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0

2001.06.28

낙동강 둑인들 온전할까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의 ‘엽기적’ 상납비리 … 매년 시공업체에 뇌물액수 통보, 심지어 독촉까지

  • < 최영철 기자 > ftdog@donga.com

    입력2005-02-11 14: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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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강 둑인들 온전할까
    지난 5월30일 대구지검 김천지청은 부산지방국토관리청 하천국 하천공사과 과장을 포함한 전·현직 직원 4명을 구속하고, 3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낙동강과 각 지류 하천둑 공사를 발주하면서 시공업체들에게서 뇌물받은 사실을 적발했기 때문이다. 한 과 8명의 정원 중 서기와 기능직 여직원 2명을 제외한 과장과 현직 현장 감독관 5명(토목직)이 모두 뇌물수수 혐의를 받고 기소된 것. 이미 검찰의 압수수색이 있던 지난 5월22일부터 모습을 감춘 하천국장과 하천계획과 계장 1명을 합치면 경북지역 하천공사 현장과 관련된 하천국 공무원 모두가 뇌물 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셈이다. 검찰은 달아난 하천국장과 계장의 조사를 마치고 수사결과를 발표할 계획이지만 이미 이들의 비리는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 버렸다. 오히려 검찰이 공식 수사결과 발표를 미루면서 억측만 더하는 상태다.

    뇌물상납의 주체인 시공업체 현장 소장들과 기소된 담당 공무원들의 증언 및 진술 조서에 대한 취재 결과 이들의 상납비리는 ‘정말 이게 사실일까’라고 되물을 정도로 ‘엽기적’이었다. 비리 관련 공무원들은 국민의 세금인 하천둑 공사비를 자신의 돈, 또는 ‘우리’의 돈이라 생각하였다. 심지어 걷은 뇌물 중 일부는 자신들을 관리·감독하는 건설교통부 관련 부서나 감사부서의 ‘지원비’(?)로 사용하기도 했다. 1회성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해마다 공사 발주 금액을 정하면 시공업체에 뇌물 액수를 통보하고, 제때 주지 않으면 독촉까지 했다. 현장 소장들이 이를 거부했을 때 다가올 유·무형의 불이익을 우려해 꼬박꼬박 뇌물을 상납하다 보니 뇌물상납이 관행이 되어 버린 것. 이외에도 직원들은 현장 소장들에게 ‘황제’처럼 군림하며 필요할 때마다 온갖 명분으로 돈을 요구하며 괴롭힌 것으로 드러났다.

    그들은 놀랍게도 뇌물의 성격에 맞게 명칭도 붙이고, 뇌물 액수를 산정하는 ‘전통’까지 세워놓았다. 심지어 일부 항목은 예산서를 만들어 두고 과장의 결재를 받아 국장에게 보고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소된 한 직원이 검찰에서 실토한 뇌물의 종류와 산정방식을 살펴보면 이런 식이다. 우선 현장 감독관인 토목직 직원의 개인 착복용 ‘월례금’은 현장마다 매년 책정하는 공사비의 1%(1년 기준)로 정한다. 이외에 과장과 국장용 ‘현장 지도비’와 ‘거마비’는 방문 때마다 공사 현장당 100만 원(1년에 3~4회 방문), 과의 공통경비로 쓰인 ‘국과비’는 공사비 5억 원 미만이 100만 원, 10억~ 15억 원은 200만 원, 15억 원 이상은 300만~400만 원, 공사발주 설계 심사비는 30만~50만 원, 준공검사비는 10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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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마다 5억 원 상당의 공사를 하는 한 현장 소장은 자신이 겪은 일을 이렇게 설명했다. “심사비 명목으로 50만 원, 현장 감독관 월례비 500만 원, 국과비 100만 원, 준공검사비 100만 원, 국·과장비 400만 원을 지급했지만 이는 최소한으로 잡은 것이다.” 이는 기소된 공무원의 진술조서와 정확히 일치하는데, 그의 말대로라면 각종 경비성 비용을 빼고도 한 공사현장에서 한 해 고정적으로 1150만 원을 하천공사과의 직원 개인이나 과의 뇌물로 지급한 것이다.

