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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훈의 섬과 사람들 | 옹진 승봉도

바다… 갯바위… 태초의 풍경에 ‘눈멀미’

  • < 양영훈/ 여행칼럼니스트 > travelmaker.co.kr

바다… 갯바위… 태초의 풍경에 ‘눈멀미’

바다… 갯바위… 태초의 풍경에 ‘눈멀미’
승봉도(昇鳳島)는 서해 경기만의 작은 섬이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쾌속선을 타면 약 1시간 30분 만에 닿을 수 있고, 서울로 치면 춘천만큼이나 가깝다. 그래서 섬 특유의 정취를 느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도시에서 멀지 않으니 사람의 발길이 잦을 테고, 그러다 보면 자연히 인심도 풍광도 온전치 못하리라는 결론에 이르른 것이었다. 하지만 곧 그건 기우(杞憂)와 편견에 지나지 않음을 깨달았다.

승봉도는 의외로 순수하고 깨끗하다. 자연의 피조물도 애초 그대로의 모습이고, 주민의 마음씨 또한 슬거움이 엿보인다. 커다란 콘도미니엄과 번듯한 민박집들만 아니라면 다도해의 어느 낙도 같은 느낌이 든다. 게다가 마을은 최신식 민박집들로 가득한데도 정취만큼은 여느 섬마을처럼 조용하고 한가롭다. 마을을 벗어나면 이내 조붓한 오솔길이나 솔숲길이 이어진다. 어느 길로 들어서도 바다가 지척이다.

바다… 갯바위… 태초의 풍경에 ‘눈멀미’
승봉도는 하늘에서 내려다볼 때에 막 날아오르려는[昇] 봉황(鳳凰)의 형상이라 한다. 하지만 지도를 놓고 보면 길쭉하고도 울퉁불퉁한 고구마를 닮았다. 약간 들린 북서쪽 끄트머리에 선착장이 있고, 불룩한 몸통 한복판에는 마을이 자리잡았다. 마을너머 동쪽 지역은 넓고 울창한 솔숲과 얼마쯤의 논밭이 차지한다. 이렇게 보면 승봉도를 아주 큰 섬으로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체 면적이 2.2km2에 해안선의 길이가 10여 km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네댓 시간만 쉬엄쉬엄 걸으면 은밀한 속내조차도 죄다 훑어볼 수 있고, 승봉도의 도로 사정도 섬치고는 썩 괜찮은 편이다.

승봉도의 북쪽 해안은 유달리 바위가 많아 풍광이 아주 빼어나다. 그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절경은 특히 남대문바위. 거대한 바위 하나가 억겁의 세월 동안 파도에 깎이고 비바람에 씻긴 끝에 거대한 문(門)의 형상으로 남아 있다. 게다가 바위 위쪽에는 소나무 몇 그루가 자라고 있어 그 운치가 한결 돋보인다. 남대문바위 주변에는 다양한 형상의 갯바위와 크고 작은 돌이 지천으로 깔려 있다. 외지인에게는 그저 눈맛 좋은 절경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해안이지만, 섬사람에게는 소중한 삶의 터전 가운데 하나다. 바닷물이 빠지면 주민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조개를 캐거나 낙지를 잡는데, 네댓 시간쯤의 한 물때에 캐는 바지락 양은 대략 1만~2만 원어치라 한다. 뙤약볕 아래에서 몇 시간 동안 쪼그리고 앉아 일한 대가치고는 아주 박(薄)한 셈이다.

바다… 갯바위… 태초의 풍경에 ‘눈멀미’
남대문바위에서 섬 동쪽 끄트머리의 촛대바위까지는 암석해안이다. 물이 빠지면 거칠고 투박한 돌들이 무수히 나뒹군다. 하지만 그곳을 따라 걷는 기분은 아주 상쾌하고 가뿐하다. 발길 닿는 곳마다 절승(絶勝)인데다 만조(滿潮) 때만 아니면 특별히 위험한 구간도 없다. 더욱이 따가운 햇살을 피할 만한 해안동굴이 있는가 하면 자잘한 자갈과 굵직한 모래가 깔린 해수욕장도 두어 군데 지나가게 된다. 그리고 바닷가의 모래언덕과 산자락에 곱게 피어난 해당화 갯메꽃 참나리 등의 들꽃은 더위에 지친 나그네의 눈을 번쩍 뜨게 해준다. 특히 촛대바위와 인접한 삼형제바위 부근의 해안 풍경은 문자 그대로 압권이다. 아랫부분이 물에 잠긴 채 우뚝 솟아오른 삼형제바위의 위용도 볼 만하고, 그 옆에 둥그렇게 펼쳐진 해수욕장의 바닷물은 심산유곡의 계류처럼 맑고 시원하기 그지없다.



촛대처럼 보이기도 하고 사람의 손가락 같기도 한 촛대바위를 보고 나서는 길을 되돌아와야 한다. 깎아지른 해벽(海壁) 아래 시꺼먼 바닷물이 일렁이기 때문이다.

촛대바위 남쪽의 부두치해변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절경이다. 이곳에는 모래와 자갈, 조개껍질이 섞인 백사장에다 썰물 때마다 바닷길이 드러나는 작은 섬 하나가 있다. 그러므로 미리 물때를 알아보고 찾아가야 비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부두치해변에서 마을까지 이어지는 길은 울창한 솔숲을 지난다. 길바닥에 깔린 솔잎의 푹신한 감촉과 해풍에 실려온 솔 향기가 심신의 여독을 말끔히 씻어주는 숲길이다. 그래서 이 길에 들어서면 지나온 길의 수고로움은 아득히 잊힌다. 오히려 마냥 걷고 싶다는 욕구가 또다시 솟아난다.





주간동아 2001.07.12 292호 (p92~93)

< 양영훈/ 여행칼럼니스트 > travelmak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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