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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가 썩어간다

연안국서 폐수 유입 급증 중금속 검출 등 오염 심각 … 유럽 최고 피서지 명성 ‘흔들’

  • 슈투트가르트= 안윤기 통신원friedensstifter@hanmail.net

지중해가 썩어간다

지중해가 썩어간다

지중해에 면한 스페인 산 세바스티안의 라 콘차 해변.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이면 유럽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길을 떠난다. 비교적 선선한 북유럽이나 알프스 산맥의 만년설을 찾아 무더위를 피해보려는 사람들도 많지만, 뭐니뭐니해도 유럽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피서지는 지중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깔이라 자부하는 쪽빛 푸른 바다와 뜨거운 태양, 넓게 펼쳐진 해변 백사장, 고개만 돌리면 눈에 띄는 늘씬한 남국의 미녀들…. 이 모든 것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해 올해만 해도 벌써 2억명이 훨씬 넘는 피서객들이 지중해를 찾았다.

지중해를 찾는 관광객들은 “지중해에서 보내는 여름휴가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30℃에 달하는 따뜻한 바닷물에 몸을 담그거나, 신비로운 남국의 바다 속을 체험하는 정도라면 카리브해 연안의 여러 섬들도 이에 못지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중해는 바로 에게 문명, 그리스 문명 등이 발생한, 소위 ‘서양 문명의 요람’이 아닌가? 지중해에서는 누구나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이나 방랑의 전설이 된 영웅 오디세우스, 미의 여신 비너스를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또한 반 고흐, 세잔 등 인상파 화가들의 발자취가 서린 곳도 프랑스의 지중해 연안인 프로방스 지방이다. 이처럼 바닷물뿐만 아니라 ‘문명의 바다’ 속에서도 헤엄칠 수 있는 지중해를 찾는 사람들은 해마다 늘어만 간다.

급격히 늘어난 관광객도 오염 한몫

명사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정기적으로 코트다쥐르 해안에 접해 있는 화려한 브르강송 요새를 찾아 며칠씩 머물고 간다. 스페인 국왕 후안 카를로스 1세는 마요르카 섬에 있는 마리벤트 궁전에서 여름을 보낸다. 또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두 딸은 사르데냐 섬에 있는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 대통령의 별장에서, 부시 미국 대통령의 딸은 생 트로페 인근 요트 위에서 피서를 즐겼다. 방송인 사비네 크리스티안센, 윔블던 테니스 우승자 보리스 베커 등 명사들은 지중해 연안에 아예 자신만의 별장을 소유하고 있다. 이외에도 모델 클라우디아 쉬퍼나 하이디 블룸, 영화배우 페넬로페 크루즈 등 지중해를 사랑하는 명사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이토록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지중해가 눈에 띄게 썩어 들어가고 있다. 매년 150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이곳에서 맛보는 ‘스파게티 봉골레’는 산 마르코 광장에서 마시는 에스프레소 커피와 함께 이미 하나의 관광상품으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최근 이 스파게티가 매우 위험한 음식으로 소문이 났다. 봉골레 스파게티의 주재료인 홍합이 대부분 인근의 공업단지 포르토 마게라 앞의 오염된 갯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베네치아 북부의 인공 섬 위에 조성된 이 거대한 항만공업단지에서 나오는 폐수는 하수관을 통해 곧바로 지중해로 쏟아진다. 그 안에 온갖 유독물질들이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또 해수 바닥에는 침전물 찌꺼기, 용광로에서 나온 재, 공장 쓰레기 등이 잔뜩 쌓여 있다. 최근 다국적 환경단체인 그린피스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곳 하수에서 납 구리 아연 등 중금속이 다량 검출됐다. 또 베네치아에서 바다로 흘러가는 운하 중 한 곳의 수은과 염소 함량은 세계 최고치였다고 한다.

물론 이런 곳에서 수영을 하거나 고기를 잡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수백 척의 배들이 홍합을 잡기 위해 베네치아 부근 운하를 드나든다. 항상 따뜻한 공업용수가 흘러나오는 이 지역만큼 홍합이 잘 자라는 곳이 없는데, 하룻밤 사이에 수천 유로를 손쉽게 벌 수 있는 기회를 누가 마다하겠는가?