    하지만 하천공사과가 감독하는 경북지역 하천둑 공사 총 금액이 470억 원에 이르고, 공사현장이 44개소(14개소는 수해복구 공사)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각 공사현장의 평균 공사비는 10억 원이며 각 현장마다 한해 지급하는 뇌물의 평균 금액은 2300만 원이 되는 셈이다. 검찰은 이런 식으로 계산하면 하천공사과가 한 해 동안 걷은 뇌물 총액은 10억2000여 만 원을 상회하고, 이는 총 공사액의 2%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한 현장 소장은 이에 대해 “국장의 현장 지도비와 거마비가 빠졌고, 청장에 대한 비용도 계산하지 않은 것”이라고 ‘반론’을 폈다. “토목직 기사(현장 감독관)가 감독하는 현장이 9~10개 정도되므로 국·과장급들에 대한 예우차원에서 이들에 대한 현장 지도비와 거마비는 토목직기사들보다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 즉 1명의 토목직 기사가 공사비 10억 원짜리 현장 10개소에서 연간 1000만 원씩 1억 원을 받는다고 보면 국·과장은 현장을 방문할 때마다 100만 원씩 현장 지도비와 거마비조로 돈을 받으므로 44개 현장을 돌면 4400만 원이고 3회만 방문하면 1억2000만 원이 넘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검찰의 계산에는 과장의 것만 있을 뿐 달아난 국장의 비용이 빠져 있다는 주장이다. 한편 기소된 직원과 현장 소장의 진술서에는 청장에 대한 언급도 보인다.

    “청장은 사장이 직접 찾아가서 인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현장소장 A씨). “설계변경으로 인해 1억 원 이상의 공사금액을 증액할 경우 청장 결재를 받고 공사 감독관(직원)들은 실정보고에 앞서 각 업체 사장들에게 청장을 찾아가서 인사 드리라고 합니다”(하천공사과 직원 E씨) . 하지만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수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입증 자료가 없다며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했다. 박성표 부산지방국토관리청장은 이에 대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청장이 전문건설업체와 같은 조그마한 업체 사장을 만나 뭐하겠느냐”고 직원과 현장 소장의 진술을 ‘거짓말’이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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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같은 비리를 상부 기관인 건교부는 몰랐을까. 뇌물의 지출 명세를 보면 비리 공무원들은 건교부를 상대로 상당액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5월22일 검찰이 압수한 각종 서류에 따르면 이들의 올해 국과비 뇌물 예산 책정비는 30여 개 정기공사 현장에서 모두 6100만 원. 이 중 2400만 원을 올 3~5월에 걷은 것으로 나와 있다. 물론 14개 수해복구 공사현장에서 거둔 국·과비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기소된 직원들은 “국과비를 대부분 국·과장의 본부(건교부) 출장이나 회식비, 외부손님 접대용으로 썼고, 다른 국 접대의 경우 도로국과 하천국이 나눠 부담한다”고 진술하고 있다. 즉 대부분이 하천국과 부산청 전체의 내부 경비로 썼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외부손님’은 누구일까. 검찰이 하천공사과 사무실에서 압수한 지출 영수증에 나온 면면을 보면 하천공사과와 직접 관계된 건교부 및 행정자치부의 직원과 간부들이 대부분이다. 이 영수증에는 지난 5월9일 본부 하천계획과 문상 50만 원, 보상과 보조비(중앙토지수용위원회) 100만 원, 10일 본부 하천계획과 지원 100만원, 10일 본부 감사관련 간부 100만 원, 행자부 회의 출장비 100만 원, 11일 학술발표 본부직원 3인 90만 원, 14일 본부 하천계획과 직원 해외여행 100만 원, 19일 행자부 현장방문 200만 원(취소) 등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들이 5월9~14일에 쓴 국과비 총 818만 원 중 540만 원을 ‘외부손님’에게 지급한 것이다. 행자부가 현장 방문을 취소하지 않았으면 추가 경비를 지급했어야 할 판이다. 기소된 한 직원은 진술조서에서 “이렇게 쓰다 연말에 국과비가 부족하면 한번 더 걷은 경우도 있다”고 증언한다. 하지만 건교부의 한 관계자는 “전혀 알지 못하는 일이며 부산청 직원들이 쓴 돈의 명세를 잘못 기재한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심지어 토목직 직원(현장 감독관)의 개인착복용 월례비의 경우 5명이 100만 원씩을 따로 모아 매달 행정직원과 여직원의 통장에 150만 원과 100만 원씩 입금한 것으로 되어 있다. 기소된 한 직원은 “기계직 공무원에게도 매월 150만 원 정도를 지급하고, 국장과 과장에게는 고스톱을 치면서 잃어주는 방법이나 술대접으로 상납하고, 자리를 옮기지 않기 위해 직접 돈을 준 적도 있다”고 밝혔다.

