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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차세대언론’ VJ가 뜬다

‘6mm’에 휴머니티 세상을 담아라

비디오 저널리스트들 방송가 맹활약… 기동성·현장성 무기로 사회 틈새 집중 조명

  •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6mm’에 휴머니티 세상을 담아라

‘6mm’에 휴머니티 세상을 담아라
지난 5월29일 저녁 TV 뉴스를 본 시청자들은 깜짝 놀랐다. 서울 올림픽대교 상공에서 대형 조형물 설치작업중인 육군 CH47헬기가 한강에 추락했다는 톱뉴스가 보도되었기 때문. 더욱이 헬기가 조형물을 교량 주탑에 놓으려 시도하다 탑에 부딪친 뒤 몸체가 두 동강나 물 속으로 곤두박질치는, 끔찍하면서도 생생한 사고 당시 화면은 시청자들을 큰 충격에 빠뜨렸다. 이를 촬영한 사람은 현장 인근 아파트에 사는 한 주부. 사고 순간을 가정용 캠코더에 담은 시민은 그 외에도 20여 명이나 되었다.

이 단적인 사례를 과연 저널리즘의 한 형태로 볼 수 있을까. 일반인도 얼마든지 방송 제작에 참여 가능한 영상 대중화의 흐름을 놓고 볼 때 이는 분명 일상에 밀착한 비디오 저널리즘의 기능을 일정 부분 수행한 것임에 틀림없다.

매체환경의 민주화란 차원에서 ‘대안적 영상 저널리즘’이라고도 하는 비디오 저널리즘 시대의 도래로 급부상한 존재가 바로 VJ. 흔히 춤추며 뮤직비디오를 소개하는 비디오 자키(Video Jockey)를 떠올리기 쉽지만 VJ는 비디오 저널리스트(Video Journalist)의 약자. 방송프로그램의 기획·취재·촬영·편집을 나홀로 도맡는 ‘원 맨 프로듀서’를 일컫는다. 넓은 의미에서 앞서의 주부 또한 일종의 ‘시민 VJ’인 셈이다.

미국에선 이미 1990년대 초반부터 다채널을 보유한 케이블망을 통해 VJ들의 활약이 두드러졌고, 일본에도 VJ 전문채널이 있을 정도로 ‘VJ 문화’는 생소하지 않다.

‘6mm’에 휴머니티 세상을 담아라
하지만 VJ들이 국내 방송계의 ‘샛별’로 떠오른 건 극히 최근의 일이다. 특히 사회의 그늘에서 숨죽인 ‘마이너리티’의 삶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본 다큐멘터리들이 선정적 프로그램에 식상한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면서 VJ들의 작품은 이제 KBS, MBC, SBS, EBS 등 공중파방송과 케이블방송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다(68~69쪽 기사 참조). 심지어 케이블 음악채널들까지 스타 가수들의 꾸밈없는 모습을 담은 다큐 스타일의 제작방식을 선호하는 추세다.



VJ들의 ‘무기’는 단연 6mm 비디오 카메라. 보기에도 육중한 전문 방송장비인 베타캠 카메라는 물론 조명도 필요없다. 현장성·밀착성·기동성을 최대한 살린 이 소형 디지털 캠코더는 기존 방송장비보다 화질도 뒤지지 않아 사회의 틈새를 집중 조명하는 다큐 제작에 안성맞춤이다. 현재 각광 받는 기종은 일본 소니사의 제품들. 초창기엔 VX1000 모델이 인기를 끌었지만 지금은 PD100과 PD150, VX2000 등 같은 회사의 다른 기종들이 주로 쓰인다. 가격은 대략 300만~500만 원선.

