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운데 특히 세간의 이목을 모은 회사는 메이디다. 메이디는 6월 글로벌 4대 로봇회사 가운데 하나인 독일 쿠카(KUKA)와 투자협의를 했다고 공개했다. 가전 제조보다 기술적으로 한 차원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 로봇 분야 진출을 통해 신성장동력을 찾겠다는 계산이다. 중국에서 로봇산업은 지난해 5월 정부가 ‘중국제조 2025’ 규획(規劃)을 발표하면서 로봇산업을 10대 핵심 산업 분야로 지목한 것 등에 힘입어 뜨거운 관심을 끌고 있다. 메이디가 로봇산업에 진출한 또 다른 목적은 가전공장 생산라인을 개조해 제조비용을 절감하고 시장 변화에 대한 반응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이미 자회사 샤오톈어(小天) 세탁기 공장에 이를 적용해 상당한 효과를 거뒀다.
로봇 제작, 신에너지업계 진출


또 하나의 중국 대표 가전업체인 하이얼은 최근 인터넷 플랫폼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하이얼은 2014년 기존 폐쇄적 조직구조를 깨고 프로젝트 중심으로 인력을 재배치했다. 연구개발 인력, 일반 직원, 심지어 물류배송 인력까지 모두 ‘샤오웨이(小微)’라 부르는 소창업자로 나서게 했다. 더불어 샤오웨이를 지원하는 투자·금융 플랫폼도 설립했다. 현재 이 플랫폼에는 1개의 모(母)투자기금과 7개의 자(子)투자기금이 세워져 샤오웨이가 제시한 창업 아이디어의 사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특정 샤오웨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하이얼이 해당 샤오웨이를 인수하거나 지분을 투자할 수 있고, 샤오웨이가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도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하이얼 플랫폼에는 연매출 1억 위안(약 170억 원) 이상 샤오웨이 기업이 100여 개 있다. 하이얼의 최종 목표는 이 플랫폼을 자사의 본업인 백색가전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것. 하이얼은 자사 가전제품을 더는 ‘전기기기’가 아닌 ‘네트워크 기기’라고 부르는데, 인터넷을 통해 스마트하게 구동되는 기기라는 의미에서다. 이 아이디어의 핵심은 바로 샤오웨이로 하여금 소비자와 소통하며 그들이 제품 설계와 제조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하이얼의 혁신은 기업의 플랫폼화, 직원의 창업자화, 고객(제품)의 개성화를 실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중국 3대 가전기업의 공통점은 각 기업이 추진하는 로봇, 신에너지, 인터넷 창업 등이 중국 정부의 정책 방향에 부합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보조금 수령으로 신규 사업 진출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반면 중국에 진출한 외국 가전기업들의 레드오션 돌파 전략은 좀 다르다. 1990년대 초 중국에 진출한 뒤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던 독일 가전기업 보쉬지멘스는 프리미엄 전략을 세운 뒤 중국시장에서 입지를 굳혔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독일에서 생산 설비를 수입하고, 품질기준을 자사의 글로벌 기준에 맞췄으며, 최신 제품을 유럽과 중국에서 동시 출시했다. 또 2000년대 후반 금융위기로 외국 가전기업은 물론 로컬기업조차 중국을 떠나거나 투자를 줄이는 상황에서 9000만 유로(약 1126억 원)를 들여 안후이(安徽)성 추저우(州)에 냉장고 생산라인을 증설하는 등 생산능력도 확대했다. 이러한 보쉬지멘스의 노력은 2013년 이후 중국 내수시장의 소비 고도화 추세가 두드러지면서 드디어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보쉬지멘스의 지난해 중국시장 매출은 전년보다 5.2% 성장했다.
프리미엄 전략으로 틈새시장 확보

중국시장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외국 기업 가운데 눈에 띄는 또 다른 회사는 네덜란드 필립스다. 필립스의 TV 판매량은 2014년 80만 대에서 지난해 180만 대로 껑충 뛰었다. 이색적인 건 현재 필립스가 네덜란드 모회사의 간판만 내걸고 있는 중국 기업이라는 사실이다. 중국 소비자는 잘 모르지만 필립스는 2010년 중국 업체 관제(冠捷·AOC)와 함께 출자해 ‘TP Vision’이라는 회사를 세우고, 자사의 TV 브랜드 사용권을 AOC 측에 넘겼다. 이후 3년간 TV 판매량이 계속 떨어지자 자사의 TP Vision 지분도 전량 AOC에 팔았다. 다만 해당 회사가 필립스라는 브랜드를 계속 사용할 수는 있게 해줬다. 이처럼 AOC가 전권을 갖게 되자 필립스 TV는 오히려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필립스가 네덜란드 브랜드라는 점을 강조하되 중국 업체 특유의 원가 경쟁력으로 가격은 낮춰 소비자에게 ‘귀하지만 비싸지는 않다’는 이미지를 심은 덕분이다. 결과적으로 필립스 본사는 지금 AOC로부터 받는 브랜드 사용료로 중국에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중국 가전시장은 분명 레드오션이다. 그러나 위의 기업들처럼 오히려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치열한 경쟁은 중국 로컬기업들에게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을 수밖에 없는 계기로, 글로벌 기업에게는 각자의 역량에 맞춰 전략적 변화를 시도하는 계기로 작동하고 있다.
주간동아 1051호 (p4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