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0

2001.06.28

‘후원회 대박’ 꿈 들뜬 한나라당

야당 사상 처음으로 100억 원대 목표 설정… ‘여권 프리미엄’ 상쇄 기대도

  • < 허만섭 기자 > mshue@donga.com

    입력2005-02-11 13: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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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원회 대박’ 꿈 들뜬 한나라당
    6월28일로 예정된 한나라당 중앙당 후원회를 앞두고 당직자들은 요즘 기대에 부풀어 있다. 김기배 사무총장은 “우리 당은 이번 후원회에서 ‘다다익선’을 원한다”며 모금에 적극 나설 뜻을 밝혔다. 한 간부 역시 “마른 땅에 단비 내리듯 후원비가 금고로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속내를 내보였다.

    요즘의 여야 구도로 볼 때 이런 바람은 전혀 근거가 없어 보이지 않는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이회창 총재의 지지율이 여권을 앞질러 상당한 격차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목표치로 삼은 후원금 액수는 당의 재무구조에 ‘힌트’가 숨어 있다. 한나라당은 중앙당의 경우 매월 평균 13억여 원을 지출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따라서 연간 지출규모는 160억여 원 정도. 반면 한나라당으로 들어오는 수입은 연간 100억여 원대의 국고지원금과 많지 않은 당비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이번 후원회에 목표로 잡은 후원금의 최소치는 연간 지출액에서 국고지원금 등을 뺀 60억 원 정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 최소치일 뿐이다. 당 고위 관계자는 “후원회에서 우리 당은 100억 원대를 목표로 잡고 있다”고 귀띔했다.

    한나라당은 최근 전국에 5만여 장의 후원회 초청장을 돌렸다. ARS모금 전화번호가 찍힌 기념물도 전국의 당원들에게 일제히 발송했다.



    물론 목표대로 돈이 걷힌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역대 야당이 후원회 한 번에 ‘세 자릿수’의 후원금을 걷겠다고 나선 적은 거의 없었다. 더구나 이번 행사는 1년 주기의 관행을 깨고 지난해 11월에 이어 7개월 만에 다시 열린다. 요즘 한나라당의 전국 각 지부에선 지부 차원의 후원회 행사가 따로 열리고 있어 이번 중앙당 행사와 겹치기도 한다. 당의 생명줄과 다름없는 중요한 행사를 이런 시기에 치른다는 것은 정국에 대한 웬만한 ‘자신감’이 없고서는 불가능해 보인다.

    한나라당의 호황국면은 대선 패배 직후의 ‘고초’와 비교해 보면 더 극명해진다. 1998~99년에 민주당이 해마다 100억 원 이상의 후원금을 모금하는 동안 한나라당 중앙당으로 들어온 후원금은 연간 30억 원 남짓이었다. 98년엔 중앙당 후원금이 특정 의원의 개인후원회 모금액보다 적게 걷혀 당 지도부에 충격을 준 일도 있다. 이 시기에 한나라당은 여의도 당사 매각계획을 내놓았고, 국민연금을 체납해 망신을 당했으며, 당직자 대상 무급휴직을 단행하는 등 극심한 ‘돈 가뭄’에 시달렸다. 그러나 지난해를 기점으로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지난해 11월 후원회 행사는 경제 5단체장이 모두 참석하는 등 행사장이 ‘축제 분위기’였다. 지난해 한나라당의 후원금은 총 40억여 원. 올해에는 재정난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평가다.

    후원금 기부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은 역시 대기업이다. 몇몇 재벌그룹은 연간 수억 원대의 후원금을 정당에 낸다. 이들 대기업은 대선 당선확률의 변화에 따라 ‘베팅액’을 조절하기도 한다. 총선 이후 야당 지지율이 상승하면서 야당에 대한 대기업의 태도도 달라졌고, 이런 변화가 결국 후원금이 늘어나는 형태로 표출한 것으로 정가에선 분석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당직자는 “기업 분위기를 감지하는 데 ‘바로미터’가 되는 한 기업은 지난해 총선 전엔 한나라당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여권과 비슷하게 우리를 챙겨준다”고 말한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한 대기업은 여권측에 ‘야당에 돈을 줘도 되느냐’고 의사를 타진하는 조심성까지 보였다는 것. 이에 대해 여권은 ‘묵묵부답’이었다고 한다. 한나라당 시각으로 볼 때 야당 후원회 행사 직전 갑자기 사정돌풍이 불어 기업들을 꽁꽁 얼려놓던 집권 초기와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진 셈이다. “야당의 돈줄을 꽉 죄기엔 이미 여권의 힘이 부쳐보인다”는 말까지 나온다.

    정당들은 ‘대형 스폰서’의 파워를 잘 알기 때문에 대기업의 경우 경영진과 친분 있는 소속 국회의원들을 직접 동원해 후원금을 부탁한다. 이번 행사를 앞두고 한나라당 지도부 역시 각 의원들에게 열심히 뛰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는 어디까지 법적 테두리 내 정치자금 모금활동일 뿐 대가성은 없다는 게 한나라당의 설명. 한 당직자는 “후원금 기부 약속을 해준 대기업에게 총재가 ‘고맙다’는 전화라도 한통 걸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지만 이총재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이총재를 추켜세우기도 했다.

    ‘후원회 대박’ 꿈 들뜬 한나라당
    기업의 입장에선 후원금이 차기 정권에 대비한 ‘보험성격’임을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한 대기업 회장 비서실 관계자는 한나라당에 돈이 몰리는 것은 ‘시기’와도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주는 쪽에선 언제 줄 때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한나라당은 당사 공사비 미납금 80억 원, 퇴직금 체불 40억 원 등 120억 원의 빚을 안고 있는 등 아직은 재정적으로 불안한 상황이다. 기왕이면 야당이 어렵고 힘들 때 도와주는 것이 더 낫지 않겠나.”

    지난 97년의 경우 대선 수개월 전부터 선거 직전까지 김대중 대통령은 여론조사에서 한번도 1위를 놓치지 않았다. 한나라당 한 의원은 “이런 이유 때문에 야당 후보임에도 DJ에게 대기업의 정치자금이 여권후보 못지않게 몰렸다”고 말했다. 지지율과 후원금 액수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 ‘선거필승’의 ‘필요충분조건’이라는 논리다.

    이 때문에 이번 후원회 모금액수가 기대에 크게 못 미칠 경우 ‘이회창 거품론’이 힘을 얻을 수 있어 걱정하는 분위기도 강하다. 현재의 어려운 경제상황이나 왕가뭄 등을 고려할 때 후원회의 참여도가 낮을 수 있고, 후원금도 예상 외로 많이 걷히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강하게 나오고 있는 것(상자 기사 참조).

    그러나 이회창 총재의 지지율을 지금처럼 유지한다면 지방선거와 대선이 있는 내년에 한나라당은 최대 400억 원까지 후원금을 모을 가능성도 있다고 기대를 잔뜩 부풀리는 야당 인사도 있다. 물론 이렇게만 된다면 대권가도에서 여권 후보의 ‘프리미엄’은 상당 부분 상쇄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정황들로 인해 이번 한나라당 중앙당 후원회는 내년 본 게임을 앞둔 이총재의 경쟁력을 ‘실측’하는 척도로 평가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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