착해 발사체를 투하할 예정이다. 딥 임팩트호는 꼬리별을 파괴한 직후 꼬리별의 480km 상공에서 꼬리별 핵에서 분출되는 물질과 얼음 파편을 관찰한다. 우리 모두 2005년 7월4일을 기대하자. 이 프로젝트는 영화 ‘딥 임팩트’가 단순한 상상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딥 임팩트와 외계 대재난설

딥 임팩트는 과거에도 지구의 역사를 바꿔놓았다. 오늘날 지구의 나이가 약 46억년이라고 한다. 고생대에도 작은 떠돌이별이 지구에 떨어져 충돌을 일으키는 바람에 고생대 특유의 삼엽충이 모두 사라지고 해양생물의 90%, 육상생물의 70%가 멸종했다고 추정한다.

지금으로부터 6500만년 전쯤 중생대 백악기 말에도 지름이 10∼20km 정도 되는 작은 떠돌이별 하나가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떨어져서 대충돌을 일으켰다. 충돌로 일어난 먼지구름이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고 공중에 떠 있어서 6개월 이상 어두운 밤이 계속됐다. 그리고 이로 인해 10년 동안 ‘핵겨울’ 같은 혹독한 추위가 이어져 대부분의 동식물이 치명적인 피해를 당했다. 이른바 ‘공룡시대’가 바로 이렇게 막을 내렸다고 한다.



기원전 3500년에서 기원전 600년 사이인 신석기시대 후기 및 청동기시대에도 딥 임팩트가 있었다. 이로 인해 몇몇 문명이 파괴되어 사라졌고 별들과 함께 지구로 쏟아져 들어온 우주의 화학물질들이 지구 동식물의 DNA에 영향을 주어 많은 생명체가 변화했다. 이 ‘외계충격 시대’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그렇게 멀지 않은 초기 인류의 환경이었다.

우리나라의 선사문화 유적에도 이러한 외계충격에 대한 기록들이 남아 있다. 신석기시대 후기의 번개무늬토기와 울산 대곡리 반구대와 천전리, 그리고 고령 양전 알터마을 등지에 남아 있는 바위그림이 바로 그것이다. 이 바위그림 혹은 그림문자는 말없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가서 보시라.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줄 것이다.

바위에 새겨진 ‘천지개벽 신화’

뇌신. 상고대인들은 하늘에 대한 공포를 느껴 하늘의 신을 우레와 번개의 신으로 생각했다(위). 우주뱀이 우레와 번개가 치는 하늘을 나는 형상을 묘사한 천전리 바위그림의 일부(아래).

울산 반구대 바위그림을 찬찬히 살펴보면 첫눈에 들어오는 것이 고래다. 주로 ‘면그림’인, 바다짐승 들짐승을 그린 300여점의 그림 가운데 가장 많은 40여점의 고래 그림을 보노라면 마치 살아 있는 고래의 향연을 보는 듯하다. 이 고래들은 지금도 동해를 누비고 있다.

단순히 고래 그림만 있는 게 아니다. 10명 혹은 20명씩 탄 두 척의 배가 공동으로 거대한 고래를 사냥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 고래를 잡기 위한 작살, 일종의 부표인 뜨개, 그물 따위가 같이 그려져 있다. 이 바위그림들은 고래잡이가 근대에 들어 시작됐다는 주장을 뒤집는다.

20명 이상이 타고 고래잡이를 할 수 있는 커다란 배를 만들 수 있는 조선기술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 놀랍다. 또한 작살을 발사하는 기구인 뇌기와 뜨개를 사용하여 고래를 잡는 것은 근대의 고래잡이 기술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수준 높은 기술이라고 한다.

울산 반구대 바위그림의 고래 떼는 울산만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잡이 기지이자 울산이 최초의 바다도시였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없이 가르쳐주고 있다. 또한 선사시대의 동북아시아에서 산업이 가장 융성한 지역 가운데 하나였음이 틀림없다는 것도! 하늘을 향하고 있는 고래 떼의 제일 위쪽에는 발기한, 커다란 성기를 달고 있는 남자가 서 있고, 고래 떼 제일 밑에는 무당으로 보이는 사람이 신명이 나 공수를 주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것을 보면 이 그림들이 풍어굿을 하는 모습을 담은 것처럼 보인다. 고래 떼에게는 우두머리가 있다. 고래의 생태에 대해서는 신석기시대의 우리 선조들이 더 잘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고래의 우두머리를 고래의 신으로 모시고 풍어굿을 하지 않았을까?

