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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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호 ‘검은 로비’ 최후 목표는 누굴까

大選~청남대 개방까지 권력 해바라기 행보 … 양 전 실장 금품수수 의혹 또다른 폭발력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3-08-27 14: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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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호 ‘검은 로비’ 최후 목표는 누굴까

    이원호씨와 양길승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6월28일 청주에 내려와 2차로 술을 마신 장소로 알려진 청주 시외버스터미널 부근 키스 나이트클럽 전경.

    광주 창무지구 치평동 무각사(無覺寺). 주지 광민 스님은 요즘 서울 ‘기자’들의 전화 때문에 이만저만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건 기자들의 질문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양길승 전 실장은 잘 지내느냐.”

    권력과 음모, 술과 밤 문화에 얽혀 낙마한 양 전 대통령 제1부속실장의 행방과 행적을 묻는 질문에 속세와 연을 끊은 스님은 곤혹스럽기만 하다. 기자들이 광민 스님에게 양 전 실장의 행방을 묻는 데는 그만한 연유가 있다. 양 전 실장은 청와대를 나오면서 “모든 것을 잊고 절에 들어가 쉬고 싶다”고 말했다. 눈치 빠른 기자들은 그때부터 무각사와 광민 스님을 주시했다. 광민 스님은 지난해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과 대선 때 양 전 실장과 함께 광주 ‘노사모’ 활동에 앞장선 인물. 대선 이후 양 전 실장의 소개로 당선자 시절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다. 음모와 파워게임에 휘말려 피신한 양 전 실장을 보듬을 수 있는 사람으로 광민 스님은 안성맞춤이다.

    8월22일, ‘주간동아’ 취재진도 광민 스님에게 전화를 했다. “양 전 실장은 잘 있느냐”는 질문에 광민 스님은 “허허…” 하는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양 전 실장의 핵심 측근으로부터 “양 전 실장이 무각사에 머물며 속을 다스리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터라 다소 강하게 나가자 “청와대로 간 이후 얼굴을 본 적이 없다”며 속세를 떠난 자신의 처지를 감안해달라던 광민 스님의 말도 뉘앙스가 조금씩 달라졌다.

    유사시 로비 대상 우군 확보 총력



    “양 전 실장이 어떻게 될지 나도 궁금해. 그래서 일전에 내가 서갑원(청와대 정무1비서관)이한테 전화했어. 양 전 실장을 어떻게 할 거냐고….”

    양 전 실장에 대한 청와대의 시각은 무엇이었을까. 광민 스님은 서비서관의 반응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대신 청와대에 전달한 자신의 고언을 지나가는 투로 표현했다. “무책이 상책이야. 그렇게 일렀어. 그렇지만 글쎄….”

    종적을 감춘 양 전 실장이 ‘108배’의 분위기 속에 자기반성을 하고 있던 그 시각, 청주지검 앞마당에서는 양 전 실장으로부터 발화한 대형폭탄이 연쇄 폭발음을 일으켰다. 김도훈 전 청주지검 검사가 ‘몰카’의 핵심 배후로 밝혀졌고, 검찰 윗선의 ‘외압설’이 꼬리를 물었다. 본인은 부인하지만 김 전 검사는 독직 의혹까지 받고 있다. 키스나이트클럽 업주 이원호씨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새로운 의혹에 발목이 잡힌 양 전 실장도 8월23일, 화약냄새가 자욱한 청주지검으로 재소환됐다. 현직 검사의 몰카 촬영, 부장검사와 평검사의 파워게임 및 외압설, 그리고 양 전 실장의 금품수수 의혹을 관통하는 핵심 화두는 이른바 이원호씨의 ‘검은 로비’다. 모든 의혹은 여기서 출발한다.

    이씨는 돈이 많다. 이씨는 이 돈으로 토호세력이라는 ‘부정’과 지역유지라는 ‘긍정’의 이미지를 동시에 구축했다. 이씨는 누구보다 돈의 힘을 믿는다. 술자리에서 이씨는 “돈 앞에 굴복하지 않는 권력이 없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그는 돈을 매개로 도저히 그가 어울릴 수 없는 사람들과 자주 어울렸다. ‘물’ 장사는 특성상 합법과 불법의 수위를 교묘히 넘나들 수밖에 없다. 이씨도 그랬다. ‘교도소 담장 위’를 걸어가는 위태로운 형국에 균형추 역할을 한 게 돈이다. 돈으로 관과 정치권 로비에 나섰고, 로비를 받은 사람들은 그가 위험에 처했을 때 구명에 나섰다. 민정당이 기세를 떨치던 82년, 이씨는 5공 실세 김윤환 전 의원을 자신의 호텔 개업식에 불러 세를 과시했다. 97년 12월18일 대선 당시 한나라당 청주 홍덕지구 개표 참관인으로 활동하던 이씨가 정권을 잡은 새정치국민회의로 자리를 옮기는 데에는 2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세에 따라 정치적 유랑을 감행했던 이씨의 계산으로는 청주지검이라는 병풍은 자신을 지키기에 부족했다. 정치권, 나아가 청와대도 이씨에게는 유사시 우군으로 활용할 로비 대상이었다. 이런 계산에 따라 이씨가 설정한 최종 로비 대상은 ‘노무현 대통령’이었음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씨는 그만큼 공을 들였고 또 그 길을 하나씩 뚫어나갔다.

