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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험한 네티즌 이젠 몸조심!

법원, 사이버 공간의 비방 글 명예훼손 인정… “게시판 운영회사도 책임”

  • < 이정은/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lightee@donga.com >

입 험한 네티즌 이젠 몸조심!

입 험한 네티즌 이젠 몸조심!
인터넷이 ‘속도’라면 법은 ‘브레이크’다. ‘생각의 속도’로 움직여온 인터넷에 ‘법의 브레이크’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오프라인상에서 적용한 각종 질서와 규범을 온라인에도 본격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온라인상에서의 저작권 침해와 명예훼손 논란에 대해 법이 본격적으로 끼여들어 ‘해결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최근 1년 사이 펼쳐진 ‘인터넷 3차 대전(大戰)’은 ‘인터넷과 법’의 관계와 운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 ‘3차 대전’의 한가운데에 가수 박지윤이 있다. 그래서 이 사건은 ‘박지윤 사건’이라고도 한다. 사건은 1998년 12월 안모씨(여)가 하이텔 공개게시판에 가수 박지윤을 비방하는 글을 올리면서부터 시작된다. 당시 박씨의 팬클럽회원이던 함모씨(29)는 99년 1월 “형법상 모욕죄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에 해당하므로 이런 글을 계속 올릴 경우 고소하겠다”는 경고성 글을 같은 게시판에 게재했다.

함씨는 명문 K대 법대생. 발끈한 안씨는 함씨를 상대로 ‘돈으로 매수된 박지윤의 팬’ ‘반미치광이 광적 상태에 빠진 똥파리 팬’ 등의 내용을 올리기 시작했다. 함씨는 ‘고소할 테니 주소를 알려달라’ ‘법을 모르는 무식하고 비굴한 사람’ 등의 글로 맞받아쳤다.

말싸움이 격화하면서 안씨가 퍼붓는 독설의 강도도 세지기 시작했다. ‘함○○, 너 안 되겠구나’ ‘박지윤에 대한 병적 열광상태에 집착한 저질 스토커’ ‘연예인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자기 과신과 우월성에 빠진 고시생’ 등의 제목과 글이 게시판에 올랐다. 조회 수가 최고 493회까지 이르렀다.



함씨는 지난 99년 3월 안씨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안씨를 상대로 3000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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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차례의 뜨거운 법정 공방이 오간 끝에 서울지법 동부지원 민사7단독 재판부는 2000년 5월 “사이버 공간에서도 명예훼손이 인정된다”며 200만원의 배상판결을 내렸다. 온라인에서 법이라는 제동장치의 존재와 필요성을 정식으로 인정한 것이다. 함씨는 액수가 너무 적다며 항소했지만 기각되어 이 판결은 확정되었다. 함씨의 ‘승리’로 사건은 마무리되는 듯했다.

이후 안씨의 반격으로 ‘제2차 대전’이 시작되었다. “함씨의 글 역시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함씨를 상대로 5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것. 수차례 법정공방 끝에 마무리한 법정싸움은 형식상 안씨의 패배였다.

그러나 내용상으로는 함씨의 명예훼손 사실을 인정하였다. 재판을 맡은 수원지법 안산지원 오기도 판사는 “함씨 역시 안씨의 명예를 훼손하고 협박했다”고 인정했다. 다만 “함씨가 안씨를 상대로 낸 1차 소송에서 청구액의 극히 일부만을 인정한 것으로 볼 때 이미 함씨의 명예훼손 책임도 반영하였으므로 2차 소송에서 별도로 함씨에게 배상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밝혔다. 즉 함씨가 3000만원을 청구한 것에 대해 그 15%에 해당하는 200만원만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은 함씨의 잘못도 이미 충분히 참작하였다고 보인다는 취지였다.

재판부는 함씨의 글 역시 컴퓨터 통신 문화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를 넘는 모욕과 협박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함씨가 지나친 표현을 써서 안씨의 감정을 자극, 결과적으로 대응의 강도를 높인 사실도 인정했다. 따라서 2차 대전에서는 실질적으로 안씨가 판정승을 거뒀다고 볼 수도 있다.

‘법대생’ 함씨는 다시 ‘3차 대전’을 시작했다. 안씨의 글을 게시판에 실은 한국통신 하이텔을 상대로 다시 3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함씨가 사건 초기 하이텔측에 안씨의 글을 삭제해 달라고 요구했는데도 하이텔이 안씨에게 경고 메일만 보냈을 뿐 이를 6개월이나 방치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재판 과정에서 하이텔측은 “여론 조성을 허용한 게시판에서는 특별한 욕설이 들어 있지 않는 한 글의 삭제가 불가능했다”고 반박했다. 함씨는 1심에서 패소했다.

그러나 서울지법 민사항소6부(민일영 부장판사)는 지난 4월27일 PC통신 운영자도 게시물 관리에 책임이 있다며 1심을 깨고 “하이텔은 함씨에게 10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하이텔사가 명예훼손성 글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의무를 위반하고 무려 6개월 가량이나 문제의 글들을 방치해 함씨에게 커다란 정신적 고통을 입힌 만큼 이를 배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즉 단순히 통신공간을 제공하는 운영자라 하더라도 ‘명예훼손 사실을 알고 있었거나 알 수 있던 상황’이었다면 그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번 판결은 인터넷에서의 ‘표현의 자유 침해’인지, ‘명예훼손의 적절한 통제’인지를 놓고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일부에서는 “인터넷상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자를 보호하고 온라인상의 질서를 세워야 한다”며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반면, 다른 한 쪽에서는 “정당한 비판까지 통제하여 언로가 막힌다”며 주장하기 때문이다. 통신업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민부장은 사법부의 엘리트 판사인데다 이 사건 판결을 앞두고 인터넷 관련 법규와 세계 각국의 판례 이론을 철저히 연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그의 부인(박선영·서울대 법대 교수)이 ‘헌법상 표현의 자유’에 관한 전문가여서 그의 판결은 법조계에서 상당히 비중 있게 받아들여진다.

인터넷에서의 법의 적용과 한계를 둘러싼 3차 대전의 결과는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할 것으로 보인다. 어떤 식으로 확정이 되든 가수 박지윤은 인터넷과 법의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이름으로 남을 전망이다.





주간동아 2001.05.24 285호 (p50~51)

< 이정은/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lightee@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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