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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역 통폐합’ 하루가 급하다

광역자치단체, 기초단체 간 갈등 증폭… “道 폐지, 시 - 군 통합” 설득력 점점 커져

  • < 윤영호 기자 > yyoungho@donga.com

‘행정구역 통폐합’ 하루가 급하다

‘행정구역 통폐합’ 하루가 급하다
1991년 12월 개발 기본 계획을 수립한 군장산업단지 군산지구와 장항지구. 전북 군산지구 482만 평은 현재 현대건설, LG건설, 대우건설 등이 한창 공단 조성 공사를 진행중이지만 금강 하구둑으로 서로 연결된 충남 장항지구는 아직 공사 착수도 못한 상태다. 서천군 주민들이 “장항지구를 아직 개발하지 않는 것은 편중 개발이 아니냐”는 민원을 제기하지만 공단 조성을 맡은 한국토지공사측은 당분간 공사 착수가 어렵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근 군산지구도 분양이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 장항지구는 군산지구보다 입지 조건도 나쁜데다 분양가마저 평당 20만 원 정도 더 비싸 경쟁력이 없는 것으로 결론났기 때문이다. 토지공사 충남지사 관계자는 “장항지구 개발이 계속 늦어지면서 초기 투자비가 잠겨 금융비용 등이 더 많이 들어가면서 군산지구보다 원가가 높아졌다”면서 “기획예산처에서도 지원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어 원가를 맞추기가 힘들다”고 설명했다.

장항지구 개발이 계속 늦어진 주된 이유는 도 경계지역에 산업단지를 만들다 보니 관할 도끼리 행정 협조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토지공사 관계자는 “건설교통부와 환경부 입장이 엇갈린 것은 그렇다치고라도 도계 역할을 하는 수로를 유지해야 한다는 전북도와 기왕이면 공단을 더 크게 조성하고 싶은 생각에 수로를 없애야 한다고 맞선 충남도 간 이견을 조정하느라 3년 동안 건교부 주관 회의만 하다 99년에 겨우 합의가 이뤄졌다”고 털어놓았다.

늘어나는 자치단체 간 갈등, 예산만 낭비

전남 곡성군과 구례군은 섬진강의 흐름을 따라 나란히 인접한 기초자치단체. 섬진강 고기잡이로 소득을 올리는 두 지역은 그 때문에 주민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게 패었다. 구례군은 상류지역인 곡성군에 위치한 기업에서 오·폐수를 방류해 하천을 오염시킨다고 의심하고 있다. 반면 곡성군 주민은 구례군이 설치한 수중보 때문에 고기가 하류에서 상류지역으로 올라오지 못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두 군은 섬진강환경협의회를 만들어 섬진강 지키기에 나섰지만 불신의 골은 메워지지 않고 있다. 곡성군 쪽에서는 “구례군이 수중보를 제거한다고 하지만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다 수중보 근처에서 고기가 많이 잡히는데 쉽게 제거하겠느냐”고 말하고 있고, 구례군 쪽에서는 “곡성군이 섬진강 오염을 제대로 방지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얘기한다.

위의 두 사례는 광역자치단체 사이에 또는 기초자치단체 사이에 발생하는 분쟁과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주고 있다. 장항지구의 경우 분쟁을 조정하긴 했지만 시간을 너무 끌어 공단 분양가가 높아져 결국 공단 조성의 실효성까지 의심 받는 상황이 되었다. 곡성군과 구례군의 경우 서로 오해와 불신만 증폭하고 있다.

지리산을 낀 경남 산청·함양·하동군은 똑같은 주제의 관광사업을 경쟁적으로 펼치는 바람에 사업이 특성화하지 못하고 중복되어 예산만 낭비한다는 지적을 받는 경우. 이들 지역은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 거점활동 루트 등을 주제로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앞다퉈 사업을 벌이면서 기념물이나 전시관 건립 등 테마나 프로그램이 거의 같아 외부 관광객들의 호응을 별로 받지 못하고 있다.

‘행정구역 통폐합’ 하루가 급하다
산청군은 15억 원의 예산을 투입, 시천면 중산리 중산관광단지 내에 전쟁 당시 노획한 장비 등을 전시하는 ‘지리산 빨치산 토벌 전시관’과 아지트 등을 조성해 개관했고, 함양군도 4억8000만 원을 들여 빨치산의 주요 무대이던 마천면과 휴천면 일대 ‘지리산 공비 토벌 루트’ 관광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동군도 1억8000만 원을 들여 화개면 대성리 일대에 빨치산들의 활동과 관련한 루트를 개발, 올 가을에 개장할 예정이다.

99년 9월 경기 하남시가 개최한 국제환경박람회는 대표적인 전시성 행사로 꼽힌다. 당시 중앙정부는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박람회 개최를 반대했으나 하남시측이 무리하게 추진, 시 예산과 정부 보조금 등 186억 원 정도를 투입했다. 그러나 100억 원의 적자가 발생해 추경 예산을 편성해야 했다. 당시 지역 시민단체들은 하남시장을 상대로 낭비된 예산을 환수하기 위해 ‘납세자 소송’까지 제기했다. 결국 하남시는 시민단체들의 반발에 부딪쳐 올해 개최하려던 2회 박람회는 포기한 상태다.

행정자치부 고위 관계자는 “경남 산청·함양·하동군과 경기 하남시가 비판 받는 것은 단체장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데서 비롯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단체장이 자기 지역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 뛰고, 각 지역의 경제 활력이 국가 경제의 활성화로 이어지는 게 21세기 지방화 시대의 진정한 의미인데도 눈앞의 효과에만 급급하다 오히려 역효과를 보게 되었다”는 지적이다.

