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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문단에 뜨는 별 ‘한국계 작가들’

이창래, 수잔 최, 던 리 등 맹활약 … 슬픈 가족사 쓰라린 방황 소재로 독자들 시선 고정

  • < 전원경/ 자유기고가 winniejeon@yahoo.co.kr >

미국 문단에 뜨는 별 ‘한국계 작가들’

미국 문단에 뜨는 별 ‘한국계 작가들’
지난 5월1일 미국 서부의 최대 일간지 ‘LA 타임스’는 한국계 미국 작가 던 리 씨의 소설집 ‘옐로’를 크게 소개하였다. ‘칸티나의 외로운 밤‘ ‘알에서 태어난 중국 왕자’ 등 7편의 중-단편이 실린 이 소설집에 대해 ‘LA 타임스’는 “이민자들이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을 우아한 문체로 그린 책”이라고 호평했다.

던 리 씨는 UCLA를 졸업하고, 잡지 편집인으로 일하다 작가로 전업한 이민 3세. ‘옐로’는 그의 첫번째 작품집이다. 완벽주의에 가까운 성격 탓에 무려 13년간 이 책의 출간을 준비했다는 이씨는 ‘LA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민 2세대들이 느끼는 혼돈과 아시아인에 대한 미국인들의 편견을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의 가상공간 로사리타 베이에서 펼쳐지는 이 소설의 주인공은 한국계, 중국계, 필리핀계 등 모두 아시아에서 온 이민자들이다. 책의 제목 ‘옐로’는 흑인을 ‘깜둥이’라고 부르듯 미국인들이 동양인들을 멸시하며 부르는 속어다.

최근 몇 년간 미국 문단에서 중국계를 제치고 한국계 작가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네이티브 스피커’(1995년)와 ‘제스처 라이프’(1999년)로 연이어 주목받은 이창래씨와 ‘외국인 학생’으로 ‘LA 타임스’ 선정 99년 소설 베스트 10에 뽑힌 수잔 최 씨가 대표적이다. 그밖에도 노라 옥자 켈러(‘위안부’·95년), 김난영(‘토담’·96년), 헬리 리(‘쌀이 있는 정물화’·97년), 테레즈 박(‘천황의 선물’·97년), 헤인즈 인수 펭클(‘형에 대한 기억’·97년), 미라 스타우트(‘천 그루의 밤나무’·99년), 미아 윤(‘바람의 집’·2000년) 등이 90년대 후반 미국에서 주목받은 한국계 작가들이다. 지난 4월에는 코미디언 마거릿 조가 자서전 ‘내가 바라는 나’를 출간하였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들은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한 1.5세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한국어보다 영어에 능숙하며, 대부분 명문대를 나와 전문직업인으로 일한다. 그야말로 성공적인 미국 중산층의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한국계 미국인 작가들의 진정한 공통점은 현재 삶의 모습이 아니라 작품의 경향에 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이들은 두 가지 문제에 집착한다. 하나는 소수민족의 일원으로 미국 사회에서 겪는 정체성의 혼돈(‘네이티브 스피커’ ‘형에 대한 기억’ ‘내가 바라는 나’ ‘옐로’)이며, 다른 하나는 이민 1세인 부모 세대의 고단한 삶이다(‘외국인 학생’ ‘쌀이 있는 정물화’ ‘천 그루의 밤나무’ ‘바람의 집’). 외견상으로는 전형적인 미국인이지만 그들의 작품은 미국문학 특유의 경쾌함과는 거리가 먼, 슬픈 가족사나 쓰라린 방황의 체험을 떨치지 못한다.

미국 문단에 뜨는 별 ‘한국계 작가들’
예외적인 작가로 미아 윤을 들 수 있는데 그는 한국에서 대학(한국외대 영어과)을 졸업하고, 1981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시립대 시티칼리지에서 영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졸업논문으로 쓴 단편모음집 ‘칸딘스키의 체류’ 가운데 ‘해바라기’는 ‘아시아위크’ 최고의 단편소설 100선에 오를 만큼 일찍이 주목받은 작가다. 졸업 후 신문기자-자유기고가로 활동하면서 쓴 첫번째 장편 ‘바람의 집’(98년 인터링크사, 2000년 뉴욕 펭귄 출판에서 재출간) 역시 ‘안네 프랑크의 일기’에 비교되며 현지 언론의 호평을 받았다. 이 책은 지난 5월15일 ‘파란 대문 집 아이들’이라는 제목을 달고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었다.