지중해가 썩어간다

베네치아의 운하(왼쪽)와 산 마르코 광장. 베네치아 인근 공업단지 때문에 베네치아의 해수오염은 심각한 수준이다. 기름으로 오염됐던 프랑스 해안가(왼쪽부터).

이런 문제는 지중해 북부인 베네치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칠리아 섬 인근 해수에서는 법적 제한치를 2만 배나 넘는 수은이 검출됐다. 시칠리아 섬의 기형아 출산율이 이탈리아 전체 평균의 3, 4배를 웃도는 것도 해수오염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또 튀니지의 국영비료공장에서 가베스 만으로 쏟아내는 폐수, 이스라엘 동부의 화학공장에서 바다로 흘려보내는 유독물질도 심각한 수준이다. 얼마 전에는 지중해로 흘러 들어가는 기손 강에서 잠수 연습을 하던 이스라엘 해병대 중 최소 70명이 암에 걸렸으며, 그중 30명은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이 모든 오염은 최근 30~40년 사이에 발생했다. 원래 지중해 인근은 수백년 동안 별다른 산업시설이 없이 가난 속에서 허덕여온 지역이다. 남유럽 국가들은 세계 각국에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으로 연명해왔다. 그런데 지난 1960년대부터 이 지역에서 상공업이 융성하기 시작했다. 특히 바다를 낀 해안지역에 많은 공장들이 들어섰다. 일자리가 늘어난 만큼 지중해 인근에 새로 정착한 인구도 늘어났다. 60년에 2억5000만명이던 이 지역 전체 인구는 오늘날 4억5000만명에 달한다. 자연히 공업용수와 생활폐수의 양도 늘어났다.

자정 능력 의문 … 대책 마련 고심

같은 기간 동안 1억3000만명에서 2억2000만명으로 늘어난 관광객의 수도 지중해가 오염되는 데 한몫하고 있다. 이들 관광객의 물 소비량은 연안 거주인들의 물 소비량의 평균 2배에 이른다. 게다가 수영장과 골프장이 갖추어져 있는 고급 위락시설에서는 이보다 2배 더 많은 물이 소비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관광객이 늘어남에 따라 매년 새로운 리조트 단지들이 지중해 해안을 따라 들어서는 반면, 갯벌과 해안의 삼림은 이에 반비례하여 급감하고 있다.

결국 지난 연말 유엔이 주재한 환경회의에서 전문가들은 지중해의 상태를 ‘심각한 위기상황’으로 진단했다. 연안 지역의 무분별한 도시화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관광인파로 인한 해수오염이 이미 지중해의 자정 능력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사실 지중해는 수심이 깊고 거대한 대서양과 지브롤터 해협을 통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인근 바다들에 비해 자정 능력이 뛰어나다. 해수 상층부에는 대서양의 신선한 물이 끊임없이 공급되고 심층부에서는 지중해의 염도 높은 물이 더 넓은 대양으로 흘러가 희석된다. 이런 과정 속에서 더러운 오염물질들은 자연스럽게 분해되어 사라지거나 미미한 수준을 유지한다. 그러나 이 같은 자정 능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지중해는 더럽혀지고 말았다. 세계야생동물기금(WWF)에 따르면 폐수의 80% 정도가 제대로 처리되지 못한 채 곧바로 지중해로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서양 문명의 요람 지중해는 다시 맑은 바다로 살아날 수 있을까? 현 추세대로라면 그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지금까지 지중해 연안 국가들은 공장이나 국가 기간산업 관련 산업체의 폐수 방출에 대해 관대한 태도를 취해왔다. 뒤늦게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연안 국가들은 관광, 여행 등 3차 산업을 육성해 공해 많은 1, 2차 산업을 대체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정책이 과연 적절한 처방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분분하다. 죽은 청계천을 30년 만에 다시 살려내고 있는 한국으로부터 유럽국가들이 한 수 배워야 하는 것 아닐까.



주간동아 2003.09.04 400호 (p56~57)

슈투트가르트= 안윤기 통신원friedensstift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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