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5

2001.05.24

아줌마-아저씨들 팬클럽 바람났네

음반 구입, 콘서트장 열광 10대 못지 않은 활동 … 대중음악 편식증 해소 ‘긍정적’

  • < 신을진 기자 happyend@donga.com >

    입력2005-01-28 13: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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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줌마-아저씨들 팬클럽 바람났네
    지난 4월 초 연세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이문세 콘서트에서 3명의 주부가 이문세의 춤을 따라 추다가 혈압이 올라 그 자리에서 실신한 일이 있었다. 10대 팬들이 공연장에서 스타에게 열광하다 쓰러지거나 기절하는 일은 흔한 일이어서 “그러려니…”라고 하지만 이 일을 두고 “아줌마들이 웬 주책이람” 하고 혀를 끌끌 차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공연장에 잘 가지 않는 사람들은 모르는 사실. 요즘 공연장에서 환호하고 열광하는 것은 10대뿐만이 아닌 ‘아저씨’ ‘아줌마’들도 많다. 예전에 10대 팬들 사이에 드문드문 끼여 앉아 손뼉도 안 치고 팔짱만 낀 채 어색하게 앉아 있던 중-장년층 관객들이 이제 집단적-조직적으로 그룹을 형성해 야광봉을 흔들고 괴성을 질러대며 누가 보든 상관없이 노래하고 춤추며 적극적으로 공연을 즐긴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막춤’일지라도 공연장에서 만나는 이들의 얼굴에선 행복한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극성 주부팬 ‘빠줌마’ 실신하기도

    중-장년층 음악팬들은 예전의 포크가수나 원로가수들의 공연장을 많이 찾지만, god 등 주로 10대가 좋아하는 인기가수에 열광하는 30, 40대 팬들도 부쩍 늘었다. 아이를 데리고 공연장을 찾는 주부팬들의 모습도 심심찮게 눈에 띄고, 아줌마닷컴(www.azoomma. com) 등 주부들을 상대로 한 여성 포털사이트에는 조성모, 홍경민, 유승준, 차태현 등 젊은 가수들의 팬클럽이 결성되었다. 가수를 사랑하지만 맘껏 표현하지 못하고 10대 팬들이 만든 사이트를 기웃거린 이들이 인터넷이라는 ‘열린’ 매체를 이용해 당당하게 자신들의 공간을 만든 것. 이들은 10대 못지 않은 열성으로 함께 콘서트를 보러 다니고 음반을 사 모으며 열심히 정팅(정해진 시간에 모여 하는 채팅)을 한다. 이런 주부팬들을 일컬어 ‘빠줌마’ ‘빠누나’라고도 하는데, 나이 어린 극성팬을 말하는 ‘빠순이’가 변형된 말.

    god 팬사이트 게시판에 글을 올린 한 40대 주부는 “딸아이가 자기보다 god를 더 좋아한다고 투정을 부린다”며 “이 나이에 한 가수의 팬이 된다는 건 참 험난하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들 중에는 “스타에 열광하는 자녀들을 이해하기 위해 발을 디뎠다가 그만 나도 매료되어 버렸다”고 고백하는 사람도 있고 “비틀스 팬들은 당당한데 왜 우리는 부끄러워해야 하나. 이젠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나는 쭛쭛쭛의 팬이다’고 밝힐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나이 어린 네티즌들을 위한 인터넷 게임,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 수 없는 모호한 CF, 가사조차 알아들을 수 없는 음악 등 10대가 아니면 대중문화를 즐기지도 못할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그동안 소외되었던 중-장년층의 ‘커밍아웃’이 시작되었다고 할까. 아직 수는 적지만 이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에 대한 관심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 집단으로 강력하게 떠오른다. 조성모의 ‘가시나무’에서 최근 발표된 핑클의 ‘당신은 모르실 거야’까지 이어지는 리메이크 앨범의 붐은 신세대 가수들조차 30∼40대를 큰 시장으로 본다는 증거다. 전문가들은 이런 중년문화의 붐이 댄스뮤직만이 살아 남은 우리 대중음악의 편식증을 고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지난해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성황리에 개최된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양희은의 ‘포크 Big 4 콘서트’를 기획한 공연기획사 라이브플러스의 김재인씨는 “평소 공연장에 잘 가지 않는 중-장년층 관객들이 보여준 폭발적인 관심에 놀랐다”면서 “중년문화의 부재는 수요자가 없는 것이 아니라 공급이 부족한 것이 문제다. 중년들의 문화에 대한 욕구는 높은데 이를 개발하는 공급자가 부족하고 천편일률적인 마케팅으로 이들을 소외시킨다”고 지적한다.

    “내 젊은 시절과 함께했던 음악을 다시 듣고 싶다. 땀나게 달리고 앞만 보고 살아왔지만 이제는 나도 즐기며 살고 싶다”고 말하는 중-장년층 음악팬들은 누구나 그들이 마음놓고 참여할 수 있는 공연이 자주 열리기를 바란다. 이들은 10대와 달리 ‘한번 팬은 영원한 팬’ 이라는 성격이 짙어 훨씬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문화를 유지해 가는 것이 특징. 스타와 함께 세월을 느끼며 가수보다는 그의 음악세계를 사랑하는 진정한 마니아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아줌마-아저씨들 팬클럽 바람났네
    최근 문화연대가 발족한 ‘대중음악개혁을 위한 연대모임’(이하 대개련)에는 조용필, 이승환, 서태지 등의 팬클럽이 결합했는데, 이들 팬클럽 멤버는 주로 20대 후반부터 30~40대 음악팬들이 많다. 이들은 대개련과 함께 본격적인 시민운동, 음악소비자운동을 선포하고 가요순위 프로그램 폐지를 촉구하는 서명운동 등 한국 대중음악의 문화환경을 개혁하기 위한 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PC통신 천리안에서 조용필 팬클럽 ‘필21’을 운영하는 박병헌씨(31)는 “한 가수의 팬으로서, 음악을 사랑하는 애호가로서 대중음악 개혁의 과제를 함께 고민하고 작은 일이나마 실천하기 위해 이 운동에 동참하였다”고 말한다. 얼마 전 지방에서 열린 조용필 콘서트에 버스를 대절해 단체로 내려간 팬클럽 회원들은 현장에서 서명을 받고 홍보물을 나눠주면서 대개련의 활동을 알리고 팬들의 동참을 호소했다고.

    “그동안 열성팬들의 팬덤현상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지만 성인 팬들이 주축이 된 음악소비자운동은 우리 대중문화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그동안 시민단체가 주도한 운동에 이들 음악팬이 가세함으로써 대중음악 환경을 개혁하는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문화연대 사무차장 이동연씨(문화평론가)는 말한다.

    점잖은 어른이라고,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표현하지 못한 시대는 지났다. 노래로 젊은 날의 열정을 되찾고 세대 간 장벽을 허물며 대중음악의 현실을 함께 고민하는 이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건강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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