제일 위에 그려진, 새끼를 품고 가는 커다란 고래는 고래의 신, ‘대왕고래’가 분명하다. 옆에는 새 한 마리가 날고 있다. 어쩐지 신의 전령처럼 보인다. 그 다음으로 큰 고래는 작살을 맞은 고래다. 인간에게 살코기와 뼈와 기름과 수염, 그 모든 것을 남김 없이 준 고래에게 감사드리고 재생을 기원하기 위한 굿에 반드시 등장해야 할 작살 맞은 고래의 대표로서 고래의 또 다른 신격(神格)임이 분명하다. 그 뒤를 따라 온갖 고래들이 다 나오는 한판 풍성한 굿을 벌이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그림이다.

그렇다면 반구대 바위그림의 이야기는 고래잡이의 신화일 터. 오늘날 우리에게 남아 있지 않은 고래잡이의 신화, 바다의 신화를 복원할 수 있는 유라시아 최대의 화려한 바위그림을 우리는 갖고 있다. 그 신화의 근거는 울산 앞바다가 귀신고래의 ‘극경회유해면’이라는 데 있다. 북극 해안을 출발한 서태평양 고래 떼들의 최남단 회유 지점이 울산 앞바다다. 바위그림에 나오는 고래 떼들이 울산 앞바다에서 한 바퀴 휘돌아 귀향길에 오르는 광경을 상상해보라.

바위에 새겨진 ‘천지개벽 신화’

외계충격 시대에 한반도에 등장한 호랑이(위). 뱀이 사람을 쫓아오는 모습을 그린 스웨덴 타눔의 바위그림(아래 왼쪽).1933년 3월24일 새벽 5시 미국 뉴멕시코 파사몬트의 하늘에서 별똥별이 폭발하여 떨어지는 모습을 찍은 사진.

이제 보다 후대의 것으로 보이는 ‘선그림’으로 가보자. 이 선그림에는 외계충격의 흔적이 뚜렷이 드러난다. 우선 호랑이의 등장이다. 선그림으로 오면 몇 마리의 고래를 빼고는 거의가 멧돼지, 호랑이 같은 뭍짐승들이다. 면그림에서는 호랑이가 보이지 않고 뭍짐승으로는 사슴이 많았던 것과 비교된다. 선그림에서 호랑이가 등장하는 것은 외계충격 이후 기온이 낮아지고 기후가 변화하면서 추운 지방에 살던 호랑이가 남쪽 한반도로 내려와 울산만까지를 자신의 지배영역으로 삼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외계충격과 관련하여 주목할 사실은 또 있다. 면그림에서 주류를 이루던 고래들과 고래잡이배들, 그 배를 타고 먼 바다까지 나가서 바다를 생존의 터로 삼았을 우리 선조들은 어디로 갔을까? 외계충격으로 종족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리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반구대 가까이에 있는 천전리 바위그림이 이와 관련해 우리의 시야를 확 틔워준다. 두 겹 세 겹의 둥근 무늬, 마름모 무늬, 물결 무늬, 나선 무늬 같은 기하학적 문양이 빼곡이 그려져 있다. 뱀 모양의 그림도 여럿 있다. 탈(가면)을 쓴 사람의 그림, 표주박같이 생긴 것을 그린 그림, 십자에 가로선을 더한 그림, 다이아몬드 두 개가 서로 붙어 있는 듯한 그림, 몇 개의 빗금을 그어 쭉 뻗은 평행선이 되게 한 그림, 구불구불한 선이 무언가를 표현한 것 같은 그림들…. 이 그림 같기도 하고 그림문자 같기도 한 풍부한 상징들은 무언가 우리에게 이야기를 걸고 있다. 무슨 이야기일까? 필자의 시선을 끄는 그림은 무엇보다 탈(가면)이다. 탈을 쓰고 있는 사람은 물론 무당이다. 신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신의 역할을 맡아 굿을 하고 있을 터. 이미 신격으로서 등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신은 어떤 신일까? 마름모꼴 그림문자는 번개 무늬다. 번개 치는 모양, 번개의 세기와 횟수를 기록한 것 같기도 하다. 우르릉 쾅 하는 우레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요즘은 원 모양을 수없이 겹쳐서 소리의 울림을 표현하지만, 당시에는 마름모꼴을 겹쳐서 표현했을 뿐이다. 여러 개의 동심원은 날아오는 별똥별들이 우박처럼 쏟아지는 모양을 표현한 것인 듯하고 꼬리 달린 동심원은 꼬리별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모양을 닮았다.

