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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비리 前국방부 고위인사도 개입”

국방부 검찰관 A씨 증언 … “98년 부하 직원에 지시, 소환조사 없이 수사 중단”

  •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

“병역비리 前국방부 고위인사도 개입”

“병역비리 前국방부 고위인사도 개입”
박노항씨가 검거되었지만 병역비리의 ‘몸통’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다. 5월14일 발표한 검찰의 중간수사 발표에 따르면 박노항씨는 20여 건의 면제청탁을 알선한 것으로 되어 있다. 박씨에게 돈을 주고 군대를 안 간 사람 중 눈에 띄는 이는 연예인, 교수, 기업가, 변호사 가족 정도다. 현역 정치인은 한 명도 없고, 군 인사도 없다. 박노항 사건에 대한 국민의 요구는 사회특권층의 불법 병역면제를 빠짐없이 단죄해 사회정의를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소가 가능해 보이는 면제 청탁자들의 면면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박씨의 ‘명성’에 걸맞지 않아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은 박씨가 병무청 내에서 일상적으로 ‘현역 면제장사’를 했던 당시의 군 내부 환경에 대해 의혹을 갖고 있다. 박씨에게 ‘건수’를 물어다준 세력, 박씨의 범죄행위를 돕거나 방관한 세력, 박씨와는 별개로 또 다른 구조적인 불법 면제망을 쳐놓은 세력이 군 내에 포진해 있었지 않느냐는 것이다. 병역비리 수사 착수 이후 2년 반에 걸친 국방 당국의 수사에도 불구하고 박노항 사건을 담당한 일부 수사 관계자들은 이런 의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그 예로 군 내부에서 상하좌우로 얽혀 서로 봐주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았다면 박씨가 어떻게 그렇게 대담하게 활개칠 수 있었겠느냐고 의심한다.

이런 가운데 병역비리 사건을 수사한 바 있던 국방부 검찰단 소속 검찰관 A씨는 ‘주간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공개하지 않은 새로운 병역비리 수사결과를 확인해 줬다. 그는 신분상의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익명으로 처리해 달라고 기자에게 요청했다.

기자는 A씨와 인터뷰하기 전 ‘98년 당시 국방부 고위급 인사 B씨에 대해서도 국방부 검찰단(당시는 국방부 검찰부)이 내사를 벌여 병역비리 지시 혐의를 포착했다’는 이야기를 국방부 주변에서 들었다. 기자가 “그런 사실이 있느냐”고 묻자 A씨는 “그 얘기는 사실”이라고 답했다. B씨는 당시 국방부의 수뇌부에 있던 인물이다. A씨의 증언은 병무비리를 모두 하급군인이 저질렀다는 것을 뒤엎는 발언이다.

1차 병역비리 수사팀은 98년 말부터 박노항 당시 원사의 전방위적 병역비리혐의를 잡게 되었다. 당시 1차 수사팀은 ‘빛나는 전과’를 거뒀다. 현재 검찰이 박노항씨를 상대로 확인작업을 벌이는 150여 건의 병역비리 의혹사건 중 130여 건을 1차 수사팀이 포착한 것이다. 병무비리 수법에 통달한 병무비리 전과자 김대업씨의 적극적인 협조와, 군의관들에게 면책약속을 해줌으로써 그들에게서 무더기 자백을 받은 것이 1차팀의 수확이 컸던 결정적 요인이었다. 이후 전과자를 활용하고 면책약속을 한 점에 대해 기무사에서 강력한 반발이 터져나온 가운데 1차 수사팀은 병무비리 수사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어지는 병무비리 수사에서 1차 수사팀이 가장 사심없이, 열성적으로 수사에 임했다는 것은 군 내부의 대다수 인사들이 인정하는 부분이다.



A씨에 따르면 1차 수사팀은 수사를 진행하면서 수사 대상자의 폭을 크게 확대했다. 병무청 직원 수십여 명이 병무비리 혐의로 무더기 적발된 것도 이런 과정에서 얻은 수확이었다. 그러던 중 B씨의 비리혐의를 발견하였다는 것이다. 다음은 A씨가 밝힌 내용이다.

“수사는 군의관들에게 자백을 받아내면 관련자료를 수집해 군인들을 심문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그런데 조사를 받던 사람 중 한 명이 수사하던 것과는 별건으로 진술했다는 것이다. ‘B씨가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의 부탁을 받고 부하직원에게 그 지인의 아들과 관련한 병역비리를 처리하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이었다. 구체적으로 수사를 벌인 결과 그 같은 혐의가 인정되었다.”