“처음 만난 취재대상을 주눅들지 않게 하면서 그들 가슴에 묻힌 속내를 드러내게 하는데 유리한 것이 6mm의 최대 강점이다.” (사)한국비디오저널리스트협회(이하 VJ협회) 박병규 사무차장(31)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VJ로 입문하기 전 공중파방송사에 잠시 근무하며 독거노인을 취재한 적이 있었는데, 취재 약속 후 촬영팀이 떼로 몰려가니 할머니가 갑자기 반지를 끼고 화장까지 하는 등 부산을 떨더라는 것. 박차장은 “VJ의 1인 프로그램 제작활동으로 다양한 소재 발굴과 생생한 현장감은 기존 방송제작 시스템이 따라잡기 힘들 만큼 경쟁력이 있다”고 덧붙인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VJ협회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활동중인 VJ는 400여 명(추산). 이 중 전업 VJ는 공중파 및 케이블방송, 지역민방을 통틀어 100여 명 가량으로 알려졌다.

국내 방송계에서 VJ들이 갑작스레 뜬 배경은 뭘까. VJ들은 그 해답을 방송환경의 급격한 변화에서 찾는다. IMF로 광고 수입이 격감한 각 방송사들이 일제히 제작비 절감에 나서면서 값싸고 질 좋은 프로그램을 얻기 위해 VJ를 앞세운 1인 제작 시스템 도입에 앞 다퉈 매달렸기 때문이란 것.

최소 4, 5명의 스태프(PD·카메라·카메라보·조명·운전)가 한 조를 이룬 ENG카메라 제작 시스템보다 1인 제작 시스템은 엄청난 비용절감 효과를 낼 수 있다. 더욱이 VJ시스템에서는 접근 가능한 취재원에 거의 제한이 없다는 장점이 있어 현재 공중파방송 교양물의 70% 가량이 VJ시스템을 활용할 정도로 폭넓게 확산되었다는 것이 방송계의 자체 분석이다.

국내에서 맨 먼저 VJ시스템을 표방한 곳은 교양다큐전문 케이블 TV인 Q채널. 지난 96년 9월 첫선을 보인 Q채널의 다큐멘터리 ‘아시아 리포트’는 100% 해외 현지촬영에다 충실한 내용을 인정 받아 총 120회를 제작할 정도로 장수한 대표적인 VJ 프로그램. 지금도 Q채널에서 재방영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지난 90년대 초반 간첩 혐의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은 어느 재일 한국인을 다룬 다큐멘터리 ‘그래도 조국을 사랑한다’를 일본 방송사에 공급한 바 있는 전문VJ 안해룡씨(40, 아시아프레스 인터내셔널 서울사무소 대표)가 일본의 비디오 저널리즘과 VJ의 개념을 국내에 본격 전파하는 등 몇몇 선진 VJ들의 공로도 컸다.

‘6mm’에 휴머니티 세상을 담아라
그러나 이런 VJ시스템의 자리매김에도 아직 대다수 VJ들의 사정은 열악한 편이다. 이른바 톱클래스로 분류되는 일부 전업VJ들은 1년에 7000만 원에서 1억 원 이상을 벌지만 보통 전업VJ들의 연간 수입은 대략 2000만~3000만 원 수준. 다른 업을 겸한 VJ들의 수입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VJ들의 작품 제작에 대한 방송사의 지원 역시 미약하다. 우선 당장 방영할 작품 확보에 급급해 충분한 제작시간을 주는 데도 인색하다고 VJ들은 입을 모은다. 다음은 한 현역VJ의 토로.

“방송사들이 VJ를 싸구려 외주작품을 납품하는 ‘하청업자’쯤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VJ의 편집권도 인정하지 않는다. 통상 VJ들은 해외촬영 때 경비와 시간을 아끼려 틈틈이 다른 작품을 함께 찍어두는 ‘멀티 작업’을 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방송사는 이렇게 어렵게 만든 과외 작품에 대한 저작권을 한시적으로 제한하기까지 한다. 물론 상당수 VJ 작품의 질이 낮은 것도 이런 대우를 받는 한 가지 이유이긴 하다. 하기야 요즘은 6mm 카메라만 들면 아무나 VJ라 통칭되는 판이니 누가 진정한 VJ인지 분간이 안 될 때도 많다.”