이방인 아닌 이방인들의 소설에 대해 ‘토종’ 미국인들은 호기심 반, 흥미 반의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한국계 작가들의 소설은 우리에게 단순한 흥미 이상의 무엇을 불러일으킨다. 만주와 남-북한, 미국을 넘나드는 파란만장한 생애 끝에 끝내 북한에 남겨둔 큰아들을 찾는 할머니(‘쌀이 있는 정물화’)나 군대시절에 만난 정신대 여인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주인공(‘제스처 라이프’) 등의 삶은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온다. 미아 윤의 ‘파란 대문 집 아이들’은 영어로 썼다는 것 외에, 배경은 서울이고 주인공은 모두 한국인이다. 1960~70년대 서울의 가난하지만 따뜻하던 삶의 표정들을 잘 묘사하였다.

이처럼 영어 독자들을 위해 영어로 썼지만 내용은 한국적인 이 작품은 미국문학일까 한국문학일까. 물론 영어로 쓰고 미국에서 출판하였으니 이 작품들은 미국문학의 범주에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로 썼고, 작가 역시 한국계라면 이 작품들은 동시에 한국문학의 한 갈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홍기삼 교수(동국대·국문학)는 지난 95년 ‘한국 현대문학 50년’ 심포지엄에서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가장 중요한 조건은 재외동포들의 본질이야말로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있다. 적어도 다른 문화권이나 다른 민족으로 동화하지 않는 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한국인이며 동포들이다. 그러니까 그들의 문학을 우리 문학의 특수한 영역으로 수용하는 정도는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미국 문단에 뜨는 별 ‘한국계 작가들’
그러나 토론자로 나선 김용권 교수(서강대·영문학)는 “홍교수 스스로 ‘문학이 언어예술인 한 그 작품을 어떤 언어로 썼느냐는 것은 문학의 본질적 조건에 해당된다’고 하고 그 말에 상치하는 주장을 편다”고 반박했다. 결론적으로 “재외 한국인 문학은 언어 귀속주의 원칙에 따라 각 작품이 쓰인 언어의 문학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김승희 교수(서강대·국문학)도 “원형질이 다르다”는 말로 한국계 미국인과 한국문학의 관계를 표현했다. 이들과 한국문학 사이에는 언어와 의식의 차가 존재한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들에게 한국은 부모의 나라지 내 나라는 아닙니다. 그 차이는 일견 작아보이지만 심연처럼 깊습니다.” 김교수는 이들의 작품을 한국문학의 범주보다 세계문학 속의 한 갈래로 보기를 제안했다.

굳이 범주를 나눈다면 한국계 미국인 작가들은 미국문학의 일원일 수밖에 없다. 김승희 교수의 말처럼 언어와 의식의 차이는 뛰어넘을 수 없도록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영어로 작품을 쓰는 한국계 작가들의 수가 늘었으며, 수준도 점차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적잖은 작품들이 가족사나 정체성 확립 등 개인적인 고백에 머물러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를 뛰어넘은 서사적인 작품들도 등장하고 있다.

정신대 문제를 어느 일본계 한국인의 기억 속에서 원숙하게 그린 이창래씨의 ‘제스처 라이프’는 8만 부 이상 팔리기도 했다. 현재 미국에서 활약하는 한국계 작가들 대부분이 30대의 젊은 나이라는 것도 앞으로의 가능성을 점치게 한다. 한국문학-미국문학을 따지기 전에 지금 필요한 것은 경계선에 선 그들을 어떤 이름으로든 우리가 끌어안아 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주간동아 2001.05.24 285호 (p72~73)

< 전원경/ 자유기고가 winniejeon@yahoo.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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