이러한 결과를 놓고 수사팀은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B씨가 돈을 받거나 준 사실이 포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법처리가 곤란했다는 것이다. 단지 상관으로서, 병무비리를 지시했다는 것을 어떻게 보는지가 논란의 쟁점이었다. 그러나 수사팀은 모른 채 덮어둘 수는 없다고 보고, B씨의 혐의를 자세히 기록한 보고서를 작성해 상부에 보고했다. “B씨는 98년 10월께 부하직원에게 병무비리를 지시했는데 바로 그 ‘시점’이 문제가 되었다. 그때는 병무비리 사건이 세상에 막 터져나와 국민의 분노가 들끓던 때였다. 바로 그런 시기에 누구보다 모범을 보여야 할 사람이 태연하게 그런 지시를 했다는 것을 당시의 수사팀은 납득할 수 없던 거다”(A씨). 1차 수사팀은 B씨를 소환조사하지는 않았으며 이후 수사를 중단했지만 B씨와 관련한 보고서는 청와대에도 보고되었다고 한다. B씨는 현재 당시의 자리에서 떠난 상태다.

“병역비리 前국방부 고위인사도 개입”
박노항씨가 검거된 이후 세간에선 정치인 등 사회 지도층의 병무비리는 쉽게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많았다. 그 이유는 이른바 VIP들이라면 박노항 정도의 급을 직접 상대하지 않으며 그보다 훨씬 더 안전한 윗선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돈이 오가지도 않으며 설령 돈 거래가 있더라도 드러날 확률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A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B씨의 사례는 이런 세간의 의혹을 뒷받침하는 사례가 될 수 있다.

국방부 1차 수사팀에 참여한 C씨는 박노항씨를 중심으로 여러 군 인사들이 서로 얽힐 개연성을 이렇게 제시했다. “서울지방병무청은 전국 신검대상자의 절반을 처리했다. 굉장한 규모다. 그런데 서울지방병무청 파견 헌병 수사관이던 박노항씨는 서울지방병무청 내 병무비리를 완전 장악하였다. 박씨는 병무청과 병원 내 군의관, 민간병원을 연결하는 병무비리의 ‘논스톱 시스템’을 구축해 놓아 전화 한통으로 병무비리가 즉각 이뤄졌을 정도다. 심지어 그를 통하지 않고 이뤄진 병무비리에 대해서도 그는 ‘통행세’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현역면제 한 건의 공식가격은 4500만원이었다. 박씨는 숨어서 병무비리를 한 것이 아니라 내놓고 한 것이다.”

C씨는 기무사와 헌병대가 의심받는 이유를 ‘지방’에서 찾았다. “지방의 병무청이나 국방부 관할 병원에도 헌병대-기무사 요원들이 각종 비리를 감시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박씨의 경우처럼 병무비리를 수사해야 할 요원들이 병무비리 브로커가 되면 청탁자들은 마음놓고 청탁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박씨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지방에선 헌병대-기무사의 일부 요원들이 병무비리의 브로커로 활동하지 않았느냐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국방부 1차 수사팀은 실제로 지방 근무 기무사, 헌병대 요원 20여 명에 대한 병무비리 혐의를 포착했다. 이후 바뀐 수사팀에 의해 이중 일부는 사법처리되었다. 병역비리 수사가 시작되기 전 13%이던 면제율은 수사를 시작한 뒤 5%로 떨어졌다. 1차 수사팀 관계자는 “면제비율의 급락은 역설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라고 반문한다.

헌병대 수사관들이 도주중인 박씨와 만나거나, 수사상황을 일러준 사실도 드러났다. 박씨 검거 이후엔 육군 헌병단장이 “병무비리 수사로 사기가 떨어진다”고 국방장관에게 ‘읍소‘하기도 했다. 1차 수사팀의 수석검찰관 이명현 소령은 군내 엄한 위계질서가 있음에도 “기무사의 방해로 병무비리 수사가 제대로 되지 못했다”는 소신을 지금도 굽히지 않는다.

이에 대해 국방부 대변인실은 5월14일 기무사는 병역비리 수사 초기단계에서부터 최대한 협조했으며, 99년 국방부 감사관실의 집중감사에서도 기무사 외압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반박했다. 이날 검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동안 국방부 검찰단도 “합조단의 체계적 비호 혐의는 드러난 바 없고 관련자의 개별적 혐의만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국방부의 공식입장은 현재 박노항씨를 도와줬거나 병무비리에 연루된 군인사는 더 이상 없다는 것이다.

결국 박노항 검거는 2년 반을 끌던 수사를 일신하는 새로운 출발이 아니었다. 오히려 과거의 의혹을 봉합하는 통과의례가 되는 듯하다. 지금 병역비리 수사는 B씨의 행적 등 숱한 의문부호를 남긴 채 종착역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주간동아 2001.05.24 285호 (p24~26)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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