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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받지 못하는 ‘은혜동산 사람들’

어렵게 마련한 보금자리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철거 위기 … “계속 살 수 있도록 해주세요”

  • <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

은혜받지 못하는 ‘은혜동산 사람들’

은혜받지 못하는 ‘은혜동산 사람들’
중부고속도로에서 경안 인터체인지로 빠져나와 구불구불한 흙길을 한참 들어가다 보면 멀리 ‘은혜동산’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경기도 광주군 초월면 서하리. 황량한 들판 한가운데 마치 섬처럼 외롭게 자리잡은 이곳이 소아마비 장애가 있는 오덕희 원장(51·여)과 45명 지체-정신장애인들이 비닐 하우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은혜동산 식구들의 보금자리다. 유아에서 50대 장년까지 함께 어울려 사는 이들은 ‘완벽하지 못한’ 사람들이어서 혼자서는 어떤 일도 해결하지 못한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의 머리가 되거나 팔다리가 되면 못할 일이 없다는 믿음으로 살아간다.

이들은 왜 비닐하우스에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 은혜동산 식구들은 원래 인근 마을의 번듯한 한옥에서 살았다. 그러나 94년 12월 마을 주민들이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들과는 함께 살 수 없다”며 반발하는 바람에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옮겨야 했다. 오원장은 마을에서 살던 시절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지체-정신장애인 46명 삶의 터전

은혜받지 못하는 ‘은혜동산 사람들’
“마치 우리를 전염병 환자처럼 취급했어요. 어린아이들까지 우리에게 돌멩이질을 했고요. 더 기막힌 건 어른들도 이런 아이들의 행패를 그냥 방관했다는 거예요. 우리 식구들이 얼마나 눈물을 흘리며 지냈는지 몰라요. 분명 우리가 돈 모아 산 집이었는데 밖에 제대로 나가지도 못하고 정말 힘들었어요.”

마을에서 1km 정도 떨어진 이곳으로 옮겨오면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줄 알았다. 후원자들의 도움과 염소 오리 닭 토끼 등을 길러 생기는 돈으로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생겨났다. 비닐하우스가 위치한 자리가 1972년부터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제대로 된 건물조차 지을 수 없었던 것. 이들은 할 수 없이 무허가로 비닐하우스를 짓고 살아야 했다. 오원장은 어려운 형편임에도 매년 2000만원의 과태료를 꼬박꼬박 광주군청에 물어왔다.



“처음에는 이곳이 상수원보호구역인지도 몰랐어요. 그냥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서 살 수 있는 곳을 찾아 여기로 온 거죠. 그런데 집도 짓지 못하고 이렇게 살고 있으니…. 주변에는 골프장, 러브호텔, 음식점 등이 많아요. 그런 곳은 다 허가를 내주면서 왜 이 지역만은 보호구역으로 묶어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는지 이해가 안 돼요. 우리가 장애인이니까 동정하는 차원에서 건축허가를 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 사는 사람들도 다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계속 이곳에 살면서 채소도 재배하고 가축도 기르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세요.” 오원장의 절규에 가까운 바람이다.

실제로 이들의 비닐하우스는 열악하기 그지없다. 7개의 비닐하우스 숙소는 덩그러니 넓기만 했다. 여러 명이 함께 쓰는 재래식 화장실, 개인 공간이라고는 전혀 없는 듯한 숙소는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였다. 장마철에는 비가 샐까봐, 폭설이 내리면 지붕이 내려앉을까봐, 혹시 불이라도 날까봐 노심초사하며 살아간다.

오원장은 이곳이 상수원보호지역임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부터 관련기관에 건축허가를 내달라며 탄원서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7년여, 오원장도 은혜동산 식구들도 이젠 지쳤다.

광주군청은 왜 은혜동산에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는 것일까. 광주군청 도시과 한 관계자는 “은혜동산이 위치하고 있는 지역은 팔당호 근처의 상수원보호구역이에요. 현행법상 그런 곳에 건축허가를 내줄 수는 없습니다. 은혜동산이 복지시설이 아니었다면 벌써 철거했을 겁니다. 그들의 딱한 사정을 아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라며 행정관청의 어려운 처지를 설명했다. 그는 비닐하우스 시설의 경우 화재가 나면 매우 위험하다며 은혜동산의 이전을 요구하는 군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장애인으로서 자신의 몸도 추스르기 쉽지 않은 오원장이 은혜동산의 ‘엄마’가 된 사연은 무엇일까. 오원장은 지난 81년 남편과 사별했다. 남편은 이렇다 할 재산도 남겨놓지 않은 채 바람처럼 세상을 떠났다. 장애인인 그녀가 3남1녀의 자식을 키우기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완구조립 등의 가내부업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오원장은 궁핍한 생활을 견디다 못해 사랑하는 두 아들을 미국에 입양시키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독교 방송의 ‘새롭게 하소서’라는 프로에 오원장의 딱한 사연이 소개됐다. 그 후 그녀의 사연을 알게 된 장애인들이 자신들도 같은 처지라며 연락을 해왔다.

“몇몇 사람들이 저와 함께 살기를 원했어요. 부업도 같이 하고 서로 돕고 살면 더 낫지 않겠냐는 거였죠. 그렇게 해서 식구들이 늘어났어요.”

이렇게 모인 17명의 지체장애인들이 지난 84년 경기도 성남의 33평짜리 셋집에 모여 살기 시작했다. 이들의 애처로운 사연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여기저기서 도움의 손길을 보내왔다. 덕분에 생활에 숨통이 트였다. 그러자 오원장의 도움을 바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무작정 찾아와 장애자 가족을 맡아달라고 조르는가 하면 집 앞에 정신장애 어린이를 버리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오원장으로서는 괴롭기 짝이 없는 일이었지만 이들을 모른 체할 수는 없었다. 장애인들에 대한 연민, 입양 보낸 아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이렇게 해서 오원장은 은혜동산 식구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때로는 자신에게 맡겨진 짐이 너무 무거워 도피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만 자신만을 바라보고 사는 애절한 눈빛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요즘은 은혜동산을 돕는 후원자들이 늘어 오원장의 짐을 덜어주고 있다. 15년째 은혜동산을 찾아와 예배를 주재하는 김영신 목사, 94년부터 인연을 맺어온 봉사단체 ‘등받이’ 등이 그들이다.

“항상 걱정하며 살지요. 다른 곳으로 쫓겨나지 않을까, 병약한 식구들이 심하게 다치거나 아프지는 않을까. 그렇지만 우리는 항상 긍정적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대소변도 못 가리고 말도 제대로 못하던 사람이 이곳에서 살면서 한두마디 말은 물론 스스로 일도 하고 공부도 하며 밝게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뿌듯하고 기쁩니다.”

천사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보는 사람도 함께 웃도록 만드는 새침데기 에셀이(8), “언니가 좋아졌다”며 기자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으려던 정신지체자 이미애씨(26), 몸이 약해 항상 오원장을 애태우는 막내 준명이(5), 뇌성마비로 지체장애 1급이면서도 항상 밝은 웃음으로 동생들을 챙기는 은혜동산 반장 박선용씨(26), 그리고 순수한 미소의 은혜동산 식구들. 이들이 허름한 비닐하우스가 아닌 어엿한 집에서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갈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주간동아 2001.03.29 277호 (p42~43)

<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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