    4월17일, 청남대 개방 행사장. 양복을 입은 이원호씨가 행사장 이곳저곳을 오가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노대통령의 부산상고 동기(53회)인 정화삼씨(모 스포츠용품 회사 전무)와 수시로 대화하는 모습이 여러 사람에게 목격됐다. 청주 향응의 주인공 양 전 실장과의 대화 모습도 보였다고 한 참석자는 기억한다. 당시 청와대는 지역주민 500여명을 참석시키는 행사를 계획했다.

    이원호 ‘검은 로비’ 최후 목표는 누굴까

    노무현 대통령(왼쪽)과 그의 고등학교 동창인 정화삼씨(모 스포츠용품 회사 전무)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씨의 청남대 행사 참석은 양 전 실장 청주 술자리 사건의 성격을 규정짓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지금까지 검찰은 청남대 행사에 참석한 양 전 실장이 청주로 가 술자리를 가진 것으로 발표했다. 청와대도 마찬가지. 청와대 문재인 민정수석비서관은 8월7일 양 전 실장과 이씨의 4월17일 1차 접촉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양 전 실장이 4월 청남대 반환행사 참석차 청주에 내려갔을 때 오원배씨와 함께 K나이트클럽에 가서 술을 마시면서 이씨와 가볍게 인사를 나눈 사실이 있다”고 말했지만 이씨가 청남대 행사에 참석한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이씨의 동선을 지켜본 사람들은 “이씨가 양 전 실장을 청주로 데려온 것”이라고 말한다.

    이씨의 청남대 행사와 관련, 관심을 끄는 인물은 정화삼씨다. 그는 6월28일 술자리 파문 당시 참석자들이 모두 존재를 부인했던 특별한 인물이다. 상위권을 유지하던 성적이 집안사정 등으로 반에서 29등까지 곤두박질칠 정도로 힘들었던 노대통령의 고교 2학년 시절을 함께한 ‘진짜’ 친구로 알려졌다. 청남대 개방도 그가 노대통령에게 건의해 추진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씨는 청남대 개방 행사 때 지난해 민주당 경선과 대선 때 정작 고생한 사람들이 초청대상에서 제외되자 곧바로 최도술 전 대통령총무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 “200여명의 노무현 지지자들을 선발, 참석할 테니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500여석 규모로 준비된 행사에 200여명을 추가하기는 극히 어렵다. 그러나 최 전 비서관은 정씨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았다. 정씨는 한 가지를 더 요청했다. “청와대 문양이 새겨진 기념품을 준비해달라”는 것이었다. 최 전 비서관은 “10월부터 청와대 문양이 달라져 아직 자체적으로 준비한 기념품이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이에 정씨는 “그렇다면 내가 기념품을 준비하겠다”고 말했고 최 전 비서관도 “문제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며 정씨의 제의를 수용했다. 정씨는 5대의 관광버스에 200여명의 노대통령 지지자와 200여개의 커피잔 세트를 싣고 청남대로 향했다. 양 전 실장 향응 사건이 터진 후 이 커피잔과 관광버스에 대해 의혹이 제기된다. “관광버스와 커피잔을 준비한 사람이 이원호씨”라는 주장이 터져 나온 것. 당시 청남대 행사에 참석했던 청주지역 한 인사는 “이씨가 정씨를 따라다니더라”고 말했다. 과연 이날 이씨는 정씨가 동원한 노대통령 지지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했을까.

    8월23일, 정씨는 전화통화에서 이를 부인했다. 정씨는 관광버스와 커피잔을 이원호씨가 준비했느냐”고 묻자 “내가 준비했다”며 ‘이씨 역할설’을 일축했다. 정씨는 자신의 초청으로이씨가 청남대 행사에 참석했다는 설도 부인했다. 그의 말이다.

