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3

2001.05.10

스타 작가들 왜 죽쑤나

  • <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

    입력2005-01-25 14: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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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 작가들 왜 죽쑤나
    이상문학상’이라는 확실한 시장성을 담보한 제도와 신경숙이라는 스타 작가의 결합으로 올해 2월 출간한 ‘부석사’는 큰 기대를 모았지만, 월별로 집계하는 한 도매상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3월 79위, 4월 64위에 머무르는 등 형편없는 판매를 기록했다. 또 다른 스타 작가 공지영이 수상한 21세기문학상 수상작품집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는 아예 도매상 베스트셀러 순위 500위 안에 오르지도 못했다.

    최근 은희경의 ‘마이너리그’가 약진하는 듯 보이지만 도매상에서는 벌써 하향세로 돌아섰다.

    지난해 말 나란히 출간한 ‘상도’와 ‘아주 오래된 농담’의 선전이 돋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상도’는 IMF 위기 이후 진정한 ‘상업의 길’이 필요하다는 시대적 인식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여기에 시대를 가리지 않고 인기 있는 출세담, 역사적 인물을 현재적 문제의식으로 적절하게 표출한 작가의 상상력과 결합하여 머지않아 밀리언셀러 반열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아주 오래된 농담’은 ‘돈’과 ‘부자’라는 말이 사회적 화두로 등장한 시대적 분위기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소설이다. 이 소설에는 돈을 둘러싼 가족 간의 암투로 인해 비극적으로 죽어가는 한 가장과 가족들의 평안을 위해 스스로 죽어가는 다른 가장이 등장한다. 이 두 죽음을 통해 돈으로 인해 보이는 모든 치부를 다 드러낸다.

    이 소설들은 경제`-`경영서가 유행하고 ‘돈’과 ‘부자’라는 말을 사회적 컨셉트로 끌어올린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로버트 기요사키외)와 같은 책의 성공에 힘입은 바 크다. 따라서 두 소설은 시대적 분위기에 맞춘 ‘기획소설’에 가깝다. 비록 원숙한 작가들의 상상력과 탁월한 글 솜씨가 돋보이는 작품들이지만 시대적인 분위기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았다면 이 정도의 성공은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들의 인기를 가지고 우리 문학의 가능성을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소수의 메가톤급 스타 작가가 존재해 시장이 일시적으로 흥행을 이룬다 하더라도 다양한 작가의 여러 작품을 출간하지 않으면 궁극적으로 의미가 없다. 어쩌면 스타 작가가 없는 상태에서 여러 작품을 출간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소설시장은 시장을 주도하는 스타도 없으면서 다양한 문학작품 출간도 이뤄지지 않아 처참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질 뿐이다.



    그러면 왜 한국 문학은 스타 부재로 급전직하하는가. 일단 인터넷으로 대표하는 전자미디어의 등장으로 인한 엄연한 ‘문명사적 전환’의 추세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역사가 진보한다는 발전론을 추구하던 지난 20세기와 달리 21세기에 대중은 잘게 쪼개진(파트워크화한) ‘사람’과 ‘사물’과 ‘사건’에 대한 정보만을 즐기면서 소설과 같이 인생의 포괄적인 의미를 보여주는 문화상품의 직접적인 소비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어느 시대고 현실은 소설보다도 재미있게 마련이었다.

    여기에 ‘한국적 특수상황’이 우리 문학을 더욱 위축시킨다. 첫째, 작가와 출판사들이 위험한 ‘한건주의’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잘 팔리는 작품 한두 편이면 바로 스타가 된다는 안일한 발상이다. 게다가 지난 세기에는 문학의 어느 편에 서는지에 따라 스타 시스템이 스타를 만들기도 했다. 우리 작가들은 그런 시스템에 안주하다 보니 스스로 소설을 ‘건축하는 기술’을 키우지 못했다.

    지금 이 시대에 대중의 관심을 끄는 신화, 상징, 서사 등에 대한 기초공부를 제대로 한 작가가 과연 얼마나 될까. 사회면을 장식하는 말초적 사건들을 감각적으로 얼기설기 엮어놓은 것만으로 서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작가들은 자기 체험과 가족사를 벗어나면 작품이 되지 않는다. 천편일률적으로 빠져드는 것이 연애며 불륜이며 역사다. 이문구, 황석영, 김주영 등 중견작가들처럼 자기 삶의 바깥마저 포용하는 능력이 애초부터 없다. ‘새의 선물’에서 자신의 성장과정을 위악적으로 보여주어 많은 가능성을 보여준 은희경은 이번에 발표한 ‘마이너리그’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58년 개띠 남자’들인 다른 사람의 이야기이다 보니 작품의 밀도가 후반부에서 크게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둘째, 우리 작가들은 스스로 역사와 문화의 중심에 서 있다는 자각이 부족하다. 우리 사회에서는 작가의 ‘평판’이 매우 중요하다. 작가들은 작품 속에서 세상을 읽는 코드를 다양하게 보여줌으로써 평판을 쌓아간다. 그러나 작년 이른바 ‘e-북 열풍’이 거세게 불었을 때 작가들이 대중에게 보여준 비전은 무엇이었는지 따져보자. 마치 금방이라도 e-북 세상이 열릴 것처럼 e-북 인세율은 50%여야 한다거나 원고료는 3만원 이상이어야 한다는 등 세상 돌아가는 것과 담쌓은 듯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디지털 기술을 즉각 자본과 결합시켜 상상하는 작가들의 이런 저급한 인식 수준도 소설을 외면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셋째, 작가들 스스로 팔리는 소설을 만들지 못해 안달하는 모습도 걱정스럽다. 이들은 작가적 자존심을 팽개치고 이른바 ‘문학적 성골집단’이라는 몇몇 주요 출판사들과만 일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이리저리 옮겨다니면서 책을 낸다. 그래서 출판사는 특정작가에게 집중투자하는 것을 꺼리는 풍토가 되었다. 작가가 출판사에 연연하는 것은 그만큼 이속이 밝다는 것이고, 한편 작품에 자신이 없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넷째, 굶어죽을 각오로 진정한 작품 하나라도 남기겠다는 각오가 있는가. 잡문청탁을 목을 빼 기다리고 각종 문화센터 강의에 분주하다. 물론 생계를 마련해야 할 입장을 이해 못하는 바 아니지만, 작가라는 타이틀을 내세워 작품 대신 엉뚱한 데 에너지를 쏟아붓고 그러고도 작품을 잇달아 발표하니 그 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다섯째, 좋은 작품에 대한 안목을 키워야 할(주로 강단의) 문학평론가의 역할 부재를 지적하고 싶다. 평론가들 스스로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적이 없어서인지 여전히 ‘교과서적 문학’만 주장한다. 이들의 시대착오적이고 어설픈 시각이 오히려 작가들을 죽이고 결국 독자를 소설에서 멀리하게 만든다.

    우리 문학에 희망은 없는가. 현재로서는 그렇게 보이지만 김영하, 김종광, 한창훈, 전성태 등은 출판계나 문단 일각에서 가능성 있는 작가들로 꼽힌다.

    그러나 진정 새로운 스타 작가는 앞에서 열거한 한계 등을 극복한, 지금까지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전혀 의외의 인물일 가능성이 무척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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