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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수가 포스코로 간 까닭은…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유한수가 포스코로 간 까닭은…

유한수가 포스코로 간 까닭은…

유한수 포스코건설 상임고문.

지난 7월20일, 포스코건설에 새 상임고문이 부임했다. ‘부사장급’임에도 신문 인사(人事)란은 물론 사내에서조차 별다른 ‘홍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렇듯 조용히 새 일터를 찾은 이는 유한수(55) 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전무. 한때 ‘재계의 입’으로 명성을 날렸고, 전경련 퇴임 후에도 직장을 옮길 때마다 이런저런 화제를 낳으며 경제면 한 귀퉁이를 장식하던 그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행보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의 ‘포스코 입성’이 세간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그와 포스코 간의 ‘아주 특별한 인연’ 때문이다.

1994~98년, 유고문은 포스코경영연구소장으로 일했다. 그를 영입해 측근으로 삼은 이는 김만제 한나라당 의원(당시 포스코 회장). 그러나 1998년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자 김의원은 유상부 전 포스코 회장에게 자리를 물려줄 수밖에 없었다. 박태준 전 국무총리(TJ)가 이른바 DJT 연합의 한 축으로 권부의 핵심에 화려하게 복귀한 것이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 ‘김만제 사람’으로 분류된 유고문 또한 연구소장에서 선임연구위원으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런 그에게 손병두 전경련 고문(당시 부회장)이 ‘러브콜’을 보냈다. 같은 해 9월 전경련 기획홍보담당 전무가 된 유고문은 사무국업무총괄담당 전무, 자유기업원 원장대행 등을 거치며 재계의 대표 논객으로 맹활약했다.

그러나 DJ 정권의 재벌정책에 대한 유고문의 전방위적 공격은 정부와 전경련 양쪽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됐다. “입 좀 조심하라”는 압력을 수차례 받은 끝에, 2000년 8월 유고문은 결국 전경련을 떠났다. 이후 3년간 CBF투자자문 회장, 한국상호저축은행 회장, 벤처기업 CEO 등을 거치며 ‘다사다난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이런 그가 이구택 회장 취임 후 TJ 친정 체제가 더욱 굳어진 포스코에 경영진으로 복귀한 것이다.



이에 대해 유고문 자신은 “대학(서울대 공대) 선배이기도 한 이구택 회장이 포스코건설의 국제업무 강화에 기여해달라는 요청을 해와 입사했다. 경영연구소장 자리도 제안했으나 전공(건축과)을 살리고 새 일도 배우고 싶어 이쪽을 택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게 정말 다일까.

이번 인사에 대한 호사가들의 첫번째 해석은 지난해 5월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TJ-김만제 의원 간 화해의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유고문도 “TJ의 영향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의원측은 “입사 소식 자체를 처음 듣는다. TJ 쪽에서 거부감이야 없겠지만 우리가 힘쓴 부분은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는 유고문이 새 정부와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 아니냐는 설이다. 사실 유고문은 전경련에 재직중이던 2000년 6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정책 자문에 응한 것이 밖에 알려져 상당한 곤란을 겪었다. 김의원측도 “유고문은 대선 기간 내내 우리 진영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자 발길을 뚝 끊어버렸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 쪽에서는 유고문이 고향(경남 진주) 지인들을 통해 새 정부 인사들과 연을 쌓고 있다는 소문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번 상임고문 취임 역시 그와 무관치 않으리라는 시각이다.

그러나 유고문의 한 지인은 “구직자가 새 직장을 찾은 것일 뿐”이라며 “음모론적 시각으로 볼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일축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변화를 좋아하는 유고문이 새 직장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릴 수 있겠냐는 점”이라는 것이다. 유고문은 왜 포스코로 갔는가. 두고 지켜볼 일이다.



주간동아 2003.09.04 400호 (p10~11)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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