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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사각지대 터키 감옥 ‘죽음의 단식 행렬’

통제 쉬운 작은 감방 이감에 반발 … 19명 이미 사망, 60명 위중

  • < 김재명 / 분쟁지역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

인권 사각지대 터키 감옥 ‘죽음의 단식 행렬’

인권 사각지대 터키 감옥 ‘죽음의 단식 행렬’
올해 2월부터 터키는 IMF(국제통화기금) 긴급구제금융이라는 국가 위기 상황에 빠져 있다. 터키의 공식화폐 리라는 금융위기로 그 가치가 4월 현재 44%나 떨어졌다. 인구 6600만의 터키는 대량해고로 이어지는 IMF 처방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데모로 조용할 날이 없다. 터키 전국의 주요 도시들이 최루탄과 물대포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시위로 어수선하다. 그들은 외친다. “IMF는 물러가라. 터키는 우리의 것이다.” “파산한 은행 살리려 말고 노동자를 구하라.”

생존의 벼랑에 몰린 일부 사람들은 이슬람의 금기인 자살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또 다른 비극적 사건들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다. 죄수들을 격리하는 이른바 F형 새 감방으로 옮겨가는 걸 반대하며 옥중에서 단식투쟁을 하는 죄수들이 하나둘씩 죽어가는 상황이다. 지난해 11∼12월에 시작한 단식으로 4월28일 현재 19명이 죽었다. 닷새 사이에 7명의 희생자가 줄을 이었다. 사망자 숫자는 시간이 갈수록 불어날 게 뻔하다. ‘인권 사각지대’로 악명이 높은 터키 감옥에서 이런 비극은 전에도 일어났지만, 지금 상황은 가장 심각하다.

수감자 가족도 단식 … 2명 숨져

20대 초반의 미국 청년이 이스탄불 공항에서 마약을 몸에 지니고 비행기를 타려다 붙잡힌다. 그는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터키 감옥에 갇힌다. 거의 5년이 흐른 시점에서 그는 다시 재판에 회부되어 장기형에 처해지자 절망 속에서 탈옥을 꿈꾼다. 고문이 일상이다시피 한 터키 감옥의 열악한 환경 탓에 거의 폐인이 된 이 미국 청년은 그러나 극적으로 탈옥에 성공한다. 그리고 마침내 뉴욕 존 F. 케네디 공항에서 그리던 가족 품에 안긴다.

인권 사각지대 터키 감옥 ‘죽음의 단식 행렬’
이는 70년대에 실제로 벌어졌던 얘기로, 독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책으로 또는 영화로 보았을 ‘심야 특급’(Mid-night Express)의 내용이다. 터키 감옥은 예나 지금이나 ‘인권 침해지대’라는 악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불렌트 에제비트 총리가 이끄는 현 터키 정권은 자신의 민주좌파정당과 극우파인 민족행동당(MHP)의 연립정부다. 터키의 실제적인 힘은 민간 각료와 군부 실세의 협의기구인 국가안전평의회(National Security Council)란 이름 아래 군부가 쥐고 있다. 국제적인 인권 감시단체인 ‘인권감시’(Human Rights Watch)의 최근 보고서는 “터키 군부는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는 세력”이라고 비난한다(상자 기사 참조).

터키는 과격 반정부 이슬람 무장단체, 마오쩌둥주의자들을 비롯한 극좌 단체, 그리고 쿠르드족 분리주의자들의 활동을 엄격히 다스려 왔다. 이번 단식농성을 이끌어온 것은 혁명인민해방전선(당)과 터키노동자공산해방군의 두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터키의 인권단체인 인권재단(IHV)은 “단식 농성자 가운데 현재 60명의 목숨이 위태롭다”고 전한다.