    “당시 청주지역 참석자들 중에는 오원배씨(민주당 충북도 부지부장)와 내가 초청한 사람이 있다. 이원호씨는 오씨 초청자 명단에 포함된 것으로 알고 있다.”

    검찰, 트렁크에 거액 현금 보관 추궁

    청남대 행사를 다녀온 이씨는 측근들에게 “노대통령을 만나고 왔다”고 자랑했다. 이씨는 TV에서 청남대 기사가 나오자 “내 모습이 나올 텐데…”라며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대통령과의 친분을 은연중 과시하기도 했다고 한다.

    “노대통령을 만나고 왔다”는 이씨의 말은 사실 주변사람들에게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지난해 12월10일, 대선 당시 노후보가 리호호텔에 1박한 후 이씨는 “(노후보를) 내가 숙소로 안내했다”고 자랑해왔다. 당시 그가 리호호텔에서 노후보를 안내할 때 바로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 정씨다.

    이원호 ‘검은 로비’ 최후 목표는 누굴까

    2월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거행된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왼쪽).4월18일 충북 청원군 문의면 청남대에서 열린 청남대 이양식 장면. 이원호씨는 두 행사에 모두 참석, 참여정부 출범의 일등공신임을 과시했다.

    “호텔 사장 자격으로 잠깐 인사를 나눈 것은 사실이지만 숙소(501호 스위트룸)까지 따라갔다는 말은 금시초문이다. 당시 피곤했던 노후보는 1층 커피숍에서 참모회의를 하고 난 뒤 경호팀의 안내를 받아 곧바로 숙소로 갔다.”

    수십명이 함께한 자리에서 만난 것을 가지고 이씨가 과장해 말하고 다녔다는 얘기다. 이씨는 2월25일 대통령 취임식에도 참석했다. 이 역시 그가 떠들어 주변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알게 된 사실이다. 취임식 역시 정씨와 관련이 있다는 게 지역 정가의 지적이다. 그러나 정씨는 “당시 초청은 대선 때 공을 세운 사람 위주로 당(오원배 부지부장)에서 리스트를 작성했다”고 해명했다. 이씨 주변 한 인사는 “이씨는 지난 대선 때 노무현 후보와 만나 인사를 나눈 일, 대통령 취임식 참석, 청남대 초청 등을 자랑스레 입에 올렸다”고 전했다. 이처럼 이씨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노대통령 주변을 맴돌았다. 또 노대통령과 거리를 좁히려는 그의 의도는 노대통령의 지인들의 도움으로 100% 성공했다. 노대통령에게 접근하려는 그의 의도는 지난해 12월25일 연세대 동문회관에서 거행된 노대통령의 아들 건호씨 결혼식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당시 결혼식에는 양가에서 각 400장씩 발송한 청첩장을 받은 친지, 친구와 가족 등만이 참석할 수 있도록 제한했지만 이씨는 이 벽을 뚫고 결혼식에 참석했다. 이날 결혼식을 다녀온 이씨는 주변사람들에게 “정대철, 김원기 의원, 문재인 수석 등이 참석했다”며 현장을 생생하게 중계하며 자신의 위상을 과시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도축업 등을 통해 돈을 많이 벌었다. 이씨 지인들은 이씨가 술자리에서 “우리 집에 골동품(도자기)이 많다”며 자랑하는 것을 듣곤 했다. 이씨를 잘 아는 청주지역 한 인사는 “이씨가 자신이 소유한 골동품 총액을 37억원 정도라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이씨 주변에서는 이씨가 권력 핵심부 인사들의 경조사에 소장하던 골동품을 들고 가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지난해 연말 여권 핵심부 자제 결혼식에도 예의 ‘도자기’를 들고 갔다는 소문이 뒤따랐다. 이에 대해 당사자들은 8월25일 “결혼식 당시 축의금과 선물을 일절 받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결혼식장에서 이씨로부터 도자기를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씨가 양 전 실장에게 로비자금을 건넸다는 의혹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이씨가 거액의 현금을 트렁크에 싣고 다녔다는 첩보를 입수, 이씨를 추궁하고 있다. 만약 양 전 실장이 이 돈을 수수했다면 청주지검을 휩쓴 화염은 청와대 담장을 타고 넘을 가능성이 높다.

    양 전 실장은 “모든 것을 잊고 절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의 친구, 정화삼씨도 전화통화에서 “친구고 뭐고, 절에 가 모든 것을 잊고 싶다”고 말했다. 반면 ‘무책이 상책’이라고 세상을 질타한 광민 스님은 “속세 일을 모두 잊고 싶다”고 말했다. 청주지검을 강타한 음모와 파워게임, 외압을 푸는 열쇠는 과연 부처님 손에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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