‘6mm의 범람’과 VJ의 양적 팽창에 대한 VJ들의 내부 비판이 전혀 없지는 않다. 지난 99년 ‘반성문-6mm 함부로 들지 마라’란 제목의 글을 통해 ‘VJ의 순수성’을 강조한 Q채널 이창재 PD(34, 현재 휴먼다큐 ‘뷰파인더’ 제작)는 “VJ의 본질은 비디오라는 도구로 인디 다큐적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라 지적한다. 예컨대 VJ로서의 사명감을 갖고 자신의 메시지를 자신만의 표현방법으로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한때 Q채널에서 ‘아시아 리포트’ 제작에 참여했던 ㈜미디어서비스 주명진 대표(40)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PD의 ‘작가주의’에 동감을 표하는 그는 “제대로 된 VJ가 되려면 지역적 연고에 기반을 둔 자신만의 커뮤니티와 전문성 발휘가 가능한 자신만의 고유 테마를 모두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반론도 적지 않다. 모 공중파방송의 인기 프로그램 제작을 맡고 있는 한 VJ는 “기본적으로 제도권 방송은 시청자의 취향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심오한 의미와 깊이를 지닌 작품이 중요하다면 다른 한편 재미나 볼거리를 주는 작품 또한 필요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한다. 상업성에 치중하는 방송계에서 VJ 스스로 VJ의 ‘교과서적 기본’에 충실하려 자신을 추스르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VJ의 개념을 ‘디지털 PD’라는 광의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VJ 내부의 이런 입장 대립과 무관하게 VJ는 점점 인기직종으로 떠오르고 있다. Q채널 전략미디어팀 장유미씨는 “제작능력을 인정 받는 몇몇 이름있는 VJ들은 이미 VJ 지망생들 간에 하나의 교본으로 자리잡았다”고 귀띔한다. 현재 VJ교육과정을 개설중인 곳은 VJ협회를 비롯해 서강대와 상명대의 방송아카데미, Q채널, 민주시민언론운동연합(민언련), 한겨레문화센터 등 7, 8개. 대다수 강좌가 3~6개월 코스로 교육이 끝날 무렵 수료작품을 만들게 하고 있다. VJ협회 일반과정의 경우 6월14일 현재 30여 명(정원 60명)의 지망생이 접수해 VJ에 대한 인기를 실감케 한다. 인터넷엔 ‘캐스트러쉬’(www.castrush.com)등 VJ 관련 사이트까지 개설되어 정보교류를 돕는다.

이뿐 아니다. 연세대 취업담당관 김농주씨가 최근 3년간 대학생 직업선호도와 취업현황을 분석, 지난 4월 내놓은 ‘부모가 어린이날에 자녀에게 권할 만한 8가지 분야의 직업’이란 보고서에서도 VJ를 공간지각력과 수리능력 등 복합적 자질을 갖춘 어린이에게 적합한 유망직업 중 하나로 꼽았다. 어쨌든 올 하반기 시범방송이 예정된 디지털 위성방송 등 방송채널의 급격한 증가와 그에 따른 신선하고 독특한 콘텐츠 확보를 위한 경쟁에 힘입어 VJ작품의 수요는 크게 늘 전망이다. VJ시스템의 확산이 시대적 대세란 점에 이견을 보이는 이도 없다.

때문에 아직 공고히 뿌리내리지 못한 VJ시스템의 정체성을 둘러싼 논쟁은 어쩌면 시기상조일지도 모른다. 보다 중요한 점은 누구에게나 비디오 저널리즘의 주체인 VJ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이 ‘영상 게릴라’들의 6mm 카메라에 잡힌 영상이 좀더 아름다운 빛깔이기를 시청자들은 끊임없이 원한다는 데 있다. 아마도 그 영상의 이름은 ‘휴머니티’일 것이다.



주간동아 2001.06.28 290호 (p64~66)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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