바위에 새겨진 ‘천지개벽 신화’

동심원 문양은 꼬리별, 떠돌이별이 떨어지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고, 방패연을 이어놓은 듯한 문양은 해의 신을 상징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특히 눈에 띄는 것 중의 하나가 하늘로 올라가는 뱀 그림이다. 뱀이 왜 하늘로 올라갈까? 뱀을 사실적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다. 스웨덴의 타눔 바위그림과 비교해보면 더욱 분명하다. 타눔의 뱀 그림은 더욱 율동적이고 길지만, 사람을 향해서 땅을 기어오는 모양이다. 하지만 천전리 바위그림의 뱀은 머리가 하늘을 향하고 있다. 세계 여러 곳에서 널리 전해 내려오는 신화 속의 ‘우주뱀(cosmic serpent)’이 분명하다. 오른쪽 사진은 1933년 3월24일 새벽 5시 미국 뉴멕시코 파사몬트의 하늘에서 벌어진 별똥별이 폭발하여 떨어지는 모습을 찍은 것이다. 같이 떨어진 100여개의 별똥별 가운데 하나다. 우리 천전리 바위그림의 뱀이 하늘로 올라가는 그림과 비교해보라. 거의 비슷하지 않은가? 천전리의 바위그림은 여러 종류의 외계충격이 계속되는 가운데 하늘에 펼쳐진 놀랍고도 두려운 광경들을 보고 그린 것이 틀림없다. 그야말로 말 그대로 ‘하늘이 열리고 땅이 갈라지는’ 천지개벽의 신화를 바위 위에다 새긴 것이다. 천문학자, 고고학자, 수목학자,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기원전 3500년부터 기원전 600년 사이에 딥 임팩트와 관련한 온갖 일이 계속 일어났다. 이 시기에 그려지거나 만들어진 세계 여러 나라의 바위그림이나 토기에서 우레와 번개 무늬, 별똥별, 파도 문양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비슷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천전리 바위그림 가운데 또 하나 재미있는 그림이 하단에 있는 신라시대 명문과 함께 그려진 그림들이다. 6세기 초반에 그려진 것으로 외계충격이 사라진 이후의 그림이다. 기마행렬과 바다를 건너는 배, 장대 위의 새와 용이 그려진 그림들이다. 용 그림이 세 개인데, 행렬 반대편인 제일 오른쪽에 네 발 달린 용을 크게 그려놓았다. 바위그림판의 상단에 있는 우주뱀이 길고도 긴 외계충격시대를 거치면서 하단의 용으로 진화한 듯하다. 이 용그림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왜 뱀과 용 사이에 구별이 없는지를 잘 드러내준다. 또한 이 용 그림이 고구려 고분벽화의 용 그림과 그 모양이 같다는 점을 확인해두자.

아메리칸 인디언에게는 뱀은 벼락에 속하는 동물로 번개 그 자체다. 뱀이 비를 내리게 한다. 안데스에서는 대가리가 두 개인 뱀 혹은 흑과 백의 뱀 한 쌍이 가뭄과 홍수를 상징한다. 고대 서아시아에서 우주의 어머니 이슈타르는 뱀으로 그려진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에게도 뱀은 번개다. 아프리카에서는 하늘의 뱀 무지개는 벼락의 정령으로 번개와 연결된다고 믿는다. 오세아니아에서 뱀은 천지의 창조자다. 인도의 비슈누 신은 똬리를 튼 뱀 위에서 잠을 자는데, 이 뱀은 원초의 끝없는 큰 바다로서 창조 이전의 혼돈을 상징한다.

우주뱀은 천지개벽의 주체이자 매개자로서 세계의 모든 신화에 등장한다. 바로 이 신화들이 딥 임팩트의 또 다른 증거이기도 하다.

우주뱀과 용을 하나의 바위그림판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우리 선조들 굿판의 매력이 아닌가 한다. 울산만을 바다의 기지로 삼아 형성된 태화강가의 반구대와 천전리 바위그림판은 신라시대까지 이어져 내려오던 ‘큰 굿판’-오늘날의 강릉단오제처럼 수천년을 내려온 상고대의 큰 굿판임이 틀림없다.

우리 선조들의 굿판 ‘매력 만점’

그렇다면 이 바위그림이야말로 천지개벽 신화의 첫 기록임이 틀림없다. 앞에서 우리는 우주뱀과 용의 이야기로 단서를 하나 찾아냈다. 그러나 그 이야기만이 아니다. 천전리 바위그림만 하더라도 그림문자들이 무리 지어 있는 이야기 마디들이 적어도 6∼7개가 된다. 어찌 울산의 반구대나 천전리뿐이랴. 고령 알터, 포항 칠포리와 인비리, 안동 수곡리, 영주 가흥동, 영천 보성리, 경주 석장동과 상신리, 남원 대곡리, 남해 상주리, 함안 도항리, 여수 오림동 등지의 바위그림도 있다. 그러나 아직도 제대로 해독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그냥 ‘그림’으로 보고 무언가 의미를 찾아내고 나름대로 해석하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 나는 그림이기도 하지만 그림문자로도 봐야 해독할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나는 생각에 잠긴다. 우리 신화의 첫 머리를 장식할 이 바위에 새긴 그림문자를 해독하는 것을 볼 수 있을까? 그래서 다채로운 상고대의 신화를 전해 들으며 눈을 감을 수 있을까?



주간동아 2003.09.04 400호 (p58~60)

류이/ 문화평론가·연출가 nonil@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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