시스템 논의 없이 지방자치 강행 곳곳서 문제

7월1일이면 우리 나라에 지방자치제가 부활한 지 10년이 된다. 우리 나라 지방자치는 91년 4월과 7월, 서울특별시와 각 광역시에 구의회와 시의회를 구성한 데 이어 95년 7월에는 민선 단체장까지 취임함으로써 형식적으로는 완전한 지방자치를 실현했다. 98년에는 2기 민선단체장을 선출했다. 그동안 지방자치 시행 과정에 나타난 만성적인 재정난, 자치단체장의 선심성 사업 등 각종 부작용에 대해서는 중앙과 지방의 시각이 다르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아직도 중앙에서 거의 모든 권한을 틀어쥐고 있으면서 지방자치의 부정적인 면만 부각시키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반면, 중앙에서는 “단체장들은 입만 열면 권한이 없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인사권과 예산권을 갖고 있다”고 맞서고 있다.

그러나 이런 지적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로 지방행정 시스템 정비문제를 꼽는 사람이 많다. 행자부 관계자는 “지방행정 시스템에 대한 충분한 논의 없이 일제시대 지방행정 구조를 거의 그대로 놔둔 채 지방자치를 실시한 결과 곳곳에서 문제가 생기고 있으나 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없는 게 오히려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지나가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들어 지방행정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 무엇보다 현재의 광역단체인 도를 폐지하거나 기능을 축소시키고 시-군 통폐합을 통해 기초단체를 대형화하는 게 시급하다는 지적이 핵심 내용이다. 일부 행정학자들은 군장산업단지 문제도 도가 없었다면 조정 기간이 더 짧아졌을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한다.

물론 현직 기초단체장들은 드러내놓고 광역단체인 도 폐지론을 거론하지는 못한다. 다만 이시종 충주시장은 작년 말 한 토론회에 참석, “시·군 단위에서 산업단지 하나 만들기 위해 농지 전용과 관련한 문제를 처리할 때 도를 거쳐 중앙에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그 과정에 들어가는 거래 비용, 시간 낭비 등이 엄청나다”면서 “도와 시·군의 기능을 완전히 분리해 모든 민원은 도의 간섭을 받지 않고 시·군에서 책임지고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21세기 지방화시대 정신에 맞다”고 주장, 도 기능의 과감한 축소를 주장했다.

‘행정구역 통폐합’ 하루가 급하다
충북대 사회과학대 강형기 학장도 도 기능의 재정립을 주장했다. 강학장은 “지방 중소기업청에서 하는 일은 도의 지역경제국 업무와 중첩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중소기업청 병무청 지방환경청 등 지방에 산재한 특별 행정기관 기능을 통폐합해 도에 주고, 기존 도의 업무는 과감하게 기초단체에 이양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도를 아예 폐지하자는 주장도 있다. 동국대 행정학과 심익섭 교수는 “도청은 대부분 시·군에서 이차적으로 서류를 전달 받아 처리하거나 시·군과 중앙과의 전달 중계사무가 많고, 특히 도청이 주민을 직접 상대하는 대민 사무는 거의 없기 때문에 도와 시·군은 대부분 중첩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 도를 현행대로 존치할 필요가 있는지 심각하게 검토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도의 폐지가 이상적이긴 해도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이상용 선임연구위원은 “도를 폐지할 경우 경제적인 효과가 크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역사성이 있는 경우 단순히 비용 개념으로만 볼 수 없어 결국 도를 없애지도 못하고 정치 쟁점만 될 가능성이 많다”고 지적했다.

행자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사견임을 전제, “공무원들의 반발 등을 감안하면 도를 폐지하는 것이 어렵겠지만 생활권과 경제권을 중심으로 시-군을 통합하는 작업과 연계해 도 폐지를 추진하면 통합 시-군에서 일부 도 기능을 가져와야 하므로 도 공무원들을 흡수할 수 있어 반발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 제안했다. 그는 또 “기초단체는 작을수록 좋다는 생각은 지금과 같은 정보화시대에는 맞지 않는 얘기”라면서 “현재의 기초자치단체가 구조적으로 재정문제를 겪을 수밖에 없다면 은행도 통폐합하는 마당에 법인인 기초단체끼리 M&A(인수-합병)하지 말란 법 없다”고 잘라 말했다. 행정학자들은 도 폐지와 시-군 통합에 따른 가시적인 효과로 절차적인 규제 완화를 통해 기업 활동을 지원할 수 있다는 점을 꼽는다. 행자부 고위 관계자는 “도를 폐지하면 산술적으로 2조 원 정도의 예산절감 효과가 있다는 것말고도 결재 단계가 10단계 정도 줄어들어 민원 처리를 신속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도 폐지를 주장하는 행정학자들이 가장 강조하는 대목이 바로 이 부분. 행정학자들은 “기업 활동의 중심은 토지와 관련한 것이 많은데, 도를 폐지하고 시-군을 통합하면 기초단체가 곧바로 중앙에 ‘로비’를 해 실질적으로 기업 활동을 지원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합리적인 도시계획으로 예산을 절감하는 등 통합으로 인한 효과는 만만치 않다는 것(상자 기사 참조).

행정학자들은 이런 점에서 지방행정 구조개편은 정권과 상관없는 국가적 과제라고 한다. 그러나 내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여야 모두 이에 대한 차분한 논의보다 정략으로만 접근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한 학자는 “결국 국가적인 과제를 놓고 정쟁만 일삼다 지방행정 구조에 대한 개혁도 하지 못한 채 다시 내년 지방선거를 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며 우울해했다.





주간동아 2001.06.28 290호 (p20~23)

< 윤영호 기자 > yyou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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