    현장 소장들은 왜 이런 뇌물 요구를 과감히 거부할 수 없었던 것일까. 현장 소장 C씨는 “뇌물을 거부하면 공사를 더 이상 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각종 비리사건으로 감리제도를 도입한 도로건설국과 달리 하천공사과의 하천둑 공사는 공사현장 감독인 토목직 직원에게 발주 설계에서 준공에 이르기까지 모든 권한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의 뜻을 거역한다는 것은 곧 공사 포기를 의미한다는 것.

    지난해 12월 월례비와 올해 국과비를 늦게 납부하다 직원들에게서 독촉전화를 받은 적이 있는 현장 소장 D씨는 “현장 실정보고를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든가, 공사금 증액과 관련된 설계변경을 잘 해주지 않아 공사자격까지 잃을 가능성이 있다”며 “심지어는 공사를 마친 것에 대해 뜯어내라, 없애라”고까지 하는 경우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김천지청 장영수 검사는 “총 공사액이 1조6000억 원에 이르는 도로건설국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공사금액이 작은 하천국은 등잔 밑이 어두운 꼴이 되어 버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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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검찰 수사에서는 경남지역의 공사를 책임지는 하천계획과와 관련한 의혹도 제기되었다. 지난 5월22일 검찰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하천계획과 직원(도주, 지명수배)의 이중 캐비닛에서 현금 600만 원이 발견된 것. 검찰은 이 돈 역시 뇌물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부산청 하천공사과에서 압수한 각종 국과비 지출 영수증을 보면 하천국 소속의 하천계획과와 하천공사과가 체육대회 경비나 회식경비를 철저하게 2등분 갹출하는 원칙을 고수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검찰이 압수한 영수증에는 실제로 지난 4월6일에 있은 직원 송별회 160만 원도 80만 원씩 나눠서 냈고, 체육대회 경비 350만 원과 기타 잡비 420만원도 나눠서 낸 것으로 나와 있다.

    이에 대해 대구지검 김천지청의 한 관계자는 “하천계획과가 경남지역에 현장이 있기 때문에 우리 지청 관할 밖이어서 수사가 이루어지 않았다”며 “달아난 직원이 출두해야 600만 원에 대한 정확한 명세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현장 소장들과 공무원에 대한 조사 결과 하천계획과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은 사실이지만 수사가 이루어져 봐야 진실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국토관리청 감독관들에게서 받은 부당한 대우는 이루 말할 수도 없습니다. 수사기관에서 이런 식으로 진술하면 관련업계에 당장 소문이 퍼져 저는 매장됩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모든 것을 밝히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이런 식의 비리가 계속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과 가족들에게 떳떳해지기 위해서입니다. 이번 기회에 고질적인 상납 비리가 없어졌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검찰의 참고인 조사과정에서 한 현장 소장이 남긴 몇 줄의 진술은 그동안 공무원들이 저지른 전횡이 얼마나 심각한 것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박성표 부산지방국토관리청장은 이에 대해 “현장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을 모르고 있던 것에 책임을 통감한다”며 “앞으로 하천공사에도 감리제도를 도입해 부산청이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태풍이 몰려옵니다. 과연 수사가 끝난다고 해묵은 관행이 없어질까요. 아마 이번에 솔직하게 모든 것을 진술한 현장 소장들은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현장 소장 D씨의 이야기는 이번에 검찰 조사를 받은 36명의 현장 소장들의 솔직한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 공무원 상납비리 사건이 공무원 몇 명만 갈아치우고 현장 소장들만 직장을 잃는 사태로 끝날 게 뻔하다는 것. 이번 사건을 두고 직원 교체 외에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는 건교부가 공무원의 뇌물수수 관행을 어떻게 퇴치해 나갈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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