터키 감옥들은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에서처럼 기숙사처럼 지어졌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10월 터키 당국이 죄수들을 기숙사형 감옥에서 새로 지은 1인용 또는 3인용 작은 감방(F형 감방)으로 옮기려 하자, 수감자들이 극렬히 저항한 데서 비롯한다. 터키 당국은 “현재의 기숙사형 감옥이 좌익 테러분자들과 쿠르드 분리주의자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워 인질사건과 폭동이 잦았다”는 판단 아래 수감자 통제와 감시를 쉽게 하려고 지은 새 감방으로 수감자들을 옮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수감자들은 자기들이 작은 새 감방으로 흩어져 옮겨가면 “가뜩이나 열악한 감옥 내 인권상황이 더 나빠질 뿐만 아니라 더욱더 당국의 박해를 받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몇 주 간에 걸친 협상이 물거품으로 끝난 지난해 12월 터키 당국이 강제로 죄수들을 옮기려 하자, 터키 전역 20개 감옥에서 나흘 동안 처절한 싸움이 벌어졌다. 그때 수감자 30명과 간수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수감자들은 진압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감옥에 불을 질렀고 이 때문에 희생이 더 컸다. 그때를 앞뒤로 단식농성을 시작한 것이다. ‘F형’으로 생긴 신형 감방으로 옮겨진 1000명쯤의 수감자들 가운데도 단식 농성자들이 있다.

인권 사각지대 터키 감옥 ‘죽음의 단식 행렬’
IHV에 따르면, 현재 1000명 가량의 죄수가 비타민과 설탕물을 먹는 수준의 단식 농성을 벌이는 가운데 250명쯤은 물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은 의사들의 도움조차도 거절하고 있다. 하지만 터키 당국의 발표로는 현재 100여 명이 단식중이고 14명이 숨졌다. 아무튼 사망자는 날이 갈수록 불어날 조짐이다. 이 가운데는 여자 수감자들도 둘 포함되어 있다. 혁명인민해방전선(당) 요원인 파트마 에르소이는 171일 동안의 단식 끝에, 터키노동자공산해방군 소속인 네르기스 쿨메즈는 단식 투쟁 114일 만에 각각 숨을 거두었다. 일부 수감자 가족들도 바깥에서 동조 단식 농성 중이고 이 가운데 2명의 여성이 숨졌다. 한 사람은 수감자의 부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수감자의 누이이다.

현재 터키 감옥에는 모두 7만2000명의 죄수가 갇혀 있다. 그 가운데는 정치범들도 상당수 있다. 지난 99년 체포되어 사형선고가 내려진 쿠르드노동자당(PKK)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도 그 가운데 하나다. 오잘란은 터키 내 1200만 쿠르드족의 분리주의 운동을 펴면서 지난 84년 이래로 3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혐의를 받아왔다. 이런저런 죄목으로 붙들린 정치범들을 포함한 죄수들로 터키 감옥은 그 수용능력을 넘어선 지 오래인, 말 그대로 포화상태다. 그래서 지난 4월14일 터키 의회는 특별사면법을 통과시켜 정치범 등 일부 수감자들을 뺀 대부분의 죄수들의 형기를 10년씩 깎아주도록 했다. 이럴 경우 수천 명이 즉시 풀려나, 그나마 감옥의 숨통을 터줄 것으로 보인다.

죄수들이 단식농성을 시작한 이래 불렌트 에제비트 터키 수상의 입장은 단호하다. “새로 지어진 F형 감방은 유럽 감옥 표준에 맞는 것”이라는 것. 그런 가운데 사망자들이 속출하자, 국제 사회의 시선을 의식해 타협책을 찾는 중이다. 히크멧 사미 투르크 법무장관은 “어떤 수감자도 제도개혁을 마무리할 때까지는 강제 이감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개혁조치 속에는 테러 범죄를 저지른 수감자들끼리 만나는 것을 금지하는 조치를 철회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독립된 감독위원회가 수감자들을 만나 감옥 내 인권탄압을 조사하는 내용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개혁조치가 단식 농성자들을 만족시켜 단식을 그치도록 만들 것 같지는 않다.

사실 터키의 인권탄압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언론인들이 걸핏하면 잡혀가는 곳이 터키다. 특히 후진적인 감옥행정은 오래 전부터 비난의 표적이자 유럽연합(EU) 정식 회원국이 되는 데 걸림돌로 작용했다. 터키는 현재 나토(NATO) 정회원국이지만, EU 예비회원국에 머물고 있다. 문제는 어떤 극적인 조치나 변화가 없는 한 단식 농성 사망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란 데 있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터키 당국에 한발 물러나는 조치를 취하도록 요구한다. 그러나 그런 조치를 당장 취하더라도 일부 농성자들은 이미 사망단계에 이르렀다는 데 문제가 있다.





주간동아 2001.05.10 283호 (p56~57)

< 김재명 / 